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8일) 오후 여의도 MBC 앞은 1천여개의 촛불로 뒤덮였다. "촛불아 모여라 PD수첩 지키자"는 주제로 여의도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한 시민은 자유발언대에 올라 "KBS MBC 등 공영방송까지 장악이 되면 광우병소를 반대하는 어린아이까지 이른바 '빨갱이'로 둔갑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것만은 막아야 된다는 생각에 요즘은 거의 매일 KBS앞 집회에 나오고 있고, 오늘 이 자리에도 나왔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각, 여의도의 국회의사당 안에서는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와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회담을 가졌다. 지난 40여일동안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을 등원 조건으로 삼았던 민주당이 대폭 양보해 "개원 이후에 추가협상 내용과 국민적 요구 및 국익을 고려해 개정한다"로 타협하면서 8일 저녁, 전격 합의를 도출했다.

▲ 8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MBC본사 남문 앞에서 시민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2번째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민임동기
이밖에 양당은 한미 쇠고기협상 관련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것과 △한미쇠고기수입협상 국정조사 특위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특위 △공기업 관련 대책특위 △고유가·고물가 등 민생안정 대책특위 △국회법 및 국회상임위원 정수에 관한 규칙개정 특위 등 5개 특위를 여야 동수로 구성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이 쇠고기 국정조사특위 위원장을, 민주당이 가축법 개정특위 위원장을 각각 맡고 통상절차법은 정기국회 종료 전까지 제정하기로 했다.

합의 내용과 별도로 이날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경찰 과잉폭력에 대한 책임을 물어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요구만 받겠다. 임면권자가 아니어서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와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등원 등 현안과 관련해 논의 하기위해 8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회동을 가진 가운데 원혜영 원내대표가 첫머리 발언을 하고 있다. ⓒ 여의도통신
합의타결 당시 기자의 심경을 네티즌 용어로 표현해 보자면 그야말로 "뭥미"였다. ('뭥미' : 컴퓨터 키보드에서 빠른 속도로 단어를 칠 때 생기는 오타의 일종. 의도적인 오타로 사용되는 신조어로 '뭐임'의 오타. '대체 뭐냐, 이게 뭐니' 등 황당한 심정을 대변하는 뜻으로 쓰임. )

이번 개원 합의에서 민주당은 가축법 개정의 확답을 받지도 못했고, 야당 국회의원들까지도 마구잡이로 진압해온 어청수 경찰청장의 퇴진은 논의조차도 못 했다. 어제 오후 언론 5개 단체 대표들이 요청한 '최시중 방통위원장 퇴진' 문제는 아예 거론도 안됐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동당은 성명에서 "가축법 개정에 대한 분명한 약속도 없는 등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면서 "민주당은 다시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행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보신당도 논평을 내어 "민주당 개원 합의는 촛불 배신행위"라며 "대통령과 행정부 견제라는 국회의 역할, 제1야당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민주당의 기회주의적 행태는 국민들의 따가운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날 기자만 여의도에서 '뭥미'를 외친 것은 아니었다. 등원합의 직후 만난 민주당 관계자도 "4년 내내 한나라당에 끌려다니는 게 아닐지 걱정"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당내에서는 "지난 주말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꾼 것을 두고 '도로 호남당' '민주당의 구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8일 오후 여야 회담 직전에 원혜영 대표를 면담하고 나온 언론계 대표들도 합의문을 보고 '뭥미'를 외쳤다. 이들은 "촛불의 목소리가 '쇠고기'에서 '언론장악 저지'로 넘어가고 있다"면서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퇴진'을 등원 조건으로 요구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등원합의에 대해 "민주당은 촛불 민심을 전혀 읽지 못했다"면서 "등원만 목표로 성과없이 무력하게 타협해버린 나약한 민주당은 앞으로 계속 한나라당의 들러리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국회는 포기했다"면서 "국민들과 함께 공영방송 수호와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를 적극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늘(9일) 오전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과의 회담에서 국회 개원의 전제조건으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과 통상절차법 제정 및 쇠고기 국정조사 실시 등'을 합의한 것에 대해 "두달 동안 촛불을 든 국민과 민주당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촛불 민심의 민첩한 대응과 달리, 한참이나 뒤쳐진 제1야당 '도로 민주당'은 과연 '뭥미'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어젯밤 "PD수첩을 지키자"고 모인 여의도의 촛불들이 만약 같은 시각 국회 거대 양당의 합의를 알았다면? 아마도 국회쪽으로 행진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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