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에서 연일 나오미 왓츠의 노출로 이슈몰이를 하는 영화 <투 마더스>를 관음증적인 시선을 갖고 관람하면 낭패를 겪을 확률이 높음을 미리 경고한다. <셰임>은 남녀의 중요 부위가 수시로 노출되는 영화다. 하지만 <셰임>에서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투 마더스> 역시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는 걸 밝혀둔다.

릴(나오미 왓츠 분)과 로즈(로빈 라이트 분)는 소녀 때부터 우정을 나눈 친한 친구다. 이들 두 소녀는 어엿한 아가씨가 되어 맘에 드는 남성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릴은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리고 릴과 로즈, 이들이 낳은 아들은 서로가 이모와 같은 친밀한 정신적인 유대감을 공유한다. 릴과 로즈는 장성한 두 아들을 보며 우리 작품이 맞느냐고 감탄할 정도로 대견해한다.

그런데 친아들과 함께 성장한 친구의 아들이 유혹한다면? <투 마더스>는 변형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내포한다. 친엄마는 아니지만 친구의 아들이 어릴 적부터 보면서 겪어온 엄마의 친구는 ‘대리 엄마’의 의미를 가진다.

이런 ‘대리 엄마’에게 사랑의 감정을 갖는다는 영화 속 설정은, 경쟁자인 아빠의 방해가 없이 엄마에게 품은 사랑을 실현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친구의 아들과 맺어지는 커플이 하나라면 좋을까, 남아있던 나머지 친구의 아들과도 커플이 되고야 마니, 두 커플이나 친구의 아들이 사랑하는 남자가 되는 변형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실현하기에 이른다.

<투 마더스>는 여성의 욕망에 솔직한 영화다. 여성에게 ‘엄마’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많은 경우 여성은 무성적인 존재가 되기 쉽다. 사랑에 솔직하지 못하고, 욕망과는 이별한 듯한 초월적인 존재로 바라보기 쉬운 것이 엄마라는 수식어가 붙는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비극이 아니던가.

<투 마더스>는 엄마가 된 여성이, 혹은 남편을 잃은 한 엄마가 어떻게 연하의 남자에게 빠질 수 있는가를 이성적인 잣대가 아닌 감성적인 프리즘으로 바라보고 조망한다. 이성적으로만 바라보면 어떻게 친구의 아들이 남자로 보일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이라는 감정이 어디 머릿속으로만 이루어지는 논리적인 일이던가. 감독 앤 폰테인은 친구의 아들이 유혹할 때 엄마라는 여인이 어떻게 무장해제 당하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가를 여성 감독 특유의 감성적인 시각으로 스크린에 담고 있다.

<투 마더스>는 새로운 사랑이 얼마만큼 단단한지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릴과 달리 로즈는 어엿한 남편이 있는 아내다. 한 남자의 아내임에도 로즈는 친구인 릴의 아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견고한 관계를 유지한다. 친구의 아들과 새롭게 구축된 사랑이 너무나도 견고한 나머지 남편과의 사랑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다다르게 만든다.

로즈의 사랑뿐만이 아니다.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힐 수는 없지만 릴과 로즈, 그리고 이 두 친구의 아들이라는 네 명의 남녀가 갖는 사랑이 얼마만큼 견고한가를 영화는 치열하리만치 보여준다. 친구의 아들과 결합된 사랑은 인디안 썸머처럼 일시적인 불장난이 아니다. 견고하고도 아주 지속적인 사랑의 이야기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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