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가 쓴 《린 인》

이 책은 미국 출간 직후 아마존에서 1위를 했다. 미국 내에서도 새로운 페미니즘적 관점이라는 호평과 잘 나가는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한국은 세계 출판계의 '호구'이므로 당연히 비싼 선인세로 국내에 판권이 팔렸다. 이 과정에서도 원고보다는 저자가 내한할 수 있다는 등의 홍보 포인트만 강조가 되었다. 이런 기대 속에 출간되었는데도, 출간 직후 잠깐 베스트셀러 순위를 올랐다가 이후 꾸준히 순위가 내려간 책, 바로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가 쓴 《린 인》이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난 이 책의 출간을 기다려왔다. 셰릴 샌드버그를 알게 된 건 포탈 업체에서 일하던 선배와의 대화에서였다. 모바일 시대에 필요한 서비스를 찾고 있다며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미국 재무부에서 장관과 일하다가 구글 부회장으로 일하는 여자’가 있다며 흥미로운 인물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는 IT 업계에서는 아는 사람은 아는, ‘난 여성’이었다. 셰릴 샌드버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재무부에서 수석보좌관으로, 구글에서 부회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장면은 첫 장에 등장하는 구글에서의 에피소드다. 당시 구글은 급속히 성장할 때라 늘 주차장이 부족했다. 힘들게 입덧을 참으며 주차를 하고 출근을 한 그녀가, 남편이 일하는 야후에는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구글의 설립자인 세르게이 브린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이 임신을 하고서야 직장이 여성에게 얼마나 차별적인지 인지한 것이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글의 가장 높은 직급의 여성인 자신’조차 그 문제를 깨닫지 못했다. 당연히 더 낮은 직급의 여성들은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며 그녀는 ‘린 인(뛰어들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셰릴 샌드버그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여성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많은 어려움’들 뿐 아니라, 학적으로 증명된, 또는 통계적으로 증명된 많은 사례들이 나온다. 가령 이런 식이다.
사회운동가 말로 토머스에 따르면 여성의 급여 인상액은 40년간 18센트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달걀 한 꾸러미 가격의 인상액은 18센트의 10배에 달했다.
OECD 국가의 경우 여성의 급여는 남성에 비해 평균 18퍼센트가 적다. 한국은 풀타임으로 일하는 여성의 급여가 남성에 비해 39% 적어서 OECD 국가 가운데 남녀 급여가 차이가 가장 크다. (18쪽)
콜롬비아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있었던 실험은 더 극적이다. 자신의 인맥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성공한 어느 인물의 이름을 하워드와 하이디로 바꾸어 학생들에게 읽혔을 때, 학생들은 남자인 하워드에 비해 여성인 하이디가 훨씬 공격적이며, 거칠고, 자신 밖에 모른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하이디는 “고용하거나 그 밑에서 일하고 싶은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다.
자신의 일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여성들이 듣는 평가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남 앞에서 자기 능력을 의심하고 자신이 이룬 업적을 가볍게 취급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유능한 여성은 성품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은 이것을 두려워한다. (물론 이게 저자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고 여길 독자들도 있겠으나, 나는 기본적으로 일터를 가진 여성으로서 그녀의 표현에 대부분 동의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녀는 여성들에게 성공의 문은 열려 있다며 ‘유리 천장’은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녀 뿐 아니라 대부분 현재 현업에서 뛰고 있는 많은 여성들은 그런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러나 사회는 배움과 달랐다. 게다가 출산과 육아, 가사는 여성 스스로를 유리 천장에 가두게 만들었다. 저성장 시대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골고루 기회가 오지 않고, 여성들은 사회적 피로감, 가족과 자신의 일상을 늘 일과 저울질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 세대 여성은 평등이 확산되고 그러한 경향이 앞으로도 지속되리라 기대되는 시대에 성장했다. 뒤돌아보면 우리는 너무 순진했고 너무 이성적이었다. 직업상 열망과 개인적 열망을 하나로 모으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경력을 쌓기 위해 일에 최대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바로 그 시기에 생리학적으로는 자녀를 출산해야 한다. 배우자가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하지 않아서 여성은 풀타임 직업을 두 개 뛰는 셈이었다. (31쪽)
미국에서 파는 배냇저고리에는 남자 아기용 옷에는 “아빠처럼 똑똑하게”, 여자 아기용 옷에는 “엄마처럼 예쁘게”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저자는 이런 옷을 입고 자라는 여성들이 스스로의 성취를 밝히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고, 학교와 일터에서 계속해서 위축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공한 남성들이 성공의 원인을 자신이 지닌 자질과 기술이라고 말하지만 여성들은 외부 요인으로 공을 돌리며 “운이 좋아서”, “도움을 받아서”라고 말한다. 저자는 여기서 재밌는 팁을 건네준다. 연봉 협상을 할 때 (남성들의 대부분이 연봉 협상을 언급하는 것에 비해 여성 들 중 연봉 협상을 주도적으로 하는 이들은 7%로에 불과하다) “나의 연봉을 올려달라”가 아니라 “우리의”로 표현을 바꾸라는 것이다. 여성에게 기대되는 가치들이 바로 주변과의 조화, 배려와 같은 덕목인데,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에서도 나날이 격차는 크게 벌어진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생 남성의 90%가 정규직 취업을 하는 것에 비해 여성의 81%만이 정규직에서 일한다. 심지어 나이가 들었을 때의 경력 단절은 보다 큰 문제다. (요즘은 이것을 ‘경단녀’라 부른다고 한다) 2000년 40대에 진입한 예일대 졸업생 가운데 남성의 90%가 일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일하는 여성은 56%에 불과하다.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 중에는 고학력 여성이 많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고학력 여성일수록 자녀에게 투자하고, 남편이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효과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익숙한 이야기이지 않는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페이스북의 2인자가 된 그녀 역시 소심한 여자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녀가 페이스북으로 오기 위해 협상을 할 때 어차피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에 강경하게 협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결론을 내리고, 받은 제안을 그대로 수락하려고 했다. 그때 그녀의 매제가 화를 내며 "젠장, 대체 일은 똑같이 하면서 남자보다 돈을 덜 받으려는 이유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이런 순간들을 떠올리며, 여성들이 더 많이 요구하고 직장에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언제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녀의 상사인 마크는 그녀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업무 추진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이 그녀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편, 남성과 교제 중인 여성은 거주지를 다른 도시로 옮겨야 하는 직장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이 자기 자리에 안주하려는 경향 때문에 결국 자기 자리에 머물고 마는 불행의 악순환이 일어난다.
그녀는 경력은 사다리가 아니라 정글짐이라고 말한다.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거나 장애물에 의해 가로막힐 때 쉬거나 다른 길을 걸으며 더욱 창의적으로 경력을 탐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다리에서는 타거나 타지 않거나 오르거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메시지들은 그 자체로는 설득력을 지니지만, 오늘의 현실을 볼 때 다소 거리가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 책은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에 화제도 되지 못한 채 묻히는데 일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지적 중에는 여자로서 뜨끔하는 지점이 적지 않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악영향은 멘토를 찾는 행위가 마치 공주가 완벽한 왕자를 기다리는 태도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은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적절한 멘토를 찾을 수 있다면 힘들이지 않고 경력의 사다리를 올라가 중역 사무실을 차지하고 내내 만족스럽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여성들이 상담가와 멘토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혁명을 내면화하자’는 서문에서 밝히듯 이 책은 회고록도 아니고, 자기계발서도 아니며, 경력 관리에 대한 책도 아니며 페미니즘 선언서도 아니다. 나는 그것이 충분히 ‘어떤 영역’인지 알겠지만, 정서가 달랐기 때문인지 이 책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론 그만큼 책의 성격도 애매하고, 아쉬움이 큰 책이긴 하다. 55세의 나이에 미국 저널리즘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허핑턴 포스트의 창업자가 아리아나 허핑턴이 쓴 《담대하라, 나는 자유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느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제프 베조스나 손정의, 스티브 잡스 등 (유튜브, 벤처 캐피털리스트를 비롯해 무척 많은 자기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인 남자들이 있다) 수많은 남성 리더들은 자신의 직업적 성취에 대한 책을 쓴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것이 얼마나 힘든 길임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쓴다. 그리고 그것은 매대에 자기계발서로 놓였다가 사라지곤 한다. 그녀 자신들은 자기계발서를 쓰지 않았다고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이 나라에서 자신의 직업적 성취에 대한 (자신 혹은 남이 쓴) 책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공교롭게도 ‘여성 대통령’일 것이다. 그녀가 아이를 낳지 않았고, 육아와 가사를 병행할 일이 없었을 거란 아이러니함 덕분에 어쩌면 그녀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식 행사에 멋진 슈트빨을 자랑하는 미혼의 여성 대통령을 보며 여전히 OECD 국가 최고의 남녀임금격차 국가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은 역시나 ‘뛰어들고 싶은 빡침’을 주는 일이다. 저자의 말에 공감하는 내가 워커홀릭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말이다.

미스김

블로그를 운영했던 흑역사를 가진 미혼의 직장인. 현재 글밥을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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