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의 태양>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할 때마다 되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홍정은, 홍미란 자매님(이하 홍자매) <빅>때는 왜 그러셨어요?’

이제는 대세가 된 연기돌 랭킹 1위에 빛나는 수지가 출연했음에도, 그녀의 작품으로 언급조차 회피되고 있는 <빅>과 <주군의 태양>은 동일하게 홍자매의 작품이지만, 과연 이 두 작품이 홍자매의 작품이 맞는가 싶게 다른 느낌의 드라마이다.

같은 작가 작품이라고 꼭 같아야만 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두 사람의 작품을 되돌아보면 <최고의 사랑>, <환상의 커플> 등 인기를 누린 작품일수록 <주군의 태양>과 거의 같은 포맷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히려 주인공들이 설정은 비정상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였던 <빅>이 홍자매에겐 외도와도 같은 성격의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다면 이른바 ‘홍자매의 작품답다’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딱 잘라말하면 '병맛'이다. <주군의 태양>은 홍자매 특유의 병맛이 펄떡펄떡 살아 움직인다. 그러니 재미없으려야 재미가 없을 수 없다.

"꺼져!", "꺼져, 꺼져!", '얼른 꺼져!"
"꼭 세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군“

위 대사를 글자로만 읽으면 굉장히 모욕적이다. '인격모독'으로 고소해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물론, 처음에 주중원(소지섭 분)이 어색한 손짓으로 저 대사를 칠 때, ‘뭐지, 이 작위적 대사는? <최고의 사랑>의 '극뽁'처럼 유행어 하나 만들려는 거야?’하면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더구나 늘 정극 연기만 하던 소지섭이 홍자매 특유의 리듬과 겉돌던 시기이니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그게 몇 번 반복되면서,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중독성이 있는 거다. 이 즈음에는 '꺼져' 한 번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게 된다. 이제 6회차에 들어 소지섭조차 드라마의 리듬에 조금씩 몸을 맡기면서, 그 어색한 맛의 '꺼져'조차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효진은 늦고 빠르고가 없이 이미 그녀 자신의 연기력으로만 초반부터 무리수일 수 있었던 이 드라마의 설정을 책임지고 가고 있다. 그녀만큼 말도 안 되는 드라마 속 캐릭터 자체로 사랑스러운 여인이 또 어디 있을까 싶게.

"한번만 만져 봐도 돼요?“
"안 돼, 꺼져!“

홍자매 드라마의 대사들은 아이들간의 대화 같다. 어른들이 듣고 있노라면 뭐 저리 막말을 하나 싶거나, 쓸데없는 말만 하나 싶은데, 지들은 그게 좋다고 하는. 언뜻 들으면 욕이 절반이 넘는 막말인데, 그 속에서 정이 넘치고 우정이 깊어지는 그런 묘한 맛? 그게 홍자매의 대사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홍자매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분명 어른인데도 아이들이다. 덩치만 어른일 뿐 사탕을 빼앗기기 싫어서 앙탈을 부리고, 온갖 모험을 불사하는 그 아이들의 마음 그대로이다. 아마도 어른 들 사이에서 '꺼져'를 세 번 쯤 하면 마음속으로 칼을 갈게 되겠지만, 아이들 같은 어른들이기에 얼마든지 그보다 더 심한 말도 가능하다. 아마도 그래서 유치하다는 평가를 받고, 아마도 그래서 어른인 척 혹은 멋있어 보이려는 가식이 없어서, 같은 젊은이들 사이에 일단 홍자매 드라마는 보고 판단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주군의 태양>의 주인공 혹은 그 주변 사람들은 어느 하나 멀쩡한 사람들이 없다. 일단 쇼핑몰 사장 주중원은 어릴 적 납치당했던 트라우마로 글을 읽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사람들을 피하고 자신만의 성에 숨은 채 주군처럼 행사한다. 오직 이익을 위해서만 억지로 웃음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는 그 주변엔 그를 이해하는 김비서 말고는 그 누구도 없다.

태공실은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설정부터 귀신을 본다는, 거기에 귀신이 들러붙어 자신의 사정을 해결해 달라고 애걸복걸한다는 이 여자는 등장부터 잠도 못 자고, 머리도 제대로 감지 못하는 루저 그 자체이다.

남녀 주인공만이 아니다. 조만간 태공실의 어설픈 연적으로 등장하는 태이령(김유리)은 전지현의 밥솥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 분명한 냄비 광고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캐릭터를 한껏 뽐냈다. 어디 그 뿐인가, 제일 멋있어 보이는 강우(서인국 분)도 귀신 이야기만 나오면 쫀다.

번듯한 어른이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다 한 끝 차이로 찌질하기가 이를 데 없는 '병맛' 어른 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어른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아이들 수준 그대로다.

대한민국 드라마답게 <주군의 태양>에도 재벌이 나오고 스타가 나온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드라마와 다르게 참 없어 보인다. 권위는 허세요, 가진 건 스쿠루지 저리 가라하게 짠돌이에, 정신세계는 딱 아이 수준이다. 학창시절 평가하던 어른들의 딱 그 모습이다.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런 그들이기에 가진 것 없는 여주인공과 얽히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엮어져갈 그들의 사랑이 전혀 불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재벌이 한낱 루저녀를 사랑하는 것이 호의로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속 주중원과 태공실이 계약관계로 동등하게 엮이듯, 그들의 사랑도 동등해 보인다. 심지어 나중에는 오히려, 태공실이 더 많은 걸 줄 수도 있어 보인다.

학창시절 아이들이 어른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렇다. 자신들보다 더 많이 알고 가졌지만 자신들보다도 못한 사람이라는, 냉소어린 그 시각이 그대로 드라마로 연결된다. 흔히 청소년들과 대화하기 위해 눈높이를 맞추라고 하는데 홍자매의 드라마가 딱이다. 그들의 정서에 맞춘 어른들의 세계.

흔히 '병맛'의 시초를 만화로 본다. 철든 어른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낄낄거리며 한없이 빠져들게 하는 그 매력을 병신미, 혹은 병맛으로 정의한다. 혹자는 이걸 잉여력이 넘치는 루저들의 집합체인 젊은 층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에 반발해, 일찍이 조선시대 김삿갓에서부터 비롯된 해학과 페이소스의 유산이라고도 정의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든, 홍자매 드라마는 재밌다. 그리고 그게 바로 '병맛'의 본령이다. 꼭 무슨 교훈을 남겨야 해? 의미가 있어야 해? 하하 호호 깔깔거리고 서로 친해지고, 사랑하게 되면 그뿐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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