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지고 싶어요. 당신 옆에서 자고 싶어요’
이 말만 들으면 완전 19금 영화 대사다. 노골적이고 선정적이며 야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대사를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에서 공효진이 읊어대고 있다. 그것도 몽롱한 눈빛으로, 야릇한 표정으로 상대배우 소지섭에게 말이다.
이번에도 홍정은, 홍미란 작가는 특유의 위트와 재치를 뽐냈다. 이 야하고 민망한 대사를 상큼한 로맨틱 코미디 대사로 바꿔버렸으니 말이다. 귀신을 보는 능력(?)을 지닌 태공실(공효진 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고, 그의 몸을 만지면 귀신을 보지 못하게 되는 주중원(소지섭 분)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녀가 그를 만지고 싶고 그의 곁에서 잠을 자고 싶은 오직 한 가지 이유, 그것은 귀신을 보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 생존본능 때문이다. 욕정이나 탐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도발이나 팜므파탈과도 전혀 관계가 없는 살고자 하는 욕구 말이다.
이 야릇한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이는 공효진이다. 이를 얼마나 유쾌하고 감각적이며 사랑스럽게 전달을 하는가에 따라 극의 성패가 좌우된다. 분명 홍자매 작가는 꽤나 고심을 했을 것이다. 과연 태공실이라는 캐릭터를 어느 여배우에게 맡길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결국 그녀들은 다시 한번 공효진을 점찍기에 이른다. 그리고 공효진은 그녀들의 러브콜에 완벽한 태공실로의 빙의로 화답하고 있다.
귀신을 보는 여자주인공과, 귀신을 못 보게 만드는 남자주인공의 설정은 기발하고 이채롭다. 무더운 여름 온갖 귀신들을 다 불러모아 놓은 것도 시기상 적절하다. 남자주인공 소지섭의 차도남 연기는 딴죽을 걸만한 거리를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으며, 김유리, 서인국 등 조연배우들의 연기도 기대 해봄직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배우는 여주 공효진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정확하게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고, 또 홍자매 작가는 태공실이라는 캐릭터에 부담스러울 만큼의 비중을 대놓고 실어 넣었다. 공효진이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에 따라 이 드라마는 허무맹랑한 귀신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2013년을 대표하는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 연기가 그 연기고, 그 스타일이 그 스타일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예쁜 척 하지 않고, 과도하게 오버액션하지 않으며, 평상시 대화하듯 툭툭 던지는 공효진의 대사톤은 이번 작품에서도 동일하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그녀의 눈빛에서 깊이가 더해졌고, 캐릭터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능력이 업그레이드됐다.
공효진은 귀신을 보는 태공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태공실의 연기에만 충실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자신과 함께하는 배우의 눈도 보고 연기도 읽는다. 특히 소지섭과 함께하는 장면에서 케미 이상의 또 다른 포스를 느끼게 한다. 이것은 그저 로코 여왕이 늘 그려왔던 달달한 장면들 중 하나가 아니다. 이제 공효진에게 무조건적인 블링블링은 보이지 않는다. 로코 스타일은 유지하되 결코 가볍지 않은 어떤 힘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예전의 공효진은 로코의 분위기를 즐기는 상태에서 머무른듯했다. 상대 배우와 완벽한 케미를 보여주기도 하고,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로 칭찬을 받긴 했지만, 그것 자체로만 만족했었던, 거기까지를 자신의 한계라고 여기지 않았었나 싶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공효진은 그 한계를 뛰어 넘은 느낌이다. 마냥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즐기는 가운데 그 강약을 조율도 할 줄 아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까? 이게 바로 그녀의 업그레이드가 아닐까 한다.
대박을 터트렸던 작가, 장르, 배우가 다시 뭉쳤다? 안정적일 것 같지만 사실은 이보다 위험하고 불안한 도전은 없다. 연이은 히트를 내주면 참 좋으련만 요즘 방송계, 드라마계는 너무 시시각각 흐름이 바뀌고 있어서 장담을 할 수도 없고, 또 그간 흡족한 결과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최고의 사랑’이 성공했다고 해서 ‘주군의 태양’까지 성공을?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고개를 갸우뚱에서 끄덕임으로 바꾸어 놓은 홍자매 작가와 공효진이다. 홍자매 작가는 보다 넓은 상상의 세계 속에서 살다가 돌아왔고, 공효진은 로코여왕이라는 수식어에 만족하지 않고 진중한 연기에 더욱 욕심을 부리는 배우로 돌아왔다. 또 다시 만나 똑같은 스타일을 반복하고 말 것이라는 선입견을 첫 회에 만루홈런으로 날려 버려버린 거다.
고작 한 회만 방송했을 뿐이지만, ‘주군의 태양’은 한 가지 확신을 심어준다. ‘역시 공효진’ ‘대단한 홍자매 작가’ 등의 헤드카피로 장식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결국 대박 작품이 될 것이라는 것 말이다. 3연속 히트를 치며 로코의 여왕으로 군림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공효진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싶다. ‘파스타' ‘최고의 사랑’ '주군의 태양’ 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3연타 고공행진. 이제는 정말 제대로 된 로코의 왕관을 씌워줘야 할 듯싶다.

대중문화에 대한 통쾌한 쓴소리, 상쾌한 단소리 http://topicasia.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