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준비를 하려는 것은 말(言語)의 진지를 구축하는 매체의 발간과 정치-철학교실입니다. '전태일의 집' 또는 '민중의 집' 건설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입니다. 무엇보다 정치부문에서도 배제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조직화, 정치화할 것인가의 물음이 우리가 가는 길의 과정이며 행선지가 돼야 할 것입니다"(4.11총선 후 홍세화 전 진보신당대표)

▲ 홍세화 '말과활' 발행인 ⓒ미디어스

홍세화 전 대표가 격월간 <말과 활>의 발행인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말'은 사유를 의미하고 '활'은 실천을 의미한다. 사유의 결핍과 학습 부재가 드러난, 진보진영 모습을 스스로가 반성해 보자는 취지다. 학습과 사유는 진보신당대표를 떠난 후 그가 가장 역점을 두었던 부분이었다.

그는 '가장자리'라는 학습 협동조합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말과 활>은 '가장자리'의 첫번째 성과물인 셈이다. 창간호에는 '위험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가라타니 고진 등 석학들과 한국 좌파 지식인들의 글이 담겨 있다. 노동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녹여진 글들도 인상 깊다. 자본주의 모순의 한복판을 제대로 겨냥한 '활', '말의 활'인 셈이다.

<미디어스>는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합정에 위치한 학습 협동조합 '가장자리' 사무실을 찾아, 홍세화 <말과 활> 발행인과 대담을 나눴다. 매체 창간의 의미와 학습 협동조합의 활동, 의회주의 늪에 빠진 한국 정치 등을 주제로 인터뷰를 한 시간가량 진행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 학습 협동조합 '가장자리' ⓒ미디어스
학습 협동조합 가장자리

미디어스(아래 미) : 학습 협동조합 '가장자리'는 무엇인가? 그 뜻과 취지를 설명해 달라.

홍세화 : 사유와 학습의 공동체다. 토론과 읽기, 쓰기를 통해서 '인문주의'를 고민하고 실천의 연대를 넓힌다는 취지다. 소박한 자유인의 자리는 '가장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중앙으로 가고자한다. 중앙은 점 하나지만 가장자리에서는 평등한 존재들이 만나서 선을 이룬다.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서로 손을 맞잡는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배제된 자들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진보신당의 대표를 지내면서 절감했던 문제가 '진보일수록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이었다. 다 알고 있다는 오만. 남보다 먼저 의식화됐다며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 책 몇 권으로 세상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 진보진영 안에서의 헤게모니 싸움에 동원되는 현상. '진보의 미성숙'이 아니라 '사유의 정지'라는 표현이 걸맞는 것 같다. 선배가 누군가에 의해 진보의 정파가 결정되는 구조라면, 주입된 진보나 다름없지 않을까? 그런 고민에서 만들어진 협동조합이다.

미 : 당대표를 떠날 때 '민중의 집' 운동도 언급한 바 있다.

홍세화 : '민중의 집' 운동은 19세기-20세기 초 유럽의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시작됐다. 지금도 스웨덴이나 이탈리아, 스페인에는 민중의 집이라는 게 존재한다. 민중들이 같이 어울려서 놀고 토론하는 공간이다. 제로섬 게임에 익숙한 자본주의 질서에서 벗어나 다른 삶, 다른 만남의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정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같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장소가 있다면 그게 바로 민중의 집이 될 수 있다.

미 : 정치인 홍세화의 삶은 어땠나? "맞지 않는 옷"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홍세화 : 좌절감과 희망 모두를 느꼈다. 각 당원들이 어떤 역사적 궤적을 통해 진보신당에 이르게 됐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의회 입성만 강조한 유력 정치인들은 '통합'을 내세우며 폭력을 가했다. 통합이라는 폭력적인 행위에 밀려나고 배제되는 과정이 마치 벼랑 끝에 내몰린 한국의 비정규직, 불완전노동자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나서고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더라. 책을 읽지 못한다는 건 내겐 매우 치명적인 것이었다. 파리에서 겪었던 두통이 다시 오기도 했다. 나름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잘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말의 진지로서의 <말과 활>

▲ 격월간 '말과활'
미 : 창간호 <말과 활>, 잘 나왔나? 발행인으로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홍세화 : 미흡하나 '일단 해냈다'는 생각을 한다. 낙제점은 면했달까?(웃음) 편집위원들과 필진들이 긍정적으로 잘해줬다. 참 고마움을 느낀다. 어떠한 면에서 보면 이런 매체에 대한 필진들의 갈구, 배고픔이 있지 않았나 싶다.

미 : 노동 현장의 이야기가 와닿았다. 또 그것이 중심이 된 잡지라는 생각도 든다.

홍세화 : 담론과 서사가 각각 절반을 담당하는, 그러나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닌 매체를 만들고 싶었다. 그 자체에서 담론과 서사가 깊게 녹아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현장으로부터 출발한 글에 담론이 담기기란 쉽지 않다. 창간호를 받아보는 분들도 지식인들만의 잡지로 흘러갈 경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셨다. 이 점에 대해 항상 경계심을 갖고 있다.

미 : <말과 활>이 지닌 장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 또 격월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홍세화 : 시사지와 학술지, 그 경계 지점이 비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 지점을 채우는 매체가 <말과 활>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주간지, 시사지가 정치를 스펙타클이나 일시적 이미지로만 보는 경향이 강했다면, <말과 활>은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매체다. 그렇다고 고답적이고 학술적인 글은 지양할 것이다. 계간은 너무 굼뜬 것 같고 월간은 지금 인력으로는 버겁다. 격월간을 준비하면서 <녹색평론>과 교육공동체 벗에서 나오는 <오늘의 교육>을 참조했다.

미 : 창간호를 보면 배제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홍세화 : 이번 창간호의 제호도 '자본에 맞서는 정치, 자본 너머의 정치'다. 발행인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이 '배제된 사람들의 민주주의'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에서는 일방적 통행밖에 없잖나? 노동으로부터 착취당할 기회조차 박탈 당한, 프롤레타리아트도 아닌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Precario'와 '노동자 계급Proletariat'를 합성한 신조어로 비정규 노동자층을 뜻한다), 그들의 삶과 노동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존재를 이반한 의식을 쫓는 정치

미 : 최근 <한겨레신문>에 "지금 여기의 절망에 응답하라!"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했다. 안철수 의원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 무엇을 말하고자 했나?

홍세화 : 집권과 표몰이에만 골몰하는 한국 정치의 모습이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표현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말은 이미 10여 년 전 손학규씨가 쓴 바 있다.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 영국의 '제3의 길', 프랑스의 '사회적 자유주의' 등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갈래에서, 이미 유럽에서 유행했던 얘기들이다. 집권을 위해 이념적 중앙 수렴을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노동자들의 삶과 조응하지 못했다.

▲ 한겨레신문 6월 21일자 특별기고 <"지금 여기의 절망에 응답하라!">

미 : 노동자들의 삶과 조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홍세화 : 노동 지위 자체가 격변하고 있는 것에 무감각하다는 말이다. 자동화, 정보화로 인해 숙련 노동이 불필요해졌다. 노동시간이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어도 지금의 생산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화, 정보화라는 인류 공동의 재산을 자본이 전유했다. 전세계적 관점에서 과잉공급이 발생하고 일자리는 줄어든다. 더 이상 균형 속에서나 가능했던 케인즈식 완전고용이 불가능하지만, 이런 주장에 토대를 둔 진보적 자유주의가 다시 한국 정치 담론에서 등장했다. 노동시간 축소와 함께 기본소득제와 같은 구체적 인간의 삶에 조응하는 담론들이 나와야 한다. 진보정당이라면 존재에 다가가야 한다. 의회주의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

미 : 정치권에서는 촛불 정국이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홍세화 : 국정원 사태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수구 세력의 뻔뻔함을 보여준 사건이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오고 있다. 그러한 저항에 대한 동의한다. 하지만 '균형을 찾기 어렵다'는 생각도 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한문 분향소에서 쫓겨나고 있고, 울산에서 300일에 가까운 고공농성이 진행됐지만 촛불의 열기만큼 뜨겁진 않다. '국정원 사태'가 해결돼야 노동의 문제도 풀릴 수 있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공감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몇만이 시청광장에 모였다면 몇천, 몇백은 그 옆 대한문에 모여 연대를 하는 게 균형잡힌 정치의 모습 아닐까?

정치권력에 흡수된 언론운동

미 : 현재 한국 언론은 기존 언론들이 못다한 기능을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매체들이 하고 있다.

홍세화 : 수구 기득권 정치 세력과 대기업의 광고로 방송이 '조중동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영방송의 PD저널리즘이 공기로서 공공성을 미약하게나마 보여줬으나, 수구 기득권들은 이를 정권 장악의 걸림돌이라고 평하지 않았나? 그 과정에서 종편도 탄생했다. 그나마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인터넷 매체 등이 미약하게 견제의 역할을 했으나 가장 큰 영향을 발휘했던 공영방송이 무너졌다.

미 : 홍세화 선생은 안티조선운동의 초창기 멤버였다. MB 정권 이후 언론운동의 쇠약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떠한 지향성을 지녀야 한다고 보고 있나?

홍세화 : 안티조선운동 초창기만 해도 자유주의 세력과 좌파의 공동전선이 펴져 있었다. '최장집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가 이를 강화했다. 김대중 정부도 그렇지만 이후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시민사회가 정치권력 작용에 흡수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실망을 가져다 주었다. 언론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정치에 입성한다든지 하는. 사람들의 동의를 획득하기 어려워지는 계기가 됐다. 언론운동은 견제의 역할로 남아야 한다. 권력에 끼어들어가면 안 된다. 이런 금기가 무너진 상황이 언론운동을 약하게 한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 홍세화 '말과활' 발행인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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