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5주년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에 경축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한 명 한명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국가로부터 인적 지원도 받는다. 국회의원 1인당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급 비서 1명, 7급 비서 1명, 9급 비서 1명과 인턴 2명 등 총 9명의 직원을 둘 수 있으며 이들의 급여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부터 나온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정책을 발의하기 위해선 아직 부족한 지원이란 시각도 많지만 민주화 이후 인적 지원은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의 정부 시절 4급 보좌관을 1명 더 쓸 수 있도록 법을 고쳤고 국회인턴제 역시 1999년부터 시행되면서 국회의원들의 인력풀을 넓혔다.
인턴을 제외한 7명의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으로 '공무원 보수규정'에 따라 급여가 지급된다. 이들은 호봉수 적용을 달리 받기 때문에 2012년 기준으로 4급은 연 6,961만원(21호봉), 5급은 연 6,042만원(24호봉), 6급은 연 4,197만원(11호봉), 7급은 연 3,629만원(9호봉), 9급은 연 2,801만원(7호봉)을 수령한다. 인턴(비공무원) 급여는 국회 내규에 따라 월 133만원이 지급되고 있다. 하지만 급여는 기본적으로 매해 예산에 따라 달라지고 예산논의에 따라 동결되기도 한다.
국회에도 존재하는 무급인턴
그런데 국회의원실에서도 이 유급의 9명이 직원 이외의 인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럴 때엔 대체로 인턴 채용 공고 뒤에 ‘무급’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국가가 급여를 주는 2명의 인턴 외의 국회 인턴의 처우는 의원실의 재량이다.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실 급여가 안 나오더라도 정치자금으로 처리해서 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무급’이라 적혀 있다 하더라도 교통비조로 일정 금액을 챙겨주는 경우도 있다.
한 비서관은 “무급인턴 중에는 방학 때 1~2주씩 일하는 경우도 있고 몇 달에 걸쳐 주 1회 정도 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까지 비판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회 무급인턴이 고용되는 사례 중에선 의원실에서 모집한 것이 아닌 사례도 꽤 있다고 한다. 지역구에서 ‘스펙’ 삼아서 방학 때 한 달 정도만 일하게 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시민단체 등에서 유료 강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의원실 체험 프로그램을 집어넣고 의원실에 부탁해서 무급인턴을 밀어 넣기도 한다. 반드시 의원실의 의지로 무급인턴을 채용하는 것은 아니며, 민원 처리나 조직 관리의 성격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 채용게시판을 보면 몇 달간 지속적으로 일할 무급인턴을 구한다는 채용공고도 흔하다. 또 소위 입법보조원이나 명예보좌관 채용공고도 결국은 무급인턴을 구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입법보조원은 2명까지 채용이 가능한데 무급인턴과의 차이는 출입증이 나온다는 것 뿐이다. 그래서 입법보조원에 대해선 의원실을 자주 방문하는 인사를 임명하는 식의 ‘편법 운영’도 존재하지만, 한편으론 입법보조원으로 사람을 뽑아서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다른 비서관은 “무급인턴은 무한대로 제한 없이 쓸 수 있기 때문에 문제의식이 없는 의원들은 많이들 쓰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국회 무급인턴을 ‘열정노동 착취’나 ‘스펙부여’ 중 전적으로 한 가지에 해당한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워 보인다. 국회 관계자들은 일이 많은 의원실의 경우 무급인턴을 교통비 정도만 주면서 많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이 경우엔 제도를 경유한 ‘열정노동 착취’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한 많은 의원실에선 굳이 무급인턴들에게 시킬 일이 없다는 증언도 있다. 선거시기라면 SNS 관리나 전화응대 등의 필요성이 생기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의원실이 가장 분주할 국정감사 기간이라 해도 무급인턴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한 비서관은 “(일이 필요해서 뽑는다기보단) 오히려 대학생들에게 의정활동이 이런 것이란 걸 보여주겠다는 취지의 홍보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 국회 홈페이지 의원실 채용 정보에서 '무급'이란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꽤 많은 게시물이 나온다.
차라리 유급인턴이 더 문제란 시선도
국회 관계자들을 취재해본 결과 내부 관계자들은 무급인턴보다는 유급인턴에 대해 더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유급인턴을 거쳐 별정직 공무원이 된 한 관계자는 “유급인턴 중에선 사실상 비서관급의 노동을 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라며 유급인턴의 처우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대학재학 중에 경험을 위해 인턴을 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고 대체로 대졸자들이 국회를 직장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고 유급 인턴으로 들어온다. 인턴이 아니라 하위직급으로 여긴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유급인턴을 경험했던 한 기자는 “국정감사 때는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시키는데 그러면서 120만원을 준다는게 말이 되는가”라고 불평했다. 그는 "원래 보좌관은 야근수당이 따로 없는 직종이긴 하지만 인턴은 명절상여금도 없다. 보좌관과 비서관들은 150% 상여금을 받을 때 인턴들은 의원활동비에서 내키는대로 챙겨주는 금액을 받고 아예 못 받기도 한다"라고 증언했다. 국회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관행은 현재도 마찬가지이며 상여금 대신 상품권이 지급되기도 한다. 물론 별정직 공무원들의 경우 이런 토로를 들으면 "그러나 우리 상여금이야 연봉에 다 포함된 것이니 사실 받는다 하더라도 조삼모사다"라고 씁쓸하게 반응한다.
대공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른 문으로 출입하는 경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원실의 별정직 공무원들과 유급인턴 사이에도 출입증을 통해 양자를 구별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원래는 공무원 출입증과 인턴 출입증이 얼핏 봐도 확연하게 구별되게끔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다. 최근 몇몇 의원들이 문제제기를 해서 그나마 다소 비슷한 모양으로 바뀐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출입증도 모양은 비슷하다지만 공무원증엔 아무것도 안 써있는 반면 인턴 출입증엔 ‘출입증’이라 쓰여져 있어 구별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한 설움이 있다지만 간접고용/저임금노동이 지배적인 노동의 형식이 된 한국 사회에서 그 자리를 포기하기도 쉽지가 않다. 다른 관계자는 “요즘 취업이 어렵다 보니 무급이든 유급이든 인턴 자리 하나 얻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인턴에서 공무원으로 올라가는 일은 더 어렵다. 대학졸업하고 다른 사회경험 거쳐 들어온 이들이 일년 넘게 인턴으로 있기도 한다. 유급인턴 채용공고가 나가면 경쟁률이 수백대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 비서관은 “우리(의원실에서)는 일부러 구직자를 귀찮게 하려고 에세이를 써서 내라고 했는데도 사십명이 넘게 지원하더라”고 설명했다.
IMF 이후 한국 사회의 일자리의 질을 악화시킨 것은 민간기업 뿐만이 아니라 공공부문이기도 했다. 사회 다른 영역에 대해 일종의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영역이 일자리의 질을 악화시키면서 완충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며 사회문제를 악화시켜 갔던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등의 요구를 받고 있는 국회란 공간에서 인턴이란 이름을 가진 불안정한 지위의 이들의 처우를 살피면, 사회문제의 모범이 되지 못하는 ‘공공부문의 역설’과 실수령 100만원대 초반 금액으로 서울지역 4년제 대학 졸업자도 쉽게 부릴 수 있게 된 최근 한국 사회의 실상이 보인다. 그리고 여의도에서 집행되는 예산은 무조건 줄일 것을 요구하는 ‘반여의도 포퓰리즘’은, 종종 이런 사회문제를 개선하기는커녕 악화시키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