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사건은 국정원 업무 일환인 대북심리전을 대선 개입이라고 규정한 민주당의 실패한 정치 공세다” -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
“국정원 댓글 사건이 사실 국정원 게이트가 아니라 민주당 게이트다” -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수사 담당 검사가 좌익 종북이라 믿을 수가 없다” -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국정원 기관보고 공개여부를 놓고 국정조사가 파행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 이전에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의 발언이 가관이다. 한겨레 24일자 사설 제목대로 <국정원 대선개입 부정하며 무슨 국정조사인가>라고 물어야 할 판이다.
여러 발언 중에서도 압권은 권성동 의원이다. 권 의원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무비판적으로 인터넷 글이 사실인양 받아들이고 건강한 대한민국 사회를 좀먹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 어린 학생들과 국가관 역사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국정원이 심리전 활동을 해야 한다”라면서 “국정원 직원임을 눈치 모르게, 공무원이 댓글 단다는 생각을 못하게 교묘하게 댓글을 다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권성동 의원의 주장 속에서 국가정보원은 국정홍보처이면서 학교이며 신분을 속이고 국민들에게 선동해도 된다는 점에서 그 이상이다. 워낙에 상식 이하의 주장을 하다 보니 민주당으로선 출석한 증인들을 심문하기 전에 새누리당 의원들의 잘못된 전제에 반박을 해야 할 판이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시간을 끄는 것이 새누리당이 노리는 것일 테지만, 민주당은 이에 대해서도 반박하기 보다는 의원들 각자가 자기 할 말만 하는 모양새다. 물론 정청래 의원 질의시간에 기존에 이미 확보된 자료라지만 “댓글이 삭제되고 있는 판에 잠이 오냐”라는 경찰 발언이 담긴 CCTV 동영상 같은 것을 트는 것이 필요했고 “농담이라더라”라는 말도 안 되는 경찰청장의 해명을 이끌어내는 정도의 수확은 있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경우 이 문답을 전혀 기사에 싣지 않는 등 언론 환경이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정원이 업무로 댓글을 단 것을 통상적인 대북심리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새누리당의 주장을 전제부터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의원들의 발언에서 그대로 드러나는데, ‘국가정보원의 댓글을 통한 여론공작→민주당 고발 이후 경찰의 수사 축소 및 토론회 직전 무혐의 발표→3차 TV토론 직전 발표로 인한 여론변화→대선 결과에 영향’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물론 상황을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민주당은 이 개별의 주장들을 입증하는 세부사항에 주목하지 못하고 이 ‘서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수사결과가 다르게 발표되었으면 대선 결과가 어떻게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사실상 시간낭비다. 법무부장관이 그냥 “모르겠다”라고만 답하면 되는 편한 질문이고 실제로 그렇게 답했다.
▲ 금일(26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경찰 CCTV 동영상과 이에 대한 경찰청장의 해명을 기사에 전혀 다루지 않았다. 민주당은 언제나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중이다.
경찰수사 왜곡 문제는 따로 세부적으로 따져야겠지만 근본적으로 새누리당이나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국정원 댓글 자체를 심각한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면 그 심각성을 알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보수언론 보도만 대략 본 시민들은 국정원의 댓글이 북한을 비판하고 정부 정책을 옹호한 정도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간 ‘네티즌 수사대’가 국정원 요원들의 것이라 언론보도에 나온 계정들의 댓글을 검색해서 밝혀낸 바는 그 정도 수준을 크게 상회한다. 이전 기사에서도 지적했듯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심각한 비하를 넘어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했지만 다소 완화되어 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었던 ‘증오의 인종주의’를 인위적으로 재생산하고 있었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 (기사 링크)
‘홍어’나 ‘전라디언’에 대한 그들의 용법을 따른다면 인터넷상에서 그에 대응하는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정치적 적대자를 인종주의적으로 비하하는 일은 한국 사회에 흔하기 때문이다. 어떤 개혁세력 지지자들은 경상도를 ‘개쌍도’로 부르고 ‘신라왕가 흉노 기원설’에 착안하여 경상도인을 ‘흉노족’이라 부르며 지리적 특성상 일본인들과 피가 섞여 있을 거라고 해서 ‘왜놈’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경상도는 가해자의 땅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상대편의 호남비하와는 다르게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실세계의 권력관계를 고려해 봤을 때 ‘영남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비하’가 호남인에 대한 그것만큼이나 끔찍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됐건 그런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제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어떤 사이트에 이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고 가정해보자.

'개쌍도 잡종놈들은 흉노의 후예이며 왜놈들과 피가 많이 섞인 것들이지. 박정희 전두환도 왜놈들이라 친일짓을 한겨‘

또 그 댓글들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도 ‘운지’ 등의 비하를 일상적으로 했다고 추측되는데, 그에 대해서도 측근의 총탄에 사망한 박정희 대통령의 사례를 제시해서 얼마든지 누군가에게는 발랄하고 누군가에겐 혐오스러운 댓글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북한 실상을 알리고,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댓글을 다는 것 역시 국정원의 대북심리전이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사태의 심각성을 따진다면 인종주의적 비하 댓글이 훨씬 심하다. 이쪽은 선거결과에 상관없이 보편적 인권에 대한 유린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지시를 받고 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 책임이 남게 되는 상황이다.
검찰이 언론에 밝힌 댓글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더 많은 댓글을 본 민주당 의원들은 그런 내용이 포함되어 왔음을 꾸준히 시사하여 왔다. 가령 김현 의원은 ‘홍어’나 ‘전라디언’과 같은 말도 국정원이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인터넷 문화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라디언’은 2천년대 초에도 쓰였으니 국정원이 호남정부인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호남비하를 했다는 무리한 주장이 되고, ‘홍어’ 역시 기원은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인데다가 2009년 기아 타이거즈의 갑작스러운 우승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반인보다 더 많은 국정원 직원 댓글을 접했을 김현 의원 등의 발언은 그 댓글이 ‘증오의 인종주의’가 포함되어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 민주당 김현, 진선미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에서 방청석에 앉아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호남비하’도 대북심리전이 될 수 있는지를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호남비하가 대북심리전이 될 수 있다면 영남비하도 매국노를 방지하는 애국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호남비하란 것이 호남인이 북한에 나라를 팔아먹을 거란 ‘환상’에 기댄다면, 영남비하는 영남인이 미국이나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을 거란 ‘환상’에 기대니 말이다.
만일 국정원 댓글 중에 그러한 내용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댓글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여야 합의하에 특위의원들이 댓글 내용들을 상세하게 검토하면 될 일이다. 민주당 역시 그런 식으로 상대방을 압박해야 한다. ‘정권을 빼앗긴 서사’를 만들어내는 건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데에만 유효할 뿐 정국을 주도하게 하지 못한다. 도대체 이런 활동을 대북심리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그 전제에서부터 상대방을 논파하고 압박해야만 사람들이 문제의 핵심을 인지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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