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어떻게 갑자기 진지한 이야기를 해요?'
미국에 있는 자신의 집에 찾아와 기물 파손을 해놓고서는 <라디오스타>에서 정반대로 이야기했던 신정환, 고영욱의 도발을 해명하다, 듀스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자 이현도가 뻘쭘해 한다. 그러자 윤종신이 말한다. 이게 라스의 방식이라고.
<라디오스타>의 제작진이 바뀐 이래 몇 회 동안 ‘이게 라디오스타인가? 세바퀴인가?’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 세례를 받았던 <라디오스타>가 듀스 20주년 특집을 맞이하여, 웃음으로 버무려지면서도 그 행간에서 진지함을 놓치지 않은 <라디오스타>만의 본령으로 돌아왔다.
'절뚝거리며 살아 왔어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이현도의 이 한마디보다 더 듀스의 20주년을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동시대에 활동하며 이현도는 늘 2등만 했다고 아쉽게 말했지만, 그 자리에 동석한 '버벌진트', '뮤지', '스컬'이 자신들의 학창 시절을, 그리고 그 시절의 혼돈과 열병을 듀스를 통해 설명해내듯 듀스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90년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아이콘이다.
듀스 20주년 헌정 앨범에 '용감한 형제', '신사동 호랭이', '라이머', '이단 옆차기' 등 이 시대의 내로라하는 작곡가들이 기꺼이 참여했듯, 듀스는 우리나라 힙합 1세대의 대표주자이다.
하지만 2년여의 짧은 활동 기간, 멤버 김성재의 죽음 등으로 이현도는 그 이후의 세월을 그림자처럼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했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고, 듀스를 만든 지 20년이 지난 이즈음에야 케이블 방송의 힙합 오디션 프로에서 '힙합 크루'의 수장 격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9년 만에 공중파에 처음으로, 듀스 20주년 헌정 방송 특집으로 <라디오스타>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라디오스타>는 라디오스타만의 방식으로 한 시대의 영웅을 소화한다. 그를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폄하하지 않고.
늘 그의 그룹에게 2등만을 안겨주던 서태지와 말을 섞지도 않았던, 자신의 음악에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자존심을 지닌 이현도지만, 이제는 손가락을 세워 서태지가 최고라고 말할 만큼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같은 세월의 여유를 보인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후배들과의 게임 한 판에서도 지는 걸 참지 못하는 자존심 센 남자의 냄새를 풍기다가, 후배들이 망친 세간 살이 하나하나를 꼰지르는 쩨쩨한 인간미를 보이기까지 한다. 이른바 <라디오스타>식의 인간미다.
그렇다고 그런 그가 낮잡아지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힙합 1세대'의 전설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대중이 잊지 않고 찾아주는 <여름 안에서>를 꼽을 만큼 느긋해졌다. 하지만 그가 프로그램 내내 벗지 않은 검은 선글라스처럼 여전히 그가 지키고자 했던, 그가 도달했던 성취는 그와 함께 자리한 출연자들의 언급을 통해, 그의 음악을 통해 자연스레 빛난다.
그 방식은, 자신은 정형돈이나 유세윤과는 다르게 '본투비(born to be)' 가수임을 주장하는 하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듀스도 모른다고 내리 조롱당하다가도, 스컬 팬의 한 마디에 정말로 불뚝이면서도, 예능과 음악을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투박하게 정의내리는 뮤지션 하하를 제대로 조명해내는 것 역시 <라디오스타>이다.
하지만 20주년 헌정특집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방송분 9.1%(닐슨)에 비해 낮아진 7.5%(닐슨) 시청률처럼,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듀스이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그의 존재가 듀스의 20주년의 의미가 생소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런 세월의 갭을 억지로 미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라디오스타>는 그를 잘 모르는 하하를 통해 메꾸어 나간다. 그의 노래 하나 아는 게 없어 스컬이 노래를 부를 때 후렴구나 감탄구를 따라 부르는 하하이지만, 학창시절 더블데크 카세트를 통해 편집해서 그의 노래를 장기 자랑에 가지고 나갔던 추억을 지녔던 것처럼 한때 대세였던 듀스를 추억해 내는 방식이다.
헌정특집에 걸맞게 듀스의 노래들을 출연자가 선택하는 방식으로, 한 곡 한 곡 불러보는 방식으로, 이제는 누군가에는 그리움이 될 혹은 누군가에게는 ‘아, 저런 노래를 불러서 듀스라고 하는구나’라는 식으로 추억하거나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절뚝이며 20여년의 세월을 견뎌왔던 전설의 '듀스'를 복기한다. 웃고 떠들다, 문득문득 던지는 진지한 한 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라스식의 헌정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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