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출판이란 무엇인가
출판이란 무엇인가. 정말이지 대책 없는 질문이다. 이렇듯 궁극의 질문을 제목으로 붙인 책은 대개 독자에게 실망을 안기고 만다. 모든 것을 알려줄 듯 사탕발림을 하고서는 막상 열어보면 내가 여기까지는 생각을 해봤는데 여전히 풀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 함께 고민해보자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오자마자 “신입도, 3년 차 경력자도, 10년 차 편집장도, 수십억 매출의 출판사 사장도 모두 입을 모아 말합니다. 출판, 도대체 모르겠다고. 드디어 이런 책이 나왔습니다”라며 호들갑스레 출간 소식을 알린 까닭은 출판을 다룬 책이 워낙 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라딘 인문 분야의 소분류 ‘출판/편집’에는 226종의 책이 들어가 있다. 생각보다 많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1984년부터 지금까지 30년에 걸쳐 나온 책의 총합이니 재미없는 숫자임이 분명하다(참고로 예술/대중문화 분야의 소분류 ‘영화’에는 무려 2293종의 책이 들어가 있다).

이 분류에서 판매량이 가장 높은 책은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열린책들 펴냄)과 <편집자란 무엇인가>(김학원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이고, 출판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이 꾸준하게 찾는 책은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의 <편집자 분투기>(바다출판사 펴냄)다. 세 책은 각자 성격이 뚜렷하고 맡은 역할도 다르다. <편집자 분투기>가 기획, 편집, 홍보에 이르는 여러 영역을 거치며 편집자가 성장하는 과정을 자신의 경험으로 그려낸 에세이라면, <편집자란 무엇인가>는 애초 매뉴얼을 염두에 둔 책으로, 원고를 검토하고 저자를 만나고 기획안을 만들고 표지와 제목을 결정하는 기준 등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편집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리한 책이다.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은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 등 주로 교정교열 과정에 필요한 실무지식을 정리한 책으로 매년 새로운 정보를 더해 개정판을 내는데, 1년에 한 번 스스로 편집자임을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꼭 사는 독자(=편집자)가 많다. 그리고 앞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출판평론가 변정수의 <편집에 정답은 없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중요한 저작으로 꼽아두고 싶다. 아마도 개인의 경험담이나 직무 직능에 관한 기술적 정리를 넘어 편집자의 존재론을 묻고 답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은 유일한 책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출판이란 무엇인가>는 어느 지점에서 무엇을 말하는 책일까. 이 책은 “출판물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책이다. 앞서 언급한 책들이 주로 편집 영역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편집 프로세스, 디자인과 제작, 책의 마케팅과 유통을 골고루, 균형 있게 다룬다. 또한 이 세 영역을 출판 산업이라는 층위에 놓고 설명하는데, 이 책의 원제가 ‘The publishing business: from p-books to e-books'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관점이 이 책의 콘셉트이자 차별성이라고 하겠다. 물론 이런 관점에서 설명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답답한 구석이 적지 않다. 세계 출판의 중심인 영미권 출판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전자책 영역에서 벌어지는 변화상을 빼면, 출판 교육 과정이나 실제 출판 현장에서 몇 달 정도면 알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출판계에 입문하려는 사람이나 출판에 대한 기초 지식을 얻고자 하는 이에게는 대부분 처음 듣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내용 설명이 분절적으로 나열된 서술이고 이 책의 핵심이라 할 ’논의‘가 질문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함께 읽어가며 이야기를 나눌 경력자가 없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출판입문서를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의 감수를 맡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이만한 출판입문서를 본 적이 있는가?”라 했는데, 일단 출판입문서의 바이블이라 할 만한 책이 없으니 ‘이만한’이란 표현도 그럴듯하다 싶지만, 이왕이면 ‘이만한’을 ‘이런’으로 고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앞서 말한 ‘출판 산업’이라는 관점이다. 출판은 사람 중심 산업이고, 여전히 직접 만나서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출판인이 많다(이 책에서도 저자가 여러 번 언급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이 책의 설명 방식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 까닭도 ‘산업’을 넣지 않은 기존의 시선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두 번째는 외부자의 시선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출판계 사람이라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다. 같은 영역에서 경험을 쌓은 선배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저자는 출판의 내용을 출판의 언어가 아닌 일반의 언어로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내부자의 시선으로 보면 밋밋한 이야기로 느껴지기 쉽지만, 아마도 출판의 언어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훨씬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다(물론 나는 이를 체험으로 확인할 수는 없는 처지다). 실제 현장에서 독자의 이름으로 나만의 생각을 주장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돌아본다면, 내 근거 없는 추측에도 조금은 신빙성이 생기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부자(=출판인)에게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각 꼭지 끝에 본문과 연관한 질문이 네다섯 개씩 붙어 있는데, 앞서 이 책의 핵심 내용이라 언급한 ‘논의’가 이 질문들이다. 전체로 보면 100여 개 정도인데, 단답형 질문이 1/3, 본문에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내용이 1/3, ‘논의’라는 이름처럼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모아야 할 내용이 1/3이다. 각 유형의 질문을 몇 가지 살펴보자.
단답형 질문
- ISBN이란 무엇인가?
- 킨들 이전에 있었던 전자책 단말기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 출판 제안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가?
본문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
- 출판 산업에서 책의 거래 형식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 POD는 독립출판의 성장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했는가?
- 디지털 출판 형식을 맨 처음 채택한 출판 유형은 무엇인가?
‘논의’를 해야 할 질문
- 출판사는 어떤 식으로 ‘가치’를 부가하는가?
- 현재의 책 시장에서 오프라인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다양한 출판 유형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은 중요해지고 있는가? 아니면 약해지고 있는가?
단답형 질문은 익숙한 내용일 터라 책을 뒤적이지 않고도 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기대)한다. 두 번째 유형의 질문은 용어가 문제인데, ‘책의 거래 형식’이라든지 ‘출판 유형’은 저렇게 떼어 놓고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통해 일반 용어, 다시 말해 더 폭넓은 독자의 언어에 익숙해진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 과정을 거치면 아직도 출판사와 인쇄소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추운 겨울 손을 비비며 교정을 보는 후남이(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김희애가 연기한)를 떠올리는 이들과의 거리를 줄여갈 공통 기반이 마련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유형은 말 그대로 답이 없는 질문인데, 이 부분에서는 이 책이 주요 관점으로 삼은 출판 산업을 뛰어넘어 ‘출판’ 그리고 ‘책’의 수준에서 고민을 해보길 바란다. 물론 이 책이 설명하는 방식대로 기초 자료를 수집하고 계량화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 이 단계로 넘어와야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책을 내는 출판이 아닌 말만 하는 말판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 말이다.
만약 내가 출판입문서를 쓴다면
출판입문서든 출판을 정리한 책이든 대부분의 경우 시작은 기획이고 끝은 홍보다. 만약 내가 출판입문서를 쓴다면 마지막 장은 사례 정리와 공유라고 쓰겠다. 출판계에는 무용담이 넘치지만 ‘일반 언어’로 정리된 사례는 드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용담은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로 남는다. 몇 천 년 지난 일도 아닌데 은유와 상징으로 뒤섞여 애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황금알을 낳았더라는 결론만 전해진다. 이래서는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다. 자기 안에서조차 흔적만 남을 뿐이다. ‘출판 산업’이라는 관점이 전혀 새로운 시도가 아님에도 여전히 새로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나도 이제 경력자라고 가끔 동료와 후배 앞에서 강의할 때가 있는데, 어느 자리든 마치기 전에 꼭 강조하는 말이 있다. 여기에 서는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고. (나는 예외지만) 여기에 서는 대부분의 강사는 출판업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또 바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분들이라, 아름다운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고 때때로 주의를 주기 위해 전하는 어두운 이야기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편집술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누굴 믿으란 말인가. 바로 당신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당신의 동료들이다. 위에서 아래로 전해지는 전설보다 곁에서 곁으로 전해지는 사례가 훨씬 큰 힘이 될 거다. 또한, 편집자 그리고 마케터의 역할도 보도자료 보내고 서점 홍보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례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제 한국 출판에도 역사가 기록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꾸며 삽니다. 공식 애칭은 서경식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바갈라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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