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불패’.
‘주원이 출연한 드라마는 흥행에 성공한다’는 방송가 속설을 증명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틀이면 충분했다. KBS 월화드라마 <굿닥터>가 방송 2회 만에 14.0%(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하며 월화극 독주체재를 굳혔다. 이는 한 달 먼저 출발한 MBC <불의여신 정이>와 SBS <황금의 제국>도 기록하지 못한 시청률로, 향후 <굿닥터>가 어디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을지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흥행요소가 많은 메디컬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성과 시청률 정체 현상에 시달리던 경쟁작들에 비춰보면 <굿닥터>의 선전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주상욱, 주원, 문채원이 전면에 나서고, 천호진, 곽도원, 정만식, 고창석과 같은 ‘신스틸러’들이 뒤를 받치는 등 출연진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졌다. 때문에 캐릭터 설명과 기본 이야기 구조가 자리잡고, 인물들 간의 갈등 관계가 부각되면 자연스레 시청자를 끌어 모을 것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단 2회 만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월화극을 평정하고 화제의 중심에 설 것으로 기대한 이는 아마 많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불의여신 정이>와 <황금의 제국>이 시청률 정체현상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문근영과 이상윤, 그리고 손현주와 고수를 내세운 드라마들이 아닌가. 두 드라마의 시청률 역시 10%를 상회하며 언제든 치고 올라갈 준비가 돼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극 초반 시청자의 눈을 붙들고 마음을 훔칠 강력한 ‘임팩트’가 없다면 의외로 <굿닥터>의 고전도 점칠 수 있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굿닥터>가 준비한 ‘한 방’은 꽤나 강력했다. 바로 ‘서번트 신드롬’을 앓고 주원의 자폐연기였다. (서번트 신드롬이란, 발달장애나 자폐증 등 뇌기능 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는 현상을 일컫는다.)
주원이 연기하는 박시온이란 캐릭터는 의사시험에 합격하고 병원 레지던트로 근무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자폐 증상이 남아있어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기엔 한계가 있는 인물이다. 그가 병원에 들어온 이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김도한(주상욱)과 계속 부딪히는 이유 역시 시온이 앓고 있는 자폐 증상이 완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원으로서는 연기하기가 무척 힘들 수도 있는 캐릭터다. 왜냐하면 화면에 비치듯 주원은 박시온이 앓고 있는 장애 증상을 표현하기 위해 늘 몸을 위축시키기 있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구부정한 자세로 연기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어깨와 목이 아프다”는 한 인터뷰에서의 고백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연기란, 모름지기 상대방의 눈을 마주보고 같이 호흡하며 대사를 주고받을 때 훨씬 더 빛이 나기 마련인데, 주원은 자폐 증상을 보여주기 위해 늘 시선을 아래로 둔 채 혼자 읊조리듯 대사를 뱉어야 한다. 또한 긴장감과 불안감을 표현하기 위해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이거나, 말을 반복해야 하는 등 다른 캐릭터와는 연기로 소화해야 할 영역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주원은 철저한 준비로 자신에게 주어진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들면서, 극 초반 이 드라마가 흥행몰이를 해나가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캐릭터 설정 자체가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만큼 조금만 소홀하거나 어색하면 홀로 그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뒤따름에도, 오히려 그 무게에 눌리지 않고 이끌고 있는 것이다.
주원의 자폐 연기가 가장 빛났던 것은 바로 6일 방영된 2회분에서 김도한의 주먹에 맞고 쓰러진 직후였다. 이날 시온은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한 아이가 위급하다는 것을 알아냈고, 무작정 그 아이를 수술실로 데리고 갔다. 과장 고충만(조희봉)이 집도한 환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시온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아이의 생명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위급한 상황에서 시온은 극도의 긴장감을 느껴야 했고, 집중력과 판단력이 흐려진 그는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보다 못한 김도한 교수가 나서 수술은 잘 끝났지만, 도한은 시온의 돌발성 행동에 화가 나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운이 좋아서 아이를 살릴 수 있었지만, 정황상 시온 때문에 아이가 더 위험해지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는 도한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그런데, 김도한의 주먹을 맞고 쓰러진 시온이 코피를 흘리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만큼 당연히 폭력적인 상황에서 극도의 불안감을 표출할 것으로 보였던 시온은 섬뜩할 정도의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자폐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내적 공포심이 외적으로는 반대로 표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이 시선을 아래로 둔 채 소리 없이 웃던 주원의 연기는 그야말로 시청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방송 후 “주원의 연기가 이 정도였냐”며 그를 향해 찬사를 보내는 시청자의 반응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만큼 주원은 이 드라마의 극적 긴장감을 살리고, 또한 시청자에게 따뜻함을 전해주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자폐연기를 너무도 완벽하게 그리고 있었다.
앞으로 시온은 세상과 주변 사람의 편견을 딛고 의사 본연의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의 마음을 훔친 주원이 또 어떤 연기를 선보일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끝으로, 이 드라마가 아직 2회밖에 방영되지 않았다는 게 너무도 다행이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만큼 앞으로 더 볼 수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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