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선언하는 ‘히포크라테스선서’에는 이런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관계 또는 사회적 지위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이 말은 의사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그 어떤 상황과 세력이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할지라도 의사로서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약속이다.

어제 방송된 ‘굿닥터’ 3회에서는 바로 의사들의 책임에 대한 부분을 다뤘다. 도대체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은 무엇이며, 또 그 책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줬다. 과연 어디까지가 의사의 본분이고 의무이며 책임인지, 그에 대해 고찰하게 한 드라마 ‘굿닥터’였다.

김도한(주상욱 분)의 미숙아 수술에는 강현태(곽도원 분)와 고충만(조희봉 분) 일당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이를 빌미로 김도한을 몰아내고 박시온(주원 분)을 쫓아내 그들의 편에 선 최우석(천호진 분)을 병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 하는 속셈이다. 미숙아가 앓는 질병에 대해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김재준(정만식 분)도 포기한 수술을 김도한이 집도했으니, 이는 분명 강현태 무리들이 바라는 에러 중에서도 최악의 에러일 수 있다.

수술 도중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고 말하면서 끝나버린 3회였다. 마지막 장면에 비쳐진 김도한과 박시온, 차윤서(문채원 분)의 당혹스러운 표정은 메디컬 드라마가 선사하는 가장 극적인 순간을 예리하게 표현해냈다. 벼랑 끝에 선 김도한과 박시온, 그리고 차윤서가 이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질 리는 없다. 이들 중 누군가의 번뜩이는 지혜는 이 숨 막히는 상황을 수습할 것이며, 결국 죽어가는 미숙아를 극적으로 살리게 되는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강현태는 미숙아 수술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최우석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강현태가 병원장 최우석에게 요구하는 책임은 하나다. 의사로서 의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닌, 의사 가운을 벗고 병원에서 나가는 것이다. 그 빈자리에 자신의 명패와 함께 자신이 앉게 되는 것. 누군가를 향한 책임전가가 그에게는 권력을 얻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이 연출된 것 또한 책임감으로부터 비롯됐다. 김재준은 수술 성공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이유로 미숙아 수술을 거부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어설픈 희망을 주는 것이 더 큰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도한은 이를 책임 회피, 의무의 불충실함으로 봤다. 그는 김재준을 향해 환자를 치료한 것이 아니라 방치한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20%의 수술 성공률은 희망을 갖기에 충분한 수치였다면서 말이다.

희박하지만 그 실낱같은 희망에 김도한과 박시온, 차윤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설사 잘못된다 할지라도, 혹시 원하지 않은 결과가 생긴다 할지라도,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집도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정신. 그들은 ‘히포크라테스선서’에 적힌 의무와 책임을 상기했고, 그 선언에 따라 자신들의 본분을 지켰다. 과연 무엇을 책임이라 하는 것이며, 또 그 책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수술을 하기 전, 미숙아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하며 회의를 하는 김도한과 그의 일행들의 방에 김재진이 문을 박차고 쳐들어온다. 자신의 환자가 그의 손에 넘어가게 되자 격분하고 만 것이다. 잡아먹을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김도한에게 지른 것 역시 책임에 대한 언급이었다. ‘만약 잘못되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할 거야!’ 수술을 거부한 이도, 수술을 하려 하는 이도 모두 책임감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대방을 옥죄려고 하는 모습도 동일하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박시온이 손을 번쩍 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저도 책임을 지겠습니다’ 순간 그에게로 시선이 집중이 됐다. 영웅적 이미지가 부여되면서 주인공으로서의 스타일이 좀 사는 듯한 분위기가 흐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박시온의 뒤이은 한 마디는 그를 어쩔 수 없는 자폐증 환자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런데 무엇을 책임을 져야 하는 겁니까?’ 모두들 어이없게 만들었고,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박시온을 바라보게 했다.

정말 책임에 대한 의미를 모르는 이들이 누굴까? 어떤 걸 책임져야 하느냐고 물었던 박시온일까? 아니면 그런 그를 보고 실소를 자아낸 동료 레지던트일까? ‘사람의 생사가 바로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 마당에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또 누가 무슨 책임을 져야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그 책임이라는 것이 죽고 난 이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박시온의 물음에는 바로 이 뜻이 내포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굿닥터’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이 의사다. 모두 ‘히포크라테스선서’를 한 이들이고, 또 그 선서대로 의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환자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빙자하여 자신들끼리의 책임과 의무를 운운하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꺼져가는 생명을 돌보는 것을 뒷전으로 하면서 팔팔한 생명들끼리 책임전가놀이를 쉼 없이 하고 있는 꼴이다.

박시온은 의사가 지녀야 할 진정한 책임에 대해 돌직구를 날렸다. 아주 바보스럽고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 질문이었지만, 그 속엔 너무도 진지하여 도무지 웃을 수가 없는 귀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 생명보다 값진 것이 있을까?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그렇게 부르짖는 그 책임이라는 것이 과연 생명보다 우선이 될 수 있는지를 그는 재차 물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음을 박시온은 강력한 돌직구로 일깨워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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