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도 예방주사를 맞아둘 수 있다. 예를 들어, 과소비를 하기 전에 과소비에 대해 알게 되면 과소비에 대해 거리를 두고 경계하고, 구두쇠 노릇을 하기 전에 구두쇠에 대해 알게 되면 너무 짠돌이처럼 굴지 않으려 한다. 만약 예방주사 없이 과한 소비를 욕망하게 된 뒤에 '그것은 과소비이다' 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말은 객관적 내용가치를 떠나 '나를 부정하고 공격하는 발언' 이 된다. 스스로를 방어하고 자기 소망을 긍정하고 싶은 마음에, '과소비는 좋지 않다'는 말에 중립적으로 접근할 여유를 잃고 '과소비가 뭐가 나빠' 혹은 '이게 왜 과소비야' 류의 적대적 태도를 취한다. 구두쇠도 마찬가지. 이미 구두쇠가 된 다음에 '인간관계에서 너무 인색하면 좋지 않다' 라는 말을 들으면 자기방어가 먼저 발동하기 쉽다. 그래서 이른 간접 경험이 중요하다. 남으로부터 지적당하기 전에, 예방주사를 맞고 생각해 보아야 방어나 합리화의 유혹 없이 접근할 수 있다.

24개월 미만 영유아들에게 TV를 보지 말게 하라는 조언
<TV 쇼크>(하재근, 경향에듀)는 그런 예방주사의 역할을 하기 좋은 책이다. 더불어 이미 이 책을 읽을 정도로 나이를 먹은 독자라면 이미 이 책은 예방주사의 역할을 하기엔 너무 늦었을 것이다. 그게 이 책의 딜레마다. 저자는 TV가 일으키는 해악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TV를 많이 보는 사람은 TV가 나쁘다는 잔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절박하고 독자와의 힘겨루기를 지나치게 의식한다. 저자가 택한 전략은 ‘당신의 아이에게 위험하다’이다. 그럼 저자와 독자가 한 편 먹고 아이의 TV 시청을 규제하는 입장이 된다. 특히 학부모가 독자라면 자녀의 학습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은 거의 설득이 필요가 없으리라.
그런 부모 독자도 방어태세를 취할 만한 영역이 하나 있는데, 만 2세 미만 영유아들에게 TV 시청을 금지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TV와 비디오가 영유아의 언어 발달 및 각종 발달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은 꽤 퍼져 있으나, 절대 보여줘서는 안 될 수준으로 해롭다는 인식은 아직 미미하다. 게다가 맞벌이에 육아에 집안일에 삼중으로 치이는 엄마들이 TV를 켜줌으로써 아이로부터 다만 30-40분이라도 해방될 수 있으니, 안 좋다고 들어도 그걸 포기하기가 쉽지가 않다. 아기에게 ‘좋지야 않겠지만’ 이라 생각하면서도 TV를 틀어준다는 엄마들이 그래서 많다. (요즘은 위험하게도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추세이다.)
저자가 물러서지 않으려는 부분도 바로 거기다. 만 2세 미만에게 절대 TV를 보여주지 말라는 것.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모 소아과 의사 블로그에서도, 심지어 카시트를 쓰지 않는 것(아이를 교통사고 시 어른의 에어백 삼는 것)과 이것 중 어느 게 더 나쁘냐는 질문에도 답을 가늠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이다. 미국 소아과 협회의 공식 권고사항이고, 모든 소아과 의사는 그 사실을 부모에게 고지할 의무도 있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거의 순 협박조로 만 24개월까지의 영유아들에게 TV 따위를 보여주었다간 성장발달에 커다란 재앙이 올 것처럼 서술하는데, 너무 쫄지는 말자.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는, 육아에서 언제나 최선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 차선도 괜찮다고, 엄마가 스트레스 받은 얼굴로 아이에게 짜증내는 것보다는 아이에게 TV를 켜주고 엄마가 휴식하는 것이 차선일 수 있다고도 조언한다.
안타깝게도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처음부터 48쪽까지 뿐으로, 그나마도 근거 자료의 학문적 엄밀성을 묻는다면 탄탄하지 않다. 다소 미심쩍거나 일회성의 조사 결과나 가설까지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주루룩 실어 놓은 경향이 있다. 영유아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하기가 쉽지 않고, 이미 TV를 많이 보는 가정의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뽑아 대조할 수밖에 없다는 걸 감안하고 자료를 보아야 한다. 이 주장은 향후 크로스체크 자료가 될 수 있는 실험근거가 더 뒷받침되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TV는 우리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가
그럼 이 300여 페이지 책에서 다루는 진짜 내용은 무엇인가. 나는 TV를 안 보니까 내 아이도 TV를 거의 안 보는 환경에서 자랄 것이고, 고로 이 책을 안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TV를 잘 안 보기 때문에 그것의 해악이 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 시간을 갉아먹게 만드는 정도? 하지만 내가 몰랐던 진짜 문제는 TV에서 보여주는 ‘세상 보는 방식’이었다.
저자는 정확히 어떤 방송의 어느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 보여지는지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짚어서 알려준다. <내조의 여왕>에서 서민 주부로 나오는 이가 직접 만들어 파는 걸로 나오는 가방이 150만원짜리 이탈리아 명품이고, 방영 직후 매진되었다는 사실. 그 캐릭터가 착용하는 다른 것들도 명품에, 모두 완판되었다는 사실. 시청자의 구매 기준이 자기 소득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드라마에서 제시하는 불합리한 기준(서민이 150만원 짜리 가방을?) 에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파워레인저> 시리즈를 좋아하는 조카는, 변신 합체 캐릭터들을 다 사고도 엔진 포스 시즌이 되면 그 시즌 시리즈를 모아야 되고, 정글 포스 시즌이 되면 그 시리즈를 모으며, 그걸 다 모을 때엔 또 다른 시리즈가 나와 장난감을 사야 된단다. <포켓몬>에는 끝없이 많은 캐릭터가 나오며 “녀석들을 모두 잡아야 해!”라고 외친다. “아이들에겐 물론 ‘그 캐릭터들을 모두 사야 해’ 라는 메시지로 들렸을 것이다.”(131쪽) 아동용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동안, 아동을 소비자로 만들고 싶은 기업의 마케팅에 그대로 협조하는 셈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1박 2일>에서는 강호동이 컵라면을 국물까지 모두 맛있게 마시고 그 장면 시청률이 매우 높았다 한다. 라면 자체가 해롭고, 라면 국물을 마시는 것은 더 해롭지만, 그 사실을 머리로 알거나 누구에게 듣는 것은, 저 장면을 보고 ‘맛있겠다, 먹고 싶다’ 고 느끼는 욕망을 전혀 상쇄해주지 못한다.
폭력과 인간성의 연결고리도 TV에선 다소 수상하다. 차가운 인상의 비호감 캐릭터는 머리를 쓴 전략으로 주인공을 고난에 빠뜨리는 반면, 주인공은 열혈 캐릭터로 주먹을 휘둘러 정의를 구현한다. 이러면 머리 쓰는 놈은 교활하고 주먹 쓰는 놈은 우직한 주인공이 되는 거다.
비교경쟁과 열등감을 자극하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엄친아만으로도 자녀들은 괴로운데, 엄친아가 없어도 TV 프로그램 속 넘쳐나는 엄친아가 모두의 비교대상이 된다. 자연히 TV에 나오는 연예인보다 우월한 일반인은 드물 것이므로, TV는 열등감을 대량생산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현실에 대한 감각을 비틀고, 편견들을 재생산해내는 TV
부유함에 대한 감각도 비틀어 놓는다. “TV를 보면 웬만한 지역마다 재벌이 한 집 이상은 꼭 있는 것 같다. 2011년 7월 기준으로 일일 드라마엔 퀸즈 그룹의 황태자가 등장하고, 월화 드라마엔 몬도 그룹 후계자와 호텔이나 패션 회사의 사장들, 수목 드라마엔 수조 원을 굴리는 자산 운용사 1세, 주말엔 우경 그룹 2세, 진성 그룹 2세, 은성 그룹과 수조 원을 가진 사채왕 2세 등이 나오는데, 이외에도 세세히 살펴보면 준재벌이 부지기수이고 부유한 사람들이 떼로 등장하는 설정도 허다하다.”(190쪽) 나는 살면서 재벌급 부자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대에서 자수성가한, 꽤 큰 중소기업이나 지역 유지급 부자의 자녀라면 두셋 정도 본 듯하다. 내가 만나는, 사교육에 굉장한 돈을 붓는 중산층 학생들의 집도, 고소득 전문직 부모를 두거나 꽤 큰 중소기업 회장의 손주인 경우는 종종 있어도, 재벌/준재벌 급은 아무도 없었다. 이 모두가 그 TV 드라마가 보여주는 세상에서는 무려 ‘주변부’ 인 것이다. 사교육에 거액을 부을 수 없거나 고소득 전문직이 아닌 보통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엑스트라인 셈이다.
성역할에 대한 왜곡도 물론이다. 온갖 프로그램의 진행자 중 여자진행자는 젊은 미모를 기준으로 홱홱 바뀌어 여자의 역할을 장식용으로 만든다는 지적은 오래 되었으니 넘어가자. 나는 드라마가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 <마이더스>의 김희애, <로열패밀리>의 김영애는 남자보다 능력이 뛰어난 여성인 동시에 비인간적이고 차가운 성격으로 나온단다. 인간적인 여자 캐릭터 이민정은, 끝없이 징징대며 남자 발목을 잡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으로 나오고. 물론 그렇지만 드라마를 본 이들은 앞의 둘을 나쁘게, 뒤의 주인공을 사랑스럽게 보게 된다. 드라마 속 모든 악행의 진원지는 대개 악녀이며, <웃어라 동해야>에 나오는 가족들도 회장/사장들은 대인배에 그 부인들은 이기적이고 사악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묘사된다 한다. 읽다가 빵 터진 부분은 <제빵왕 김탁구> 인데, 심지어 각자 불륜으로 낳은 자식이라도 회장의 불륜 자식은 정의롭고 대범하고, 회장부인의 불륜 자식은 이기적이고 음흉하다.
능력과 혈연에 대한 왜곡도 등장한다. <웃어라 동해야>, 단지 핏줄이란 이유만으로 외손자에게 경영권을 넘기려는 상황에서 그것이 부당한 낙하산 인사라고 반발하는 사람들은 파렴치하고 사악한 캐릭터들이고, <시크릿 가든>에서도 핏줄이 아니면서 경영권을 얻고자 한 캐릭터는 비열한 캐릭터이며, <제빵왕 김탁구>와 <천하무적 이평강>에서도 같은 구도가 펼쳐진다 한다. 그리고 재벌의 핏줄은 이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마치 약자가 실력으로 그 방해를 극복해 성공하는 구도를 밟아나간다고. <프레지던트>, <마이 프린세스>, <역전의 여왕>도 그런 플롯이라 한다.
“현실에선 정반대다. 재벌집 자식과 일반인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을까? 설사 그런 경쟁이 있다고 해도 일반인이 재벌집 자식을 권력으로 누르는 게 가능할까? 재벌 오너가 자식을 내세우는데 대놓고 반대할 이사들이 있을까? 재벌 사위가 정치권에 가면 가장 약자인 개혁파 의원이 될까? 재벌은 작은 실수로 필요 이상의 공격을 받는 게 아니라, 명백한 불법을 저질러도 용서를 받거나 웬만한 잘못은 감춰지는 존재 아니었나?”(237쪽)
지역차별의 문제는 시대가 바뀌어 잦아들고 있을 줄 짐작했으나 웬걸. <제빵왕 김탁구>에서는, 김탁구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그와 한마을에서 자랐다는, 강간사주를 받는 악한 캐릭터는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2011년의 시기에 그 드라마 작가는 한 동네 출신에게 그렇게 뻔하게 다른 말투를 부여하며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천사의 유혹> 에서는 모두 서울말 쓰고 사악한 두 캐릭터만 전라도말. <추노>에선 점잖던 캐릭터가 천박하게 핏대 세울 때만 전라도말. 지난 시대의 영상물이 전라도 사람들을 차별하는 정서로 전라도 방언을 나쁜 캐릭터에 부여했다면, 이제 ‘늘 그렇게 등장했던’ 전라도 방언이 나쁜 캐릭터를 나쁜 캐릭터답게 완성시켜주는 장치로서 다시 이용되고 있는 형국이다.
TV 시청에 대한 예방주사로서의 이 책의 가치
저자는 자신도 TV보는 것을 즐긴다며, 이 책의 목적이 TV를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볼 때 보더라도 자신이 뭘 보고 있는지는 알고 보라는 권고에 가깝다. 어른이야 이미 그렇게 자라버렸다 할지라도, 아이들한테는 지금 저런 세상묘사로 가득한 것을 예방주사도 없이 그냥 보여주어서는 곤란할 것이므로.
나는 TV가 이득은 거의 없고 해로움만 많다 하면 아이들로 하여금 거의 안 보도록 규제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강요하지는 말고, 설득하여, 서서히, 잘 지도해서. 지금은 TV를 즐기고 누리면서 동시에 비평을 할 수 있는 시청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는 걸 인정한다. 아이들에게 TV시청을 규제하는 지도는 아무래도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더 크고, 책이나 신문이나 깊이 있는 대화 등 세상을 보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 균형을 잡아주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TV에서 묘사된 해괴한 부분들에 대해서 저자의 안내를 따라 책 한 권 분량 정도는 알아두는 편이 해악을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한 장면을 이상하다고 인식하고 볼 줄 아는 것이, 예방주사를 맞은 TV 시청자의 모습이다.

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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