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석호필’이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웬트워스 밀러가 자신이 동생애자라고 밝히는 커밍아웃을 했다. 그의 커밍아웃은 러시아에서 펼쳐지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영화제 초청을 거절한 이유에서부터 시작됐는데, 그 거절 사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동성애자로서 이 초대를 반드시 거절해야 한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최근 태도를 깊이 우려하고 있다. 이 상황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나 같은 사람들이 사람과 사랑의 기본 권리를 거부당하고 있는 나라에서 열리는 행사에 좋은 마음으로 참석할 수 없다’

사실 그의 커밍아웃은 그다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잘생긴 미남스타가 어느 날 기자회견을 갖고 ‘저는 게이입니다!’라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일은 이제 할리우드에서는 다반사가 되었다. 맷 보머나 리키 마틴 등의 경우가 이에 속한다. 여자 배우로는 조디 포스터가 대표적이다. 몇 개월 전에는 미국 프로농구 스타인 제이슨 콜린스가 커밍아웃을 하여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제이슨 콜린스의 커밍아웃 소식을 듣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독려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당시 아무도 오바마 대통령을 동성애 옹호자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단편적인 예에 불과할 뿐이지만, 이것은 미국 사회가 바라보는 동성애에 대한 보편적인 시선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 웬트워스 밀러('프리즌 브레이크' 스틸) © News1
석호필의 커밍아웃으로 한국은 뒤숭숭한 분위기이다. 다른 나라 배우의 커밍아웃 소식일진대, 요란을 떠는 것은 미국보다 더한 듯싶다. 반응은 호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호모포비아에 가까운 이들의 악성 댓글들이 난무하며, 미국이란 나라가 본디 프리섹스주의자들이 세운 나라라며 서양인들의 못된 탐닉이라 치부해버리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그의 커밍아웃은 열성팬들마저도 뒤돌아서게 만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과연 한국에는 게이 연예인이 홍석천 한 명 밖에 없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 연예인들 중에서도 동성애자들은 존재한다. 그저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뿐, 분명히 한국에도 게이 연예인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커밍아웃을 할 수도, 또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왜? 석호필의 커밍아웃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만 봐도 그 이유는 확실하다.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들이 어떠할지 불 보듯 뻔한데,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아직 없는 거다.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어느 나라에나 동성애자는 존재하고 그 비율도 지역이나 문화적 차이 없이 거의 동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구비율로 비례하여 미국에 존재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도 동성애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커밍아웃에 있어서는 매우 극심한 차이를 보인다. 이유는 하나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성애자들의 시선과 사고, 태도가 전혀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홍석천은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연예인들 중에서도 게이가 있지만 그들은 커밍아웃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이 커밍아웃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힘든 것은 나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냉혹하고 폐쇄적인지를 에둘러 표현한 말이었다.

▲ 홍석천 ⓒ연합뉴스
동성애를 무작정 옹호하진 않는다. 버젓이 데이트를 즐기는 게이 커플들을 봤을 때, 전혀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아직은 어색하고 시간도 좀 필요할 듯싶다. 하지만 이내 뜨끔해진 것도 사실이다. 석호필의 커밍아웃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 그리고 한국인들의 반응을 비교해 보면서, 또한 당당한 그의 모습과 지금도 게이라는 사실 때문에 웅크리고 있을 한국의 연예인들을 비교해 보면서 말이다.

정말 심각한 우리사회의 문제는 뭘까? 커밍아웃하겠다고 나서는 연예인이 하나 둘씩 생겨나는 것일까? 아니다. 동성애자들을 편협한 사고로 보는 우리의 속 좁은 마음이다. 게이 연예인은 그저 홍석천 한 명으로 그칠 것만 같은 대한민국 연예계의 현실은, 사실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막혀있는 무언가를 빼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남색하는 자’는 남자와의 섹스를 의미하지만, 보다 넓게 보면 신이 허락하지 않은 모든 부적절한 성관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유난히 기독교인들이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것이다. 필자 또한 기독교인이며, 인간이 성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는다.

하지만 이 또한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동성애자들이 섹스만을 목적으로 삼지는 않는다는 사실, 이성애자들과 다를 바 없는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동성애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성경에는 그러한 이들을 배척하라고 적힌 바가 없다. 길 가는 동성애자들을 구타하라는 말도, 함부로 손가락질 하라는 말도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하나님을 빙자하여 그들을 정죄하는 인간들의 교만이 들끓는 행위일 뿐이다.

석호필의 커밍아웃은 우리의 편협함을 다시금 밖으로 노출시킨 일갈이다. 대한민국 연예계,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동성애자들에 대해 얼마나 높다란 철문을 세워 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지를 직시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커밍아웃이라는 단어 앞에 여전히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대한민국 동성애자들에게 다시 한번 힘을 내라는 당부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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