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노조의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 고발 이후 3개월 넘게 끌어오던 한국일보 사태가 장재구 회장의 경영권 상실, 구속수감으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언론계 "편집권 독립 지켜낸 의미있는 싸움…정의의 승리"

언론계 인사들은 주요 간부 경질, 이영성 편집국장 해고, 편집국 폐쇄 등 일련의 상황 속에서 비리사주와의 전면전에 나선 한국일보 기자들의 투쟁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이 서울중앙지법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5일 저녁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오르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비대위 제공)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2일 발행된 한국일보 비상대책위원회 특보에서 "기자들이 자사 경영진의 비리를 고발하고 똘똘 뭉쳐서 편집권을 지켜내려는 싸움을 벌이는 것은 한국 언론사에서 보기 드물다"며 "새삼 저널리즘의 가치를 한국 사회와 언론계에 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언론정보학회장) 역시 7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일보 사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만들어졌다가 (신문사들의 무한경쟁 시기를 거치며) 약화된 편집권 독립 장치를 기자들이 지켜낸 의미있는 사례"라며 "'중립'이란 단지 모든 일의 가운데에 있는 게 아니라, 사건 사건에 따라 의미에 맞게 보도하는 것이다. 한국일보가 표방하는 '중립지'의 정신을 '공정한 언론'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기자협회도 6일 성명에서 "우리 언론계에서 정의가 승리한 것이 얼마만인가.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언론의 사주가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정작 자신이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이렇게 실추된 '기자 사관학교'의 영광과 한국언론의 명예는 한국일보가 당당히 재건될 때 회복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 기자들 "중도 언론 가치 되새겨"

그렇다면, '의미있는 승리'를 거둔 한국일보 기자들에게는 이번 투쟁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일보 비대위는 2일 특보 1면에서 이번 투쟁을 통해 "일터에서 내쫓김으로써 삶의 맥락이 언제든 잔인하게 찢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부당한 임금 박탈의 경험을 통해 기자로서 또 임금노동자로서의 위태로운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며 "새로운 한국일보는 이해와 관용과 공존의 가치 위에서,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기 위해 그 무엇과도 가차없이 부딪치면서 적극적 중도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 사측의 일방적인 폐쇄 조치로 봉쇄됐던 편집국 문이 열린 7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기자들이 자리를 찾아 앉아 있다. ⓒ뉴스1

한국일보 사태를 겪으면서 '중도 언론'의 가치를 다시 되새기게 됐다는 구성원들도 많았다.

2일 특보에 따르면, 한국일보 기자 5명이 진행한 좌담에서는 "내부적으로도 중도에 대한 회의가 있었던 것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고 중계방송만 하는 한계가 있었다"(박선영 편집부 기자) "한국일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중도지라는 것이 과연 뭔지 역할이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김관진 사회부 기자) 등 자성의 목소리도 쏟아졌다.

이 좌담에서 서화숙 선임기자는 "사실 한국일보가 과거에 중도냐 보수냐 등을 표방했다고 말하기는 부끄럽다. 보수적인 기자는 계속 보수적으로, 진보적인 기자는 계속 진보적으로 써왔을 뿐"이라면서도 "다만 우리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뇌물 사건이든, 양경숙 라디오21 전 대표의 민주당 공천뇌물 사건이든, 여야를 가리지 않고 특종보도했다. 비판해야 할 사안이라면 정파로부터 자유롭게 보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향후 한국일보가 "한국 언론의 대안으로서 역할해야 한다"(서화숙 선임기자) "우리는 사주의 배임 횡령 의혹에 대해 고발함으로써 자기비판을 하게 된 셈이니, 자기비판에 강하고 변혁을 두려워하지 않는 언론으로 거듭났으면 한다"(김관진 사회부 기자)는 의견도 나왔다.

최진주 한국일보 비대위 부위원장도 7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끈끈한 정'이 한국일보의 미덕이라고 하지만, 회사가 정말 어려워지면서 정이 점점 사라져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3개월여의 가열찬 투쟁으로 하나로 뭉치게 됐다"며 "(투쟁 과정에서) 국정원 여론조작, NLL 사태가 연달아 터지면서 정파에 휘둘리지 않은 신문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많이 들었다. 주요 신문사들이 방송까지 하면서 신문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한국일보는 몸집을 가볍게 하고 재도약해 (타신문들과의) 차별화를 이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빠르면 올해 안 새 경영진…"사주 자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

하지만, 법원의 재산보전 처분 결정과 장재구 회장 구속에도 불구하고 '짝퉁 한국일보'는 오늘(7일)을 기준으로 45일째 발행되고 있다. 장재구 회장 측 인사인 하종오 편집국장 직무대리를 비롯한 10여명의 기자들이 법원이 선임한 보전관리인의 인사권한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한국일보는 5일부터 정상 제작에 돌입할 예정이었으나 기존 간부들이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신임 편집국장 임명 등 편집국 정상화를 위한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2부 관계자는 7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신임 편집국장 임명 등 인사권 행사와 관련해 "어느 시점에, 어느 범위로 할지는 아직 협의 중"이라고만 말하며 "(인사권 행사와 별개로) 회생절차 개시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내부에서는 이번주 내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나, 한국일보가 정상 제작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자본잠식에 빠진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이탈한 광고주를 되돌리는 지난한 과제가 구성원들 앞에 놓여 있다. 한국일보가 워크아웃을 졸업하던 2008년 당시 210억이었던 부채는 최근 749억원으로 급증했다.

향후 법원이 채권단과의 협의를 거쳐 한국일보의 회생절차 개시를 선언하고 보전관리인의 회생계획안을 인가하면 정식으로 기업회생절차가 시작된다. 이후 법원이 주도하는 공개매각 절차를 거칠 경우, 빠르면 올해 안에 한국일보의 새 경영진이 결정될 수도 있다.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7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일보가 무능한 사주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을 벗어나 제대로 된 신문사로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향후 또 다른 부도덕한 사주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일보 뿐만 아니라 언론계가 전체적으로 신문사의 소유구조, 사주의 자격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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