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특회,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 일베 등을 움직이는 심리적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이를테면 ‘상상된 착취’(imagined exploitation)가 아닐까. 당연히 받을 몫을 ‘내부의 타자’에게 빼앗겼다는 박탈감. 그래서 나보다 ‘자격’과 ‘능력’이 없는데 몫을 더 받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들을 찾아내고 공격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그것이 ‘상상된’ 착취인 이유는 실제 착취하고 배제하는 주체는 내부의 타자가 아니라 자본과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국가에 저항하지 못한다. 자신의 ‘자격 있음/없음’과 ‘유능/무능’을 인준해주는 주체가 바로 자본과 국가인 까닭이다. 재특회와 일베는 하늘에서 떨어진 괴물이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남한테 큰소리 한번 못 내는 평범한 시민이다. 만약 괴물이 있다면, 평범한 시민 상당수가 저런 사고방식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 칼럼니스트 박권일, <한일의 신우익> 중에서 (링크)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의 죽음 이후 인터넷상에서 보이는 어떤 조류는 칼럼니스트 박권일이 분석한대로 ‘상상된 착취’를 공인받으려는 시도일 것이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여성전용거리’의 설치를 주장했다는 증거를 날조해내고, 여성가족부 예산이 국방부 예산에 맞먹을 정도라는 루머가 생성된다.
▲ 이 카카오스토리 계정은 사칭으로 밝혀졌다.
일본의 재특회가 ‘재일코리언’(재일한국인)의 특권을 말하며 일본인이 차별당하고 있다고 말하듯, 한국의 넷우익들도 호남인이나 여성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2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 사회에서의 ‘유태인’과 같은 존재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일 게다. 소수파라서 공격하기에 부담이 없으면서도, 자본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계급문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상징 말이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넷우익들이 찾아내는 대상들은 이런 부분에서 다소 부족하다. 재일한국인들은 슬롯머신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아무리 포장해 봐도 유태인처럼 부자로 보이지가 않고, 호남인들은 현재의 인구가 아니라 출신자까지 합치면 인구의 30%에 육박할 것이기에 숫자도 제법 많고 단합도 잘 되어 있다. 조중동조차도 ‘일베’를 향해 쏟아지는 사회적 압박에 동참한 현실은 그들이 한국 사회의 미묘한 ‘상식의 선’을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그런 상황에서 넷우익들에게 안성맞춤의 비판대상이 ‘여성’이 되어 가는 세태가 존재한다. 얼핏 생각하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어떻게 안전한 비판대상인지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하는 여성은 보편적 여성이 아니라서 문제다. 그들의 비판대상은 풀어서 써보자면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았고, 중간 정도 수준 이상의 집에 살고 있거나 취직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어 약간의 재력을 갖춘, 남성에게 적당히 어필할 정도의 외모자본을 물려받았거나 가꾼 젊은 여성’에 한정된다.
이런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불공정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를 보편적인 여성들이 보편적인 남성들보다 우위에 있는 증거라고 슬쩍 바꿔치기 하는 것이 ‘여성 비판자’들의 논법이다. 그리고 이는 남성연대나 ‘일베’와 같은 한정된 대상을 넘어 꽤 많은 남성들에게 공유되는 정서다.
▲ '남성연대' 홈페이지 화면 캡쳐 사진
마음에 들지 않는 젊은 여성의 행위를 촬영하여 인터넷에 올리고 거세게 비난하는 조류는 ‘여성혐오’가 온라인 폭력을 넘어 실질적인 오프라인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여성혐오 문제는 향후에도 한국 사회의 문젯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상상된 착취’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 인터넷에서 초보적인 검색도 하지 않은 잘못된 판단이 내려지는 수많은 사례를 발견하게 된다. 너무나도 투명하게 많은 정보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러한 정보를 알지 못하고 편견에 부합한 날조를 받아들이는 역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사회문제를 진보담론이 아닌 ‘상상된 착취’에 의거한 극우적 담론으로 이해하는 상황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여성가족부는 남성연대에만 문제가 되는 대상이 아닐 것이다. ‘여성’과 ‘가족’의 결합은 진보주의자들에겐 다른 의미로 불편한 것이고, 그 정책은 종종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에 대한 진보담론의 비판이나 대안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질 때, 여성가족부에 대한 반감을 여성혐오로 표출하는 세태도 줄어들 수 있을 거라는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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