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은 이름은 딱딱해 보일지는 몰라도 무척 재밌는 학문 분야다. 특히 관련 저술은 더욱 흥미로운 편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매력적인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부담스럽던 책 두께가 나중에는 고마워질 정도로 재미있었다. 저자가 직접 그린 원주민의 문신 그림은 감탄을 자아냈으며, 그가 종종 얻어마시던 마테차는 꼭 한 번 마셔보고 싶을 정도였다. (나에게는 낭만이었던 이 '라틴의 마테차'가 요즘은 제로칼로리를 표방하며 다이어트 음료로 둔갑해 마트에서 팔리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문화인류학자들은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조사하기 위해 여정을 시도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게 됐다. 넓은 시야로 다른 세계를 바라보려는, 연구 대상이 '누구'인지를 정말 궁금해 하는 그들이 쓴 책은 어떤 책이든 재밌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심지어 <국화와 칼>은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엔 가지도 않고 책상머리에서 쓴 책인데도 흥미롭지 않았던가.
사실 이 책 <나는 좀비를 만났다>를 여기에 소개하기 위해서는 '좀비' 이야기로 운을 뗐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영화 <28일 후>부터 시작해서 <웜 바디스>까지 요즘 좀비 영화가 유행이라는 등 말이다.
단언컨대 이 책은 역시 문화인류학자(정확하게는 민속식물학자)가 쓴 책은 다 재밌다는 생각을 고쳐먹지 않아도 될 만큼 훌륭했으나 무서운 좀비가 등장해서 독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책은 아니다. 아주 다채로운 정보를 담고 있으며 사뭇 진지하다. 젊은 민속식물학자인 백인 남성 주인공이 '좀비'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어드벤처 소설이자, 부두교의 나라 아이티의 역사와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민족지이자, 무엇이 선과 악이며 무엇이 좀비인지 죽음인지를 묻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논픽션인데도 출간되자마자 영화감독 웨스 크레이븐에 의해 <악령의 관>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그럴 만한 것이 이 책의 서두는 모험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버드의 대학원생이었던 저자는 존경하는 슐츠 교수를 통해서 만난 약리학 교수들에게서 아이티로 가서 '좀비 독약'에 대해 알아봐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들은 살아 있는 시체인 좀비를 만드는 약을 연구해서 마취 신약을 개발할 속셈이다. 아마존으로 떠난 적도 있는 혈기 왕성한 젊은 학자에게 아이티로 가서 좀비 독약의 성분을 알아내라는 임무가 맡겨졌다. 그가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는 가설을 세운다. 지금의 아이티인 18세기 프랑스령 생도맹그의 프랑스인 농장주들이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노예들을 통해서 아프리카산 식물들이 아이티로 흘러들어왔을 것이고 이 식물이 좀비 독약의 주요 재료일 것이라고 말이다. 저자가 처음에 밝히듯이 이 책은 저자의 가설이 어떻게 틀렸는지를 보여주며 그 가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아이티의 숨겨진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덤으로 아이티의 역사와 부두교, 온갖 향정신성 약물의 재료가 되는 식물과 동물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까지 들을 수가 있다.
저자는 부두교 사제인 막스와 그의 딸 레이첼의 도움을 받아 가루 독약 제조자인 마르셀과 죽음에서 돌아온 좀비 나르시스를 만난다. 마르셀이 처음에 저자에게 만들어준 가루 독약은 가짜였지만 그가 독약을 만드는 과정을 함께 하며 좀비 독약의 진실에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부두교의 좀비는 죽었던 시체가 주술의 힘을 얻어 움직이는 망령이 아니라 죽음에 가까운 가사상태에 머물렀다가 두뇌에 손상을 입고 깨어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좀비 독약이라는 존재를 두고 인간에게 죽음이란 정확하게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하는 지점이다. 인간은 가사상태와 죽음을 확실하게 구별하는 방법을 몰랐다. 많은 이들이 죽음에서 돌아올까 봐, 혹은 죽지 않았는데 매장당할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책에서는 카니스-카니키 백작이 만든 '안전 관'이라는 장치를 예로 들어 인간이 살아 있는 채로 죽음을 판명 받고 매장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얘기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서도 죽은 아버지를 매장하기 전에 그의 심장을 칼로 찔러두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확실한 죽음을 원하거나 매장을 유예하여 비로소 시체가 부패하기 시작했을 때야 안심하며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무엇이 죽음인지는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과제였던 것이다.
진짜 죽음과 가사상태의 차이를 규명하는 데 쏟은 진지한 과학적 관심은 1890년에 출간된 대학 교과서만 봐도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이 교과서에 실린 참고문헌만 무려 418가지나 되었다. (194쪽)
무덤까지 갔다가 좀비로 돌아온 나르시스와 그 주변 인물들을 취재하던 저자는 나르시스가 착한 피해자가 아니라 아이티 사회에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인물로 재판받아 좀비가 되는 '형벌'을 받은 것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아이티의 헌법에는 인간을 가사상태에 이르게 하는 어떠한 약물도 인간에게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 좀비 처벌을 주도하는 것은 아이티 사회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부두교와 비밀 조직이었다. 그들은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국이 된 아이티를 유지하고 있는 핵심 세력이었다. 저자는 부두교 의식에 참석하거나 비밀 조직의 주요한 인물들과 접선하여 좀비에 대해 알아내려고 하고, 그럴수록 결국 좀비를 만드는 것은 약물이 아니라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부두교 비밀조직은 공동체에서 정해둔 몇 가지 규칙을 어기는 주민을 조사하고 재판한다. 재판에서 처벌받아야 할 것으로 판명이 나면 좀비 독약이 내려지고 죽음을 판정받고 매장된다. 밤이 깊으면 부두교의 비밀 사제가 땅에서 좀비를 불러낸다. 사람들에게 두드려 맞고 포박당한 좀비는 멀리 노예로 팔려가게 되는 것이다.
이 좀비가 되는 '과정'은 아이티인들이라면 누구나 주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티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좀비로부터 해코지당하는 것보다 좀비가 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그들의 역사를 두고 봤을 때 노예가 된다는 것은 치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좀비'는 아이티 사회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는 하나의 사회적 수단이자, 공동체에서 내쳐진다는 의미이고, 잘못을 처벌 받았다는 증거였다. 다시 자신의 마을로 돌아온 좀비 나르시스는 죽은 자 취급을 받으며 마을에서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애초에 저자를 아이티로 보낸 약리학 교수는 좀비 독약이 있다면 해독제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자 또한 해독제를 찾아 헤맸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복어의 독을 주로 사용하여 만든 좀비 독약은 경구 투입이 아니라 피부에 발라 간접적으로 인간에게 주입된다. 독약을 먹어버린다면 즉사할 것이나 피부를 통해 중독되었다면 가사상태에 이르렀다가 곧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나르시스는 좀비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독약에 취했다가 땅 속에 깨어난 것이었지만 스스로 좀비가 되었고 주체적인 의지를 상실한 채 노예로 끌려갔다. 아이티 사람들에게 있어서 "좀비를 만드는 것은 약이 아니라 마법적인 행위였던 것이다.“(121쪽)
죽음의 변방, (중략) 좀비는 죽음의 경계에 있다고,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최초의 스승이자 최초의 고통이라고. 그리고 죽음 너머의 경계에서는 알다시피 삶은 끝나고 경이로움이 시작된다고. 죽음의 본질은 포착하기 어려운 생기의 본원인 육신으로부터의 단절이다. 그리고 대개는 하나의 문화가 이러한 냉혹한 단절을 이해하거나 적어도 허용하는 방식에 따라 그 문화의 영적 세계관이 정의된다. 좀비가 존재한다면, 그 현상을 만들어낸 믿음은 아이티인들의 존재 깊은 곳에 뿌리박혀 있을 것이다. (266쪽)
결국 저자가 에필로그에서도 밝히듯이 좀비는 허무맹랑한 마법이 아니라 나름의 논리적인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러 번 아이티를 왕래하는 과정에서 그가 얻은 것은 좀비 독약이 아니라 부두교를 기반으로 하는 아이티 사회와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였다. 이렇게 마무리를 해놓고 보니 우당탕탕 여러 에피소드 끝에 교훈 하나 딸랑 얻는 책처럼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문화인류학자(이 책 저자는 민속식물학자지만)가 쓴 책은 다 재미가 있다고 말이다.

오가진

책 만드는 사람. 넓고 얕은 취향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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