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컴플레인 마스터’다. 이 영역에서 마스터급이 되려면 한국소비자원에 직접 연락이 가능한 담당자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하고, 컴플레인 이력에 올릴 ‘레전드’급 사례도 몇 가지 확보해야 한다. 가령 동생은 몇 년 전 마티즈를 샀는데, 썬루프 설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가 새기 시작했다. 자동차 회사에 문제제기를 하니 처음에는 물건에는 잘못된 게 없다고 하다가, 몇 차례 고성이 오간 후에 다른 담당자가 전화를 해 수리를 해줄 수는 있으나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차를 직접 서비스센터까지 가지고 와야 한다고 말해 동생의 ‘전투력’을 급상승시켰다.

내 동생은 컴플레인 마스터
동생은 화려한 경력을 뒤돌아보며 자신의 ‘테크트리’를 확인하고는 책임자를 넘어 결정권자에게 바로 문제제기를 해야겠다고 판단하고서 자동차 회사 사장의 연락처를 찾기 시작했다. ‘구글링’을 한 지 한 시간 남짓, 드디어 사장의 이메일을 찾아냈다. 아뿔싸, 그런데 예상 못 한 난관이 있었으니, 마티즈를 만든 자동차 회사는 다국적기업에 인수합병이 되어 한국지사 사장이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한 달 동안 공부에 전력해 반에서 1등을 한 번 한 이후로는 평생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온 동생은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역시 구글 번역기를 돌리기 시작했다(좋은 세상이다).
그렇게 또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영어 문장과 한국어 문장이 뒤섞인 A4 한 장 분량의 항의 서한이 마련되었고 사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서비스센터 총괄 담당자가 직접 전화를 해 사장에게 보낸 메일을 함께 읽어봤으며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여 문제를 해결해드리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직접 차량이 있는 직장에 기사를 파견해 차를 옮겨가서 해당 부분을 수리한 후 다시 편한 곳으로 차를 가져다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정도에서 만족했겠지만, 이 ‘컴플레인 마스터’는 그렇다면 그 빈 시간 동안 차량을 쓸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다시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담당자는 그렇다면 그 동안 쓰실 차량을 실어가서 드리고 수리할 차를 가져오겠노라고 대답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지금도 친척들이 모이면 집안의 자랑(?)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들의 반응은 크게 셋으로 갈린다. 동생이 너랑은 정반대다, 집안에 그런 사람 하나쯤 있어야 한다, 아무리 고객이라지만 너무 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다.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고 전자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이런 컴플레인 사례는 매일처럼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오고, ‘LG유플러스’를 ‘LG가 불났어요’로 잘 못 알아듣는 고객에게 몇 분에 걸쳐 같은 말을 반복하는 콜센터 상담원의 사례가 미담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부당한 기업의 횡포에 맞서는 소비자의 당당한 권리 찾기인지, ‘고객은 왕’이라는 진리를 현실에서 구현하며 이참에 ‘갑질’도 한 번 해보겠다는 못된 심보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자본의 시대에 발 딛고 사는 우리 모두가 소비자라는 사실이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나 혹은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컴플레인’을 해결해 ‘드려야’ 하는 입장에 수시로 놓인다는 점이다.
컴플레인에도 왕도는 있다
<웬만해선 그녀의 컴플레인을 막을 수 없다>는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그리고 진작 나왔어야 할 책이다. 저자 김지영은 독립 광고대행사 TBWA KOREA에서 일하는 광고인으로, 별명이 ‘일산 휘발유(불만 붙이면 활활 타오른다는 뜻)’와 ‘욱지영(욱하는 성격 탓)’이라고 한다. 부당한 수수료 요구에 차액 7만원을 100원짜리 동전으로 줬다는 ‘레전드’급 사례를 보유한 ‘컴플레인 마스터’로, 초 단위로 계산할 수 있는데도 분 단위로 계산해 부당 이득을 취한 통신사 요금제를 바꾸는 데 일조하고, 편의점으로 책을 받으면 당연히 지급되어야 할 추가 마일리지가 고객이 다시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지급되는 문제를 바로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마스터 오브 마스터,’ 컴플레인계의 조상님 되시겠다.
이 책은 그가 전화통에 불이 나고 목이 쉴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체득한 컴플레인 사례를 성과, 종류, 방법에 따라 분류하여 일목요연하게 전해준다. 우선 컴플레인이 무엇인지 정의부터 살펴보자.
컴플레인(complain)이란 소비자가 유형무형의 상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또는 구매한 상품에 관하여 품질이나 서비스의 불량 등을 이유로 불만을 제기하거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하자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클레임(claim)에 비해 컴플레인은 주관적인 만족 여부, 심리적 기대 수준 충족 여부까지 포함하고 있다.(26, 27쪽)
따져 묻는 쪽이나 받아들이는 쪽이나 컴플레인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주관적인 만족 여부’를 쉽게 풀면 ‘(상품은 같은데) 마음이 변했다’가 되겠고, ‘심리적 기대 수준 충족’을 다른 말로 하면 ‘(정가 5만 원 상품을 할인가로) 2만 원이나 주고 샀는데 왜 이 모양이냐’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컴플레인의 법도를 두 가지로 정리하는데, 하나는 함께 사는 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선의가 분명할 때, 다른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기업이나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외면 받는 것이 싫을 때다. 물론 이런 선의로 컴플레인을 한다 해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늘 같은 선의로 대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컴플레인에도 ‘밀당’의 기술이 필요하다. 저자는 오랜 수련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확신과 신념에 찬 설득력+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순발력=컴플레인 능력’이라는 공식을 제시한다. 또한 쉽게 설득이 되지 않을 때에는 사람, 장소, 때를 바꾸는 삼변(三變) 기술을 활용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니까 대화 창구를 바꾸거나, 의사를 전달하는 장소나 방법을 바꾸거나, 며칠 여유를 두고 새로운 보상 방법을 정리해서 요청해보라는 말이다.
책의 앞부분만 읽고서 ‘컴플레인에 대단한 비법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별 거 없네’라고 실망한 독자들도 이 정도 디테일한 기술이 나오면 줄을 치며 읽게 될 텐데, 아, 진정한 고수란 역시 다른 법. 그는 한 단계, 아직 몇 단계 높은 차원에서 컴플레인의 세계를 조망하고 있었으니, 그 깨달음이 무엇인지 눈을 씻고 귀를 열어 다시 찾아보자.
모든 이기(利己)의 궁극에 이타(利他)가 있느니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건 컴플레인의 목적이다. 내 화를 풀거나 고객 센터 직원을 괴롭히는 게 목적이 아닌데도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애초에 얻어내려 했던 게 무엇인지도 잊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명한 컴플레이너라면 조금 숙이고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도 잘못된 부분에 대해 정확한 해명을 듣고 문제 상황에 대한 합당한 해결책을 얻어내는 게 우선 아니겠는가 말이다. 대부분의 고객 센터 상담원은 ‘권한’이 없다. 당신이 듣기에 답답하고 성의 없어 보여도 그렇게 응대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경쟁사에서 파는 제품을 구해다주었다든가 고객이 놓고 간 비행기표를 공항까지 전해주기 위해 물건 판 값보다 많은 교통비를 썼다는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사례는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 최선의 판단을 내릴 것. 고객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행할 것. 그 외의 규칙은 없다”는 철저한 회사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이고, 가장 열악한 직업 1위에 꼽히며 우울증, 생리 불순, 수면 장애 등의 질병을 떠안고 사는 한국의 콜센터 직원에게는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아,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는가. 이렇게 쉽게 흔들려서는 절대 마스터의 세계에 입문할 수 없다. 애초의 목적을 잊지 말자. 우리의 상대는 콜센터 직원이 아니라, 부당함을 복잡함과 불편함에 숨겨 당연함으로 위장하는 기업의 못된 짓이고, 이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건 개인의 사리사욕뿐 아니라 공명정대한 정의사회 구현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저 컴플레인을 통해 콩고물 좀 얻어보려는 마음이었다면 굳이 13800원이나 주고 이 책을 사지도 않았으리라. “정당한 소비자의 권익을 쟁취하려면, 당장 눈앞의 소득이 없더라도 지치지 않고 싸워나가는 체력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가르침을 잊지 말자.
또한 이제 막 컴플레인의 세계에 들어선 초심자가 되새겨야 할 이야기도 하나 있는데, 바로 “해봤자 소용없더라. 혼자 떠들면 뭐 하나, 세상이 바뀌지 않는데.”라는 패배 의식이다. 소용이 없거나 바뀌지 않는 게 아니다. 이런 태도는 성공에 대한 학습이 없기 때문인데, 이 책에 숱하게 나오는 실패와 성공의 사례를 차분히 살펴본다면 당신은 더욱 빨리 컴플레인 마스터의 길에 오를 수 있을 게다.
물론 컴플레인 마스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컴플레인이 필요 없는 좋은 세상도 한층 빨리 다가올 터, 그러면 뭣 하러 컴플레인 마스터가 되어야 하냐고? 이 책의 첫 장에 적힌 이 글귀를 기억하자.
“모든 이기(利己)의 궁극에 이타(利他)가 있다.”
모두가 소비자인 시대, 이제 컴플레인은 시민 교양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이 책은 그 첫 번째 교과서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공식 애칭은 서경식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바갈라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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