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미디어스
KBS미디어텍의 소식을 처음 접한 때는 지난 주말이었다. 경영진이 정규직 전환이 예정돼 있던 비정규직들에게, “본사(KBS)가 어려워 도급비를 삭감해 어쩔 수 없다”며 ‘무기계약직’ 전환을 일방 통보했다는 내용이었다. (관련기사 <KBS 도급비 삭감…자회사 "정규직 전환 거부, 무기계약직 통보">)

KBS의 자회사인 KBS미디어텍은 방송타이틀 제작, 뉴스 진행, 보도영상 편집, 특수영상 제작 등을 하는 회사다. 이들은 KBS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 제작 전반을 담당하기 때문에 기여도가 상당하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본사 직원들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시간외수당도 없이 휴일에도 일해 왔다고 한다. 이들은 본사 60% 수준의 월급을 받고, 근무표에 따라 본사의 호출에 불려 다니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으나, ‘2년 후 정규직 전환’이라는 약속을 믿고 묵묵히 버텼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무기계약직 전환 일방 통보’였다. “금치산자가 되지 않는 한 무조건 2년 후 정규직 전환 조건이다. KBS는 공영방송으로 요즘 고용이 불안한 다른 회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던 호언장담은 간 데 없고, “무기계약직도 정규직”이라는 허황된 말만 남았다. 심지어 경영진은 비정규직들에게 정규직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무기계약직’ 처우를 제시하면서 ‘해고 안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다녔다고 한다.

KBS가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

문득 KBS 차량 운전노동자들이 생각났다. KBS의 손자회사인 (주)방송차량서비스 소속인 운전노동자들은 KBS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이동할 때 ‘발’이 돼 주는 이들로, 오랜 기간 지속된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지 못해 지난 3월부터 39일 간 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관련기사 <KBS 운전노동자의 ‘39일 파업’이 남긴 것은?>)

미디어텍 비정규직들과 운전노동자들은 여러 모로 닮아 있다. 본사 소속은 아니지만 결국 KBS의 지시·관리를 받으며 KBS 일정에 맞추고, 본사 정규직보다 훨씬 더 나쁜 조건 아래서 일한다. 운전노동자들은 임금 협상 전까지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했고, 미디어텍의 무기계약직의 임금 역시 시급 5,000원 선이어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상황이다.

▲ KBS 차량운전 노동자들로 구성된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지부 KBS분회가 4월 15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개최한 '최저임금 극빈생활 탈출' 2차 전국상경 결의대회 모습. (사진=언론노조)

이들을 대하는 회사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는 책임을 본사에 돌린다. 운전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해 주지 않는 이유도, 미디어텍 비정규직에게 갑자기 무기계약직 카드를 내민 이유도 모두 ‘KBS가 책정한 도급액’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부 반발에는 ‘무대응’으로 나서거나 정해진 답만을 반복한다. 오히려 “해고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해고는 안 하니 다행으로 알라”며 직원들을 협박하기도 한다.

본사인 KBS는 어떨까. 대부분 인건비로 지급되는 도급액을 책정하는 주체이고, 자회사들의 노동력을 KBS를 위해 사용하면서도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운전노동자들이 39일 간 KBS 본관 앞에서 파업을 했을 당시, KBS는 청경을 투입해 강경하게 맞서기도 했다.

KBS의 ‘외강내유’를 보는 씁쓸함

내가 지난 1월부터 KBS를 출입하며 느끼는 점이 있다면, KBS는 참 ‘외강내유’하다는 것이다. 본사 정규직 같은 ‘안사람’에게는 관대하지만, 그 바깥에 서 있는 ‘외부인’에게는 한없이 차갑다.

지난해 62억 적자를 기록한 KBS는 ‘재정안정화’를 시급한 과제로 내걸고, 전반적으로 예산을 줄이는 ‘토털리뷰’를 실시해 제작비까지 깎았지만 ‘안사람들’의 몫에는 손대지 않았다. 오히려 7월 조직개편을 통해 고임금 간부를 늘려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외부인에게는 가차 없다. KBS가 공동 설립한 미디어교육 사업단 ‘청소년 방송단’은 지난 4월 투자금 중단을 이유로 직원들에게 돌연 해고 통보를 한 바 있다. KBS는 청소년 방송단 설립 당시, KBS와 교육기관들이 미디어교육에 뛰어든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나중에는 청소년 방송단이 ‘독립 법인’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관련기사 <KBS가 공동 설립한 미디어 교육사업 ‘청소년 방송단’ 중단 위기>)

미디어텍의 무기계약직 전환 결정도 수신료 인상을 앞두고 ‘경영합리화’ 방안을 제시하라는 KBS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KBS에서 주는 도급액이 줄었다’는 미디어텍 경영진의 해명은, KBS가 쓸 돈을 깎을 때 가장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의 것을 우선적으로 잘라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책임 없다”는 말로 KBS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을 단번에 외부인으로 만들고, 이들의 ‘이유 있는 반발’에는 침묵과 무시로 대응하거나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공영방송 KBS가 그동안 보여준 모습이다. 이런 KBS가 ‘공적책무’를 다하겠다며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어쩐지 미덥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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