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허구다. 이 말을 하기엔 요즘 드라마 몇 편은 현실의 먼지를 치열하게 털어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연상연하의 멜로물로, 또 누군가에게는 정직하지 못한 사법체계에 대한 고발로 비쳐지고 있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대한 이야기다. 본래는 이번 주 종영했어야 하나 2회 연장으로 다음 주까지 너목들의 신드롬은 계속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연장의 부작용은 그다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아니 부작용보다는 2회 연장이 가능케 해준 황달중과 서도연 디테일한 스토리는 대만족이었다.

소위 귀신살인사건이라 이름붙인 황달중 사건에 대해 결론은 검찰의 공소취소로 인해 판사는 공소기각으로 사건을 무효화시켰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배심원은 전원일치 무죄 평결을 냈으나 판사는 그 평결이 법리와 부딪히는 부분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판결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의식을 찾지 못했던 황달중의 전처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결국 서도연은 공소취소 제안을 한다.

판사는 “국민이 법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법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요지의 판결문으로 공소기각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건 아무리 느슨하게 생각해도 허구의 극치였다. 일부 진보적인 판결을 내는 판사들이 없지는 않지만 법이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절대 벌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낭만적인 작가가 생각할 수 있는 법 혹은 법관에 대한 이상일 뿐이다.

모든 사실을 들은 서도연의 엄마가 판사 서대석을 비난하며 집을 나가자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오히려 화를 내는 모습이 현실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제 마무리를 향한 지점에서 리얼리티보다 허구를 택했다. 그 허구가 주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어쩌면 도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뉴스에서, 법정에서 볼 수 없는 이 허구적 통쾌함, 후련함을 통해서 적지 않은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 반면 서도연은 26년 만에 찾은 아버지의 병실을 찾았다. 그 순간에도 작가는 유머를 잊지 않는다. 커다란 냉장고 꼭대기에 올려놓은 칫솔이 손에 닿지 않아 바동대는 황달중의 손 위로 뭔가 쑥 하고 올라왔다. 물론 176의 장신 이다희의 손이다. 그러더니 키가 작다고 놀린다. 무심히 지날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더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부녀의 해후를 위한 대단히 감각적인 연출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친아버지의 존재만도 충격인데, 그 아버지가 친엄마를 죽이려 한 피고인으로 만나게 됐으니 다시 아버지와 딸로 평범하게 대하기란 얼마나 어렵겠는가. 시간 여유만 있다면 이 부녀의 이야기는 풀어갈 것이 너무 많다. 그것을 모두 생략하고 키 작은 아버지에게 높은 곳의 물건을 내려주는 딸의 뭔가 코믹하고, 어색한 장면으로 슬쩍 웃게 만들어 26년의 어색함을 덜게 한 것은 기발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시콜콜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 부녀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대신 서도연은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한다. 심수봉의 노래 사랑밖에 난 몰라 노랫말 ‘그리운 세월만큼 안아주세요’가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 가사를 서도연의 그림을 보면서 이해를 좀 더 하게 됐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여자들이 수다스럽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초상화 한 장 그려주는 것, 한 번 안아달라는 것으로 기나긴 세월의 사연을 대신하겠다는 기세는 얼마나 넓고도 깊은 마음이란 말인가 말이다. 그리고는 손이 오그라들 표정으로 셀카를 찍어 신변호사와 장혜성에게 보낸다. 이 유치한 끝은 뭔지. 다분히 PPL을 위한 설정이었지만 그 의도마저도 용서케 했다.

말이 나온 김에. 추적자의 박경수 작가가 고도의 은유와 과감한 직설화법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질타하는 것도 좋지만 너목들의 박혜련 작가 스타일로 부드럽고, 유머스럽게 현실을 꼬아 뒤집는 것도 의외로 후련하다. 물론 너목들의 신드롬에는 그저 연상연하의 달콤한 멜로에 더 무게를 두는 시청자도 많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작가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음식재료가 딱딱하다면 요리하는 사람은 그것을 먹기 편케 해줄 재주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혜련 작가는 드라마의 소재를 요리하는 훌륭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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