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단위 조간신문은 적어도 하루에 세 번 편집회의를 한다. 아침 출근 직후, 점심 먹고 나서, 초판 신문 찍은 다음. 사안이 있으면 오전에 회의를 한 번 더 열 때도 있고, 오후에도 수시로 회의가 소집된다. 가판을 발행하던 시절에는 저녁 7시가 넘어서 배달되는 가판신문을 모아놓고 기사 맞춰보기 회의까지 했다. 여기에서 물먹은(낙종한) 기사가 나오면 담당기자가 얼굴이 벌개져서 확인취재에 들어가야 했다.

편집회의는 그날치 기사계획 집결지

편집회의에는 편집국장단과 부장급 데스크들이 고정으로 참석한다. 편집회의는 그날치 신문의 주요 의제와 보도 방향, 편집 전략 등 지면과 관련한 의사를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당연히 그날치 정보와 기사계획이 모두 모이는 집결지이기도 하다. 신문사 내부의 편집권이 독립되어 있으면 편집국장보다 윗사람이 회의에 들어오는 일은 사실상 없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20여년 전에는 그렇지 못한 신문사도 더러 있었나 보다.

"편집국의 한 기자는 기자 초년병 시절 편집국에서 목격한 하나의 '사건'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편집권 행사의 최고회의체로서, 신성불가침한 것으로만 알았던 편집국장 주재하의 부장단 회의가 예고없이 방문한 사장의 '고함' 한마디에 풍비박산 나버리는 장면을…" (1988년 12월 28일치 ○○일보 노보)

한솥밥 먹는 동료 얼굴을 못 알아봤다고?

중앙일보의 지난 5일치 9면 '미국산 쇠고기 1인분에 1700원' 조작 사진은 신문사 내부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 실렸을까? 7일 이 사안을 취재했던 <미디어스> 송선영 기자 말로는, 연출 사진에 등장하는 문제의 취재기자가 속한 중앙일보 유통부의 동료조차 사진 속 인물이 한솥밥을 먹는 사람인 줄 몰랐다고 했다고 한다. ("옆모습만 봐서는 A기자인지 확인이 어려운데요. 헤어스타일도 매일 바뀌는지라 정확하게 확인이 어렵네요.")

동료도 몰랐으니, 사진 조작 사실을 아는 건 단 두 사람. 그 사진을 찍은 사진기자와 사진 속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취재기자뿐이다. (인턴기자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이유로 8일치 2면 '정정 기사'에서 얼굴 사진이 모자이크 처리됐다.)

▲ '사진 연출'을 사과한 중앙일보 7월 8일자 2면
5일치 신문을 제작한 4일 편집회의에서 문제의 사진은 어떻게 기획됐을까? 중앙일보 사과문에도 나오지만, 미국산 쇠고기를 파는 음식점에는 처음부터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동행했다. 영상취재만 할 때도 취재기자와 영상기자가 실과 바늘처럼 함께 다니는 방송과 달리, 신문에서는 사진만 찍을 계획이면 취재기자가 함께 가지 않는다. 이날 중앙일보는 사진뿐 아니라 음식점 모습을 취재해 스케치 기사로 다루려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중앙일보 취재기자가 인턴기자와 함께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사진기자를 만난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애초 기사와 사진을 함께 실을 계획이었을 것

취재 기자가 개인적으로 의욕이 넘쳐, 데스크에게 보고하지 않거나 지시를 받지 않고 동행취재를 갔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자발적으로 사진기자와 약속을 잡고, 현장에서 이야기가 된다 싶으면 그때 가서 사후보고를 해서 기사를 쓸 만큼, 요즘 신문기자는 한가하지 않다. 더구나 그날은 미국산 쇠고기를 음식점에서도 처음 팔기 시작한 날이다. 그 사실이 편집회의에 보고되지 않았다면 해당 데스크와 기자는 문책감이다. 문제의 사진은 편집회의의 결정으로 스케치 기사와 함께 싣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사진 기자 한 사람이 현장취재에 실패한다고 해서 다음날치 신문이 백지로 나가지는 않는다. 취재기자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사진 기자의 사진이 지면에 실리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국 단위 조간신문은 오후 5시 이후부터 적어도 다섯 차례 이상 판을 바꾼다. 초판에 들어가지 못한 기사나 사진이 다음 판부터 들어가는 건 병가지상사다. 사진 기자가 다음 판 마감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식구를 굳이 일반시민으로 둔갑시켜 가면서 사진을 조작할 만큼 절박했던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한솥밥 먹는 식구가 해당 시간 해당 장소에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사진 속 인물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 데스크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

미국산 쇠고기 음식점이 문전성시만 이뤘어도…

이것은 사진기자와 취재기자 두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다. 무구한 인턴 기자 한 사람(정면으로 얼굴이 팔린 그는 피해자에 가깝다)만 빼고, 이번 사진 연출은 중앙일보 차원의 ‘조직 범죄’라고 보는 것이 신문사의 업무 방식과 모든 정황에 입각한 가장 합리적인 추정이다. 물론 이날 ‘1인분에 1700원’ 하는 미국산 쇠고기 음식점이 문전성시를 이뤘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폼나게 기사도 쓸 수 있었을 테지만, ‘희망’은 때로 존재를 배신한다. 돈이 없어 비싼 한우를 못 먹는 서민들이 값싼 미국산 쇠고기를 실컷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조차 예외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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