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주식회사>의 프리퀄 <몬스터 대학교>가 9월, 관객의 곁으로 찾아온다. 어린이의 비명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몬스터 나라의 두 명 콤비 마이크와 설리반이 처음에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몬스터 대학교>는 선천적인 스펙과 후천적인 스펙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먼저 털복숭이 설리반은 선천적인 스펙을 타고난 몬스터다. 몬스터 가문에서 손꼽히는 명문 가문에서 자라난지라 설리반 가문이라고 하면 몬스터 대학교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 딱히 노력하지 않고 눈을 부라리고 고함만 질러대도 어린이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자지러질 만큼 놀라니, 외모적으로도 타고난 몬스터다.

반면에 마이크는 놀래키는 몬스터라기보다는 노력형 몬스터라고 칭하는 게 맞다. 어린이를 놀라게 만들기에는 너무나도 귀여운 외모를 가진 마이크는 교과서를 깡그리 외울 듯한 학구파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설리반과는 달리 이론에는 최강을 자랑하지만 어린이를 놀래키는 실전에는 약한 이론형 몬스터이자 노력형 몬스터다.

선천적인 스펙을 타고난 설리반과 노력형 몬스터 마이크는 가까워지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멀리할 수밖에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가 된다. 서로 정반대의 취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이크에게는 노력하는 학구파 몬스터라는 장점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지나칠 정도의 ‘낙관주의자’라는 점이다.

미국인이 갖는 지나칠 정도의 낙관주의는 다른 국민에 비해 두드러지는 미국인만의 특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이크 역시 마찬가지다. 역경이 닥칠 때마다 역경에 굴복하거나 타협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경을 어떻게든 헤쳐 나가려는 특유의 낙관주의로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캐릭터다. 미국인 특유의 낙관주의적인 성향을 애니메이션으로 대비해서 바라볼 수 있는 캐릭터가 외눈박이 마이크다.

공포영화에 익숙한 팬이라면 <몬스터 대학교>에서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마이크와 설리반이 함께하는 팀 ‘울지마 까꿍’이 물감을 뒤집어쓰는 장면은 공포영화 <캐리>에서 캐리가 돼지 피를 흠뻑 뒤집어쓰는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편, 마이크보다 먼저 기숙사에 들어왔지만 먼저 왔다고 텃세 부리기는커녕 마이크가 원하는 침대를 먼저 고르도록 만드는 착한 룸메이트 랜디가 왜 마이크에게 등을 돌리게 되는가에 관한 심리적인 부분은 단순하게 처리됨으로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몬스터 대학교>가 시작하기 전에 등장하는 보너스 애니메이션 <파란 우산>은 케이트 베킨세일과 존 쿠삭이 주연한 영화 <세렌디피티>을 떠올리게 만드는 우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파란 우산이 사랑하는 짝을 만날 듯하다가도 만나지 못하는 애타는 사랑을 담은 보너스 애니메이션 <파란 우산>은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속담처럼 파란 우산이 만날 수밖에 없는 짝이 알고 보면 ‘운명론’에 기인한 사랑임을 보여주고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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