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모 언론사 기자로부터 제보전화를 받았다. 제보내용은 7월 5일자 중앙일보 9면에 실린 사진기사가 연출됐다는 의혹. ‘연출의혹’을 받고 있는 중앙일보 사진기사는 <미국산 쇠고기 1인분에 1700원>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고, “미국산 쇠고기가 정육점에 이어 일반음식점에서도 4일 판매가 시작됐다. 서울 양재동의 한 음식점을 찾은 손님들이 구이용 쇠고기를 굽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제보자’는 사진 속에 등장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중앙일보 경제부 기자라는 사실을 언급한 다음 취재를 부탁했다. 그러니까 “서울 양재동의 한 음식점을 찾은” 사람은 손님이 아니라 중앙일보 기자였다는 말이다.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해 지금까지 중앙일보 보도의 논조를 고려했을 때 다분히 ‘의도’를 의심받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 중앙일보 7월8일자 2면.
촛불집회 취재차 사무실에 나와 있던 나는 이런 저런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자료를 찾다보니 사진 속에 등장한 사람과 중앙일보 경제부 기자 가운데 한 사람이 매우 비슷한 인상착의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메모를 해둔 다음 촛불집회 취재 쪽으로 ‘눈’을 돌렸다.

7일 출근해서 후배에게 상황을 설명해 준 다음, 내가 찾은 자료 등을 바탕으로 중앙일보에게 확인취재를 하라고 했다. 후배기자는 ‘사진 속에 등장한 기자에게 확인을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사진을 찍은 기자에게 확인을 할 건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일단 사진을 찍은 기자에게 확인을 하라고 했다.

후배기자. 열심히 취재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한다. “해당 사진기자가 중앙일보 기자가 아니라고 부인한 다음,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후배기자가 보기에도 이상했고, 내가 판단하기에도 ‘냄새’가 났다. 그런데 오늘자(8일) 2면에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정정기사’가 갑자기(?) 나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지 7월 5일자 9면에 실린 ‘미국산 쇠고기 1인분에 1700원’이란 제목의 사진은 연출된 것입니다. 사진 설명은 손님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있다고 돼 있으나 사진 속 인물 중 오른쪽 옆모습은 현장 취재를 나간 경제부문 기자이며 왼쪽은 동행했던 본지 대학생 인턴 기자입니다. 이 인턴은 업무를 시작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으며 이번 사진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정정기사에서 인턴 기자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두 사람은 사진기자와 더불어 4일 오후 5시쯤 서울 양재동에 있는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시판되는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하는 음식점을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자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른 저녁 시간이라 손님이 없었습니다. 마감시간 때문에 일단 연출 사진을 찍어 전송했고, 6시가 넘으면서 세 테이블이 차자 기자가 다가가 사진 취재를 요청했으나 당사자들이 모두 사양했습니다.

하지만 손님들이 모두 미국산 쇠고기를 주문했기 때문에 음식점 상황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립니다.”

후배기자가 취재할 때 전부 부인했던 내용을 모두 인정한 셈이다. 이후 풍경은 안 봐도 뻔하다. 중앙일보 기자는 ‘윗선’에 상황을 보고했을 것이고, ‘윗선’은 자진납세라는 방식을 택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타사 보도를 통해 매를 맞는 것보다, ‘자수’하는 게 훨씬 모양새도 좋으니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혹시 중앙일보에 대해 독자들이 오해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늘자(2일) 중앙일보 정정기사만 본 독자들은 ‘누가 지적하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럼없이 인정하는 중앙일보. 그래도 좀 나은 편이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지만 중앙일보 ‘정정보도’의 배경엔 이렇듯 감춰진 진실(?)이 있다. 그건 ‘누가 지적하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럼없이 인정하는 중앙일보’와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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