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멘토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면서 여성단체나 대학의 여성캐리어개발센터 등 이런 저런 인연으로 대학교 학생들 서너명의 멘토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전문직 여성과 그 직종을 희망하는 여대생을 연결해주는 멘토 사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사업이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 언론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언론계를 희망하는 멘티는 많으나 실제 멘토를 자임할 언론직 여성은 많지 않아 각 대학마다 한 두명씩 멘토 역할을 하다 보니 벌써 서너 대학만 연계해도 대여섯명의 멘티가 늘어나는 셈이다. 멘토라... 내 한몸 추스르기도 힘든데 과연 엄청난 ‘인연’의 고리를 이어갈 능력이 나에게 있는 것일까, 두렵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앞선 것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수락하게 된 것은 나도 이 학생들처럼 멘토를 갈구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라디오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적이기 때문

▲ 영화 '라디오스타' 포스터.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모교의 신방과는 신설학과여서 언론계에 진출한 선배가 많지 않았다. 지금처럼 언론계 시험을 위한 학원이나 ‘무슨 아카데미’같은 시설도 없는데다(그렇다고 이런류의 사설학원이 바람직한 교육 과정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정보도 부재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좌충우돌 언론계 출정식을 치르기 일쑤였다.

어느 언론사 시험이 여의도 어느 고등학교에서 치러진다는 공고만 보고 보따리 싸들고 홀홀단신 상경하여 1교시 시험을 치르고 난 후 멀거니 운동장을 바라볼 때, 장안의 내로라하는 대학의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음 시험을 자신감 있게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은 지방대학 도서관에서 혼자 상식문제나 풀며 공부한 나 같은 사람에게 매우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 시절, 누군가 나에게 A회사는 이런 점을, B회사는 저런 점을 보강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귀띔이라도 해주었다면 남아있는 인생에 대해 온통 불안함으로 흔들리던 그 시절이 조금 덜 외롭고 덜 추웠으리라. 하여 나는 대한민국 취업인구에 편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지방대학의 언론 지망생들을 모질게 외면할 수 없다.

엊그제 J대학의 영미학생이 ‘언론인과의 대화’를 위한 레포트를 준비중이라며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어렵게 날짜를 잡고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영미가 많은 질문을 제켜두고 저돌적으로 물어왔다. “피디님의 라디오 철학은 무엇입니까?” 그동안 많이 생각하고 닦아온 가치관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학교 3학년 언론 지망생의 질문 앞에 그만 가슴이 턱! 내려앉는 것이었다. 나의 라디오 철학이 뭐였더라? 그로부터 며칠 동안 ‘라디오 철학’을 화두삼아 정진한 결과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내가 라디오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미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내재된 생명의 힘을 끌어내는 마력은 바로 라디오의 매력이다. 게다가 순수하고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인 청취자들과의 소통은 누가 뭐래도 지역 라디오의 가장 큰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조용히 다가와 강력한 감동을 안겨준 영화 <라디오 스타>는 라디오의 미래, 라디오의 목표, 특히 지역 방송에서의 라디오의 사명감을 가장 잘 표출한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라디오 PD보다 라디오를 더 잘 아는 이준익 감독의 철학을 표본삼아 지역 라디오 방송의 미래를 좀더 핑크빛으로 색칠하고 싶은 열망, 아마도 그 간절한 마음이 늦은 시각에도 스튜디오에서 발을 뺄 수 없는 이유이지 싶다.

영미야, 라디오 PD이야기 잘 엮어서 깐깐한 K교수님으로부터 A+ 받기 바란다. 말미에 이 말은 꼭 첨가해다오. ‘영미처럼, 지역사회와 지역 방송에 관심을 갖는 언론학도들이 많아질수록 라디오의 미래도 밝아 질 것’이라는 말. 더불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따뜻한 방송을 만든다는 것. 따뜻한 방송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의 인정 지수도 점점 올라갈 것이라는 진리. 이것이 라디오를 사랑하는 나의 변함없는 믿음이란다.

1965년 볕 좋은 봄, 지리산 정기가 서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지방일간지 기자와 방송작가 등을 거쳤고 2000년 원음방송에 PD로 입사, 현재 편성제작팀장으로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화두삼아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지역 갈등 해소, 지역 문화 발전에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왔다. 수필가로 등단, 간간히 ‘뽕짝에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써왔고 대학에서 방송관련 강의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어 드디어 지식이 바닥을 보이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용량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방송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촌스러움’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blog.daum.net/kse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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