▲ 기자가 일반시민으로 둔갑한 것으로 드러난 중앙일보 7월5일자 사진.
중앙일보는 사건의 성격을 “취재윤리 불감증이 부른 중대 실책”이라고 규정했다. 황우석 박사의 ‘인위적 실수’만큼이나 형용모순이다. 윤리 불감증을 ‘타락’이나 ‘일탈’이 아닌 ‘실책’으로 귀착시킨 것은 사건의 발생과 진행을 다른 차원으로 분리한 논리 전개의 필연적 결과다. 현장 기자는 ‘윤리적’으로 결함이 있었고, 내부는 ‘기능적’으로 부실하거나 취약했다는 것이다. 도덕적 책임은 현장 기자만 지면 된다. 신문사에는 과실의 책임만 남는다. 그래서 대책은 “사진·기사 검증시스템 강화”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유력 신문은 솔직히 공개하고 재발 방지책을 세운다”며, 스스로를 뉴욕타임스 반열에 올려놓는다.

사후 조처, 뉴욕타임스 수준?…그러나 너무 늦었다

▲ 사진·기사 검증시스템 강화를 약속한 중앙일보 7월 10일자 기사.
‘여자의 변신은 무죄’는 ‘여자라서 행복해요’와 더불어 성차별을 내재한 광고 카피의 더블 포스트다. 남성(자본)을 위해 변신(소비)하는 여성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그렇지 않은 여성을 원죄의 굴레 안에 격리하고, 차별한다. 그럴수록 여성은 변신의 강박에 내몰린다. 살려면 변신해야(요구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기자는 기자에서 일반시민으로 변신해 값싸고 맛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행복한 표정으로 먹었다. 신문사는 소속 기자의 ‘자발적 변신’임을 거듭 강조한다. 변신한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믿어보자. 그러나 재발 방지책은 너무 늦었다. 이미 오래전 기자의 변신 욕망은 학습을 통해 내면화됐다. 역사가 말해준다.

1999년 보광그룹 탈세 사건으로 홍석현 당시 사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 들어서던 순간, 현수막을 들고 줄지어 기다리던 중앙일보 기자 40여명이 외쳤다. “사장님, 힘내세요.” 중앙일보 기자들은 당시 보도가 ‘오보’였다고 주장했다. “사장님, 힘내세요”가 아니라 “홍 사장, 힘내세요”였다는 거였다. 글자 한 자 차이지만, 사주의 응원단 노릇을 했다는 따가운 눈총 앞에선 큰 차이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홍 사장의 죄의 부피와 무게 앞에서는 역시 글자 한 자 차이일 뿐이었다. 이듬해 5월 대법원은 홍 사장에게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에 벌금 30억원을 확정 판결했다. 어쨌든 중앙일보가 보기에 기자의 응원단 변신은 무죄였다.

홍 회장 보위하던 사진기자가 지금의 사진부장

2005년 이른바 ‘엑스파일 사건.’ 홍 사장은 6년 만에 회장 직함으로 다시 검찰에 출두했다. 삼성그룹의 정치권 돈 배달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기록이 폭로됐다. 홍 회장 앞으로 민주노동당 당원이 구호를 외치며 나섰다. 이때 사진기자라면 직업 정신을 발휘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어야 했다. 중앙일보 기자는 아니었다. 대신 민주노동당원의 목을 낚아챘다. 회장님 경호원으로의 변신이었다. 당시 중앙일보 사진부장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경호원 기자’라는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역시 변신은 무죄. 세월은 흘러, 당시 현장의 기자는 사진 조작 사건이 벌어진 지금 중앙일보의 사진부장이다.

또 3년이 흘렀다. 홍 회장과 검찰 류(類)의 인연은 깊고도 질겼다. 지난 3월 홍 회장이 삼성특검에 출석하던 날, 중앙일보 기자들도 기자 무리에 섞여 있었다. 홍 회장이 도착했다. 중앙일보 기자들은 피켓 시위를 시작하려던 노동자들을 촬영장비로 밀어붙였다. 그들의 피켓에는 ‘시급 3400원, 한 달 500시간, 초일류 삼성의 현실’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중앙일보 기자들은 동업자 의식도 내려놓았다. 다른 언론사 취재기자들과 몸싸움까지 벌이며 취재를 방해했다. 변신했으니 이미 기자가 아니었다.

경호원으로 변신하면 동업자도 없다?…진짜 유죄는 사내 권력

▲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과잉수행과 취재방해 논란을 보도한 3월5일 KBS '뉴스9'
홍 회장이 특검을 떠날 때도 상황은 되풀이됐다. 홍 회장이 나오기 10분 전부터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이 다른 기자들 의견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포토라인을 설치했다. 홍 회장이 나오자 취재진을 물리력으로 가로막았고, 방송사의 카메라를 부수기까지 했다. 그날 중앙일보는 다른 언론사보다 훨씬 많은 기자를 현장에 파견했지만, 다음날 중앙일보 지면에 홍 회장 사진은 한 장도 실리지 않았다. ‘값싸고 맛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음식점에서도 시판하던 날, 국민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사진 조작도 마다지 않던 직업정신은 매번 발휘되는 게 아니었다.

중앙일보 기자들의 변신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러나 한 번도 조직으로부터 징치된 일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변신 기술의 눈부신 진화를 설명할 길이 없다. 찰스 다윈의 자연 선택설에 빗대보면 이건 조직 선택설이다. 변신하지 않는 기자는 타자로 차별받고 낙후되다, 마침내 멸종할 수밖에 없다. 맞다. 중앙일보 기자들의 변신은 무죄다. 변신을 방조하고 조장한 조직이 유죄다. 조직의 의사 결정과 문화 형성 권력을 독점해 기자들의 변신 기술을 진화시킨 자들이 정작 도덕적 멍에를 뒤집어써야 한다. 아사히신문은 산호초 훼손 기사 사진 조작의 책임을 지고 사장과 편집국장이 물러났다.

경고, 뉴욕타임스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중앙일보는 사진·기사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기 전에 ‘미국산 쇠고기 상황실’부터 서둘러 운영하길 권한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유력 신문들이 중앙일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지도 모른다. 아니, 대한민국 농림수산식품부가 그랬듯, 직접 당사자가 아닌, 뉴욕타임스를 유력 신문이라고 보는 대한민국의 진짜 일반시민들이 먼저 수사를 의뢰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리기 전에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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