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누구의 것인가? 만인(萬人)의 것이다. 아무리 먹는 물을 사고파는 시대가 되었다 해도, 물이 공공의 소유라는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을 관리하는 주체 또한 공공의 위임을 받은 공적 기관이어야 한다. 사적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 물을 관리하는 권리를 선뜻 내줄 수 없는 이유다. 우리가 지금껏 공공재라고 불러온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원칙을 깬 몇몇 국가에서 어떤 재앙이 초래됐는지 우리는 이미 똑똑히 보아 왔다. 돈이 없으면 물조차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해보라. 제대로 씻을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사람은 오로지 이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뿐일 것이다. 효율이라는 허울을 쓴 민영화는 특정 기업의 배만 불려주는 특혜에 지나지 않는다.

▲ 헨리 조지
19세기 말의 사회개혁가이자 저술가, 언론인이었던 이 책의 저자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는 한 세기 전에 이렇게 물었다. “땅은 누구의 것인가?” 이런 저자의 문제의식은 실은 지극히 단순한 의문에서 나온다. 생산력이 증가하는 ‘진보’가 이뤄졌는데, 어째서 생존 최저임금이라는 ‘빈곤’이 발생하는가? 물질적 진보가 빈곤을 줄이기는커녕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명화가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지 못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오랜 성찰 끝에 그 원인을 ‘토지사유제’에서 찾는다. 저자는 자본주의 발전이 수반하는 빈곤 문제의 원인을 임금기금설이나 맬서스의 인구론으로 설명하는 방식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책의 제목처럼 진보와 빈곤이 동시에 나타나는 진정한 원인은 바로 ‘토지사유제’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땅을 가진 지주가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토지의 가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토지사유제는 정의롭지 않다”고 단언하는 저자가 제시하는 단순하고 자명한 두 원리는 이렇다.

1. 모든 사람은 자연이 베풀어준 것을 사용하고 향유할 평등한 권리가 있다.
2. 모든 사람은 자신의 노동으로 생산한 것을 사용하고 향유할 배타적인 권리가 있다.

저자는 토지사유제와 노예사유제는 사유재산을 침해하고 강탈하는 행위를 합법화·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더 나아가 개인에 대한 끔찍한 체형을 수반하는 노예사유제보다 오히려 더 악랄하면서도 그 가공할 잔혹 행위가 잘 드러나지 않는 보다 세련된 방식의 노예제도인 토지사유제야말로 더 나쁜 것이라고 말한다. 토지사유제가 빈곤의 원인이며, 부의 분배가 불평등한 원인은 토지소유의 불평등 때문이다. 따라서 빈곤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토지사유제라는 ‘악(惡)’을 제거하는 것이다. “빈곤을 타파하고 임금이 정의가 요구하는 수준, 즉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전부가 되도록 하려면 토지의 사적 소유를 공동소유로 바꾸어야 한다. 그 밖의 어떠한 방법도 악의 원인에 도움을 줄 뿐이며, 다른 어떤 방법도 희망이 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저 유명한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다. 쉽게 말하면 이미 지대의 일부를 조세로 걷고 있으니, 조세 방법을 약간 바꿔서 지대 전체를 조세로 징수하고 대신 다른 조세를 면제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헨리 조지의 토지 사상을 일컬어 ‘지공주의(地公主義)’라고 한다.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토지에 대해서 사유재산권을 규제할 수 있다는 이른바 토지공개념(土地公槪念)도 그 정신에 있어서는 지공주의와 같은 맥락이다.

▲ '진보와 빈곤' 책표지
이쯤 되면 저자를 평등과 분배에 치우친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오히려 사회주의를 ‘착각’이며 ‘망상’이라고 비판했다. 저자는 책의 여러 대목에서, 자신은 문명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운명이며, 물질적 진보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자연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향유하라고 베풀어준 땅을 배타적인 일부가 소유하는 인간의 ‘부정의’ 때문이다. 누구나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엉뚱한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가 내놓는 해법은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적인 얘기가 아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사유토지의 매수도 환수도 아니다. 매수는 정의롭지 못한 방법이고, 환수는 지나친 방법이다. 현재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대로 토지를 갖게 한다. 각자 보유하는 토지를 지금처럼 자기 땅이라고 불러도 좋다. 토지를 사고파는 것도 허용하고, 유증과 상속도 할 수 있게 한다. 알맹이만 얻으면 껍질은 지주에게 주어도 좋다. 토지를 환수할 필요는 없고 단지 지대만 환수하면 된다.”

그 열매는 생산 증대와 분배 정의 제고를 넘어 모든 계층에 이익이 될 뿐 아니라 더 높고 고상한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다. 저자는 평등 속의 어울림, 자유라는 태양, 정의에 기초한 사회구조를 꿈꾸었다. 그래서 문명화된 사회의 빈곤층이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자유를 누리는 아마존의 미개인보다도 못한 자유 없는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팔자’라고 치부하며 체념해선 안 된다고 역설한다. 심각한 토지 소유 편중과 주택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지난 1990년 봄, 폭등한 전월세 가격을 감당할 길 없어 거리로 나 앉은 세입자 17명이 자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물이 그렇듯 땅 또한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시대를 내다보는 뛰어난 통찰력과 냉철한 이성, 인간에 대한 도저한 애정으로 씌어진 이 책은 토지경제학의 바이블로 불리며 한 세기를 넘나드는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다시금 주목받아 마땅하다.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바꾸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저자의 열정은 그의 묘비명에 새겨진 자신을 향한 서약의 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분명히 하고자 노력해 온 그 진리는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오래전에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결코 숨겨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동지들이 발견할 것이다. 이를 위해 수고를 할 사람들, 고난을 받을 사람들, 필요하다면 죽기까지 할 사람들. 이것이 진리의 힘이다.”

2001년 KBS에 기자로 입사했다. 2004년 8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포커스>를 제작 담당하면서 언론에 관심 갖게 되고, 2006년 11월부터 1년 동안 50회에 걸쳐 미디어오늘에 <김석의 영화읽기>를 연재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보도한 탐사저널리스트 시모어 허쉬의 저서 <밀라이 학살과 후유증에 관한 보고>를 번역 출간 준비 중이고, 현재 KBS 사회팀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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