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정연주 사장을 향한 감사원과 검찰의 '표적 수사'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KBS 이사회를 흔드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한나라당과 정권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KBS 이사들이 차례로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 남윤인순 KBS 이사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7일과 8일 연달아 보도자료를 내고 KBS 남윤인순 이사와 신태섭 이사의 사퇴를 요구했다. 우선 남윤인순 이사에 대해서는 광우병위험 국민대책회의 활동을 문제삼았다. 심 의원은 "7월 6일 KBS 9시뉴스에서도 남인순씨는 '여성단체연합 대표'라는 직위를 이용해 광우병 대책회의의 입장을 대변했다"며 "공정성을 감독해야 할 KBS 이사가 공정성 논란의 한쪽 당사자인 광우병 대책회의의 주요 구성원으로 내놓고 활동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이사가 편향적인 활동을 하면서 산하 KBS 구성원들한테 공정한 방송을 하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남인순씨는 여성단체연합 대표로서 지금까지처럼 광우병 대책회의의 활동을 계속할 거라면 이제라도 KBS 이사직을 내놓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성'과 '편향성'을 교묘하게 대비시키는 심 의원의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방송법의 취지와 정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반문하게 만든다. 민주주의 사회는 여론 다양성을 기본으로 한다. KBS 이사회를 비롯한 각종 공적 기구의 인적 구성에 있어서 '전문성'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해 분포시키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남윤인순 이사는 '각 분야 대표성'에 따라 여성단체연합 대표 자격으로 KBS 이사가 됐고, 여성단체연합 대표 자격으로 광우병 대책회의 활동을 하고 있다. 숨어서 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내놓고' 활동하면서 자신과 소속 단체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검증받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여론 다양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이에 대해 남윤인순 이사는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사들을 이사로 선임하게 돼 있고 그에 따라 (내가) 이사가 된 것인 만큼, 특정 사안에 대해 견해를 갖고 활동하는 게 당연하다"고 심 의원 주장을 반박했다.

▲ 신태섭 KBS 이사
심 의원은 또 신태섭 이사에 대해서는 동의대 해임을 이유로 법적인 이사 자격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공무원법 33조에 따라 '징계로 해임처분을 받은 사람'은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고, 공무원이 될 수 없는 사람은 방송법 48조의 이사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심 의원은 "신태섭씨는 이사 자격을 상실한 만큼 즉각 사표를 써야한다. 만약 신 씨가 자격이 있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버틸 경우 KBS 이사회는 이사의 자격이 상실된 신태섭씨를 즉각 사퇴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신태섭씨와 KBS 이사회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를 지낸 신태섭 교수의 갑작스런 동의대 교수직 해임은 교육부와 그 '윗선'까지 개입된 의혹과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현 정권의 대표적인 방송 장악시도 사례로 떠오른 사건이다. 한나라당 성향이 아닌 신 교수를 KBS 이사에서 몰아내기 위해 교육부와 동의대까지 동원해 압박을 넣었지만 신 교수가 버티자 결국 해임이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 등 언론현업단체와 언론시민단체들은 KBS를 장악하려는 정권의 행태를 강하게 규탄하고 있으며 부산 지역 단체들을 중심으로 신 교수의 부당 해임을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자신들이 가진 힘과 수단을 동원해 압박을 넣어 교수 해임을 시켜놓고, 해임이 됐으니 이사 자격이 없다며 나가라는 요구는 누가봐도 눈 가리고 아웅이자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 KBS 기자들이 6월 17일 KBS 임시이사회가 열리는 신관 5층 이사실 앞에서 부당한 보도간섭을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춘호 이사(가운데)가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서정은
여기서 심재철 의원에게 하나 물어보고 싶은 내용이 있다. 부동산 과다 보유와 투기 의혹, 재산 축소 신고 등으로 얼마전 여성부 장관 후보에서 낙마한 이춘호 KBS 이사는 공영방송 이사로서 자격이 충분한 지 말이다. 장관 후보에서 낙마할 정도로 도덕성 검증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공영방송 KBS의 최고의결기관인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 자격에서도 마찬가지로 심각한 하자는 아닐런지.

한나라당 몫으로 추천한 이사라고 해서 감싸고 돈다는 의심을 사고 싶지 않다면, 자신들과 '성향'이 다른 이사들만 꼬투리를 잡는 '편향성'을 보일 것이 아니라 '제 식구'에게 더 단호하고 철저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심 의원의 진정성을 믿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이어 심 의원도 방송법 공부를 다시 해야할 것 같다. 지난 국회에서 문광위 소속 의원으로 활동하며 KBS를 비롯한 방송사와 유관기관을 감사하고 방송법 개정안 발의 등 관련 법·제도를 손질했던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우니 말이다.

KBS 이사의 선정·추천과 임명은 각각 방송통신위원회와 대통령에게 있다. 방송법 46조는 '(KBS)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위원회(현 방통위)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심 의원은 KBS 이사회에게 법을 지키라면서 신 이사를 즉각 사퇴시키라고 주문하고 있다. KBS 사장 임명권만 있는 대통령에게 해임권이 있다고 발언하는 부처 차관이나, 이사를 사퇴시킬 권한이 없는 KBS 이사회에 사퇴를 촉구하는 의원이나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방송 정책과 법·제도를 맡겨야 한다는 게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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