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커져버린 경전철 사업, 어설픈 해명들

시작부터 꼬였다. 꼬고자 했던 쪽은 의도대로 되었으니 감사할 일이지만 뻔히 알고도 황당하게 프레임에 갇힌 쪽은 당황스럽다. 서울시의 24일 발표로 존폐 위기에 있던 서울시내 경전철 계획은 기사회생 했다. 거의 2~3개 노선만 살아남아도 다행이라는 세간의 기대와 우려를 간단히 무시했다. 이로서 2008년에 8개 노선으로 반영된 ‘서울특별시 도시철도 기본계획’은 10개 노선으로 확대된 ‘서울특별시 도시철도 기본계획’으로 확대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굳이 9개 노선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서울시 보도자료에서도 10개 노선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지하철9호선 연장은 경전철로 치지 않은 탓이다. 이래 저래 세심함이 돋보인다.

그리고 25일에는 경전철을 둘러싼 논란을 우려했는지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이 최소운영수입보장은 없다며 ‘오히려 승객이 많으면 서울시가 손해인 구조'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를 보도한 <한겨레> 기사에는 최소운영수입보장이 사라진 것이 2006년 법률 개정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 경전철 ‘사업자에 최소수입 보장'없다’는 제목을 달았다. 거기에 사업자와 협상을 통해서 설정된 기본요금과 타 교통수단과 혼용되는 통합요금의 차액을 사업자에게 지원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승객수요를 중심으로 산정했던 지하철 9호선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전하고 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것이 정말 절약이 맞는지는 의문이다.

이를테면 박근혜 정부가 지난 7월 5일 지방공약가계부를 발표하면서 같이 내놓은 ‘민간투자사업 활성화 대책'을 보자. 여기서는 기존 수입보장방식을 비용보전방식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예시에 따르면, 최소보장률을 69.4%로 해서 추산된 최소운영수입보장액이 1,454억일 때 비용보전방식으로 전환하면 465억원밖에 들지 않는 것으로 추산했다. 68%가 절약이 되는 수준으로, 서울시에서 밝힌 요금차액 지원이 3~40%의 감소를 추정하는 것과 비교하면 2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지하철9호선과 경전철은 쌍생아

서울시가 2001년 8월 철도청의 광역철도망 계획에 맞춰 잠정수립한 「도시철도 중.장기 기본계획안」에는 여의도∼노량진∼서울대간 신림.난곡선 15㎞와 상계∼우이동∼신설동간 미아.삼양선 13㎞, 신월∼목동중심지∼당산간 목동선 8㎞, 상계동∼월계동∼청량리간 월계청량선 14㎞, 은평∼신촌∼여의도간 은평선 6㎞, 청량리∼면목동간 면목선 5㎞ 등 모두 61㎞ 구간 등 6개 노선의 경전철망이 검토되었다. 말 그대로 중장기 계획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본격으로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2002년 이명박 시장이 취임하면서다. 현재 가장 빨리 진행되고 있는 노선인 우이~신설 경전철만 하더라도 포스코건설이 주축이 된 우이트랜스가 2003년 6월 30일 사업제안서를 제출하면서 가시화된다. 그 밖의 경전철도 대부분 이명박 시장의 재임기에 본격화된다. 당초 중장기로 잡아 놓았던 계획이 단기 추진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사업이 바로 지하철 9호선이다. 2002년 울트라건설이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 2003년 현대로템컨소시엄으로 변경되면서 본격화 되었다. 경전철이 지하철9호선과 함께 착공이 되지 못한 것은 노선 변경에 대한 지역민원이 지속적으로 있었고 이에 따라 민간사업자와의 협상이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지역 내 철도교통시설에 대해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한다'고 시의회에서 공언했던 이명박 시장의 말에 비춰보면 지하철 9호선이든 경전철이든 교통시설의 확충이라는 교통정책보다는 ‘민간투자사업'이라는 사업유형에 방점이 찍혀 추진되었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사업유형을 특정해서 추진하는 방식은 박원순 시장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알다시피 지하철9호선 1단계 구간은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했으면서도 2단계 사업과 3단계 사업은 순수 재정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럴 경우 민간운영사인 (주)지하철9호선운영이 재정투자사업인 2단계노선과 3단계노선을 운행함으로서 수익을 가져갈 수도 있다는 문제점 외에, 왜 당초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했던 1단계와 달리 2단계, 3단계는 재정사업으로 추진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것은 1단계와 달리 2단계, 3단계를 민간투자사업으로 할 경우 민간제안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웃기지 않은가? 사업성이 있는 구간은 재정사업이 아니라 민간투자사업으로 하고 사업성이 없는 구간은 민간투자사업이 아니라 재정사업으로 하니 말이다.

결국 민간투자사업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민간사업자에게 수익성이 보장되는 사업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문제는 수익보장의 규모가 아니라 재정투자라면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수익보장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다리 전체가 똥통에 빠지나 발가락만 똥통에 빠지나 냄새가 나긴 마찬가지다. 바로 민간투자사업이라는 사업유형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그런 점에서 지하철 9호선과 경전철은 태생부터, 지금의 추진되는 방식까지 사실상 닮은 꼴일 수 밖에 없다.

박원순은 다르다는 언론들, 제발 기본이라도 지켜달라

흥미로운 것은 이런 서울시의 경전철 발표에 대한 언론들의 시각이다. 이른바 진보언론이라고 칭해지는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보도태도는 놀라울 정도다. 최초 송고기사에서 수정될수록 논조가 바뀐 <한겨레>의 기사는 애교다. 그저 비판적인 멘트의 인용을 쳐냈을 뿐이고 결과적으로 용인이나 김해 사례를 들면서 위험을 경고하는 것 같지만, 서울은 다르다는 해명을 반영함으로서 오히려 서울시를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예 서울시의 보도자료를 요약정리한 <경향신문>의 기사다.

▲ 25일자 경향신문은 서울시의 보도자료를 요약정리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긴 기사에 그저 양념으로라도 넣을 법한 우려나 걱정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이 20쪽의 보도자료를 성실히 요약했다. 소위 진보언론사에서 서울시 출입만 수 년째 한 기자가 이 정도이니, 아예 일반 언론들은 말할 계제도 없다.

이런 언론의 태도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민간투자사업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첫번째다. 지하철9호선에 비해 낫다는 말이면 ‘역시 박원순이야'라고 할 법하다. 아니면 ‘얼마나 하기 싫은 사업인데 어쩔 수 없이 하겠나'라는 태도가 두번째다. 이 경우엔 화살이 박원순 시장으로 하여금 발표를 하도록 만든 보이지 않는 세력을 상상케한다. 이 두가지 태도 중에서 더욱 문제인 것은 당연히 후자다. 서울시장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이를 희생자 프레임으로 가두는 것만큼 우스운 것도 없고 그 당사자에게 독이 되는 것도 없다. 외려 참여정부 때 소위 진보 언론들이 보여주었던 태도가 떠올라 섬뜩할 뿐이다. 정녕 그런 태도가 도움이 되었던가.

만약 똑같은 계획을 오세훈 시장이 발표했다면 어땠을까. 부분적으로 개선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막대한 토건사업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20조가 넘는 서울시의 재정부채 규모를 가져다 우려의 목소리에 힘을 싣지 않았을까.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자신 있게 ‘아니다. 오세훈 시장이 발표를 했더라도 이 정도 수준이면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라고 말할 자신이 있나.

왜, 무엇을, 어떻게를 따져보면 대안은 있다

교통이 열악한 지역, 특히 만성적인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난곡지역이나 교통접근성이 떨어지는 강북지역에 대중교통체계를 확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당연히 서울시로서는 해당 지역의 주민 편의성을 위해서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그 수단으로서 ‘경전철'이 맞냐고 따져보는 것이 순서다. 100번, 200번, 203번 등 도봉산이나 중랑을 기점으로 하는 버스노선이나, 1153번, 1215번 등 하계동과 월계동을 기점으로 하는 노선, 2217번, 2225번 등 중랑을 기점으로 하는 버스노선, 5412번, 5520번 등 신림동을 기점으로 하는 버스노선들이 폐선되었다.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였는데, 현재 경전철 노선들은 폐선된 버스노선과 유사하다. 버스준공영제에 따라서 적자노선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기 위해서 폐선을 유도했던 것이 서울시 버스정책의 방향이었다. 당연히 교통조건이 열악한 지역의 버스노선이 폐선되었다.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이 교통취약지역이라면 왜 교통취약지역이 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 역시도 백번 양보해서 ‘경전철'이 가장 우월한 대안이라고 하자.

다음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경전철을 건설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된다. 재정투자사업으로 하는 것이 타당한지, 민간투자사업으로 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물어야 한다. 정말 9개 경전철에 9개 민간운영사를 난립하는 것이 타당한 방법인지 아니면 도시철도나 서울메트로와 같이 기존에 지하철을 운영하는 공사를 활용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이미 서울메트로는 김해 경전철의 운영사다). 서울시는 경전철 건설에 따라 매년 50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정도의 재원이면 9개 노선을 동시에 착옹하여 추진하는 것은 무리여도, 순차적으로 한다면 재정투자를 통해 건설할 수 있다. 어짜피 공사비 외에 보상비는 재정으로 소요된다. 아무리 민간투자사업이라고 하더라도 민간의 투자비율은 공사비와 보상비, 민원비용 등을 따졌을 때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4개 노선 한꺼번에 진행할 것, 2개 노선 먼저 진행하면 재정투자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서울시의 경전철 발표에는 이런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여타 대중교통수단에 대한 평가도 보이지 않고, 사업방식에 대한 고민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명박 시장이 내놓은 경전철 계획을 다소 수정해서 내놓은 정도에 불과하다. 즉 ‘민간투자사업'이라는 사업유형에 중요한 교통정책을 맞춰버린 것이다.

2011년에 당시까지 제안된 11개 노선의 경전철 건설에 따른 총사업비는 5조8,746억원이었다. 그런데 지난 24일 발표한 10개 노선의 총 사업비는 8조5,533억원이 되었다. 3조원 가량이 증액된 셈이다. 민간투자사업을 운영비 보조에만 맞추면, 지하철9호선 1단계 공사에서 건설사간의 답함이 기승을 부렸다는 사실을 잊기 싶다. 그런데 이 차이에 대한 해명도, 질문도 없다.

대중교통수송분담률을 현행 67%에서 75%로 늘리기 위해서는 승용차의 분담률을 낮춰야 한다. 그런데 현재 승용차 분담률이 높은 이유는 서울시 내부의 운행자 때문이 아니라 시경계를 넘어서는 승용차 이용자들, 그러니까 경기도에서 인천에서 서울을 왔다가는 수요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서울시가 승용차 분담률을 줄이고자 한다면 광역교통망에 더욱 투자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경전철을 지으면 대중교통수송분담률이 75%가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에 대해 질문이 제기되지 않는다.

서두에 언급한 정부의 민간투자사업 활성화 대책에는 기존에 총액과 사업대상에 있어 제약이 있었던 BTL 방식에도 민간제안사업이 가능하도록 풀어둔 것은 물론이고, BTO사업과 BTL사업을 결합한 형태도 도입한다고 밝혔다. 무슨 이야기냐면, 철도사업을 사례로 수익성이 있는 역사 등 상부시설은 BTO 방식으로 궤도, 노반 등 하부시설은 BTL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사업자가 운영수익을 가져가는 동시에 무상양도한 시설물에 대한 사용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명박 시장에게서 시작한 경전철 사업이 박원순 시장의 경전철 사업으로 이어져서, 박근혜 정부의 민간투자사업 활성화 방안과 호응한다. 바로 이런 점들이 박원순 시장의 경전철 계획 발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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