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광기의 시대'. MB정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4대강 사업이 한국사회에 남긴 상흔은 뚜렷하다. '한국형 뉴딜사업'으로 일컬어졌던 4대강 사업이 불과 몇년만에 '위장 대운하 사업'이었으며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게 드러났으나 적극적인 왜곡 혹은 자발적인 침묵으로 4대강 사업을 도왔던 언론들은 아무런 자성도 하지 않는다.

4대강 사업의 진실이 감사원 감사결과로 드러난 지금, 미디어스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언론이 보였던 행태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언론이 부재했던 암흑의 시기"를 기억하고자 한다. 기획은 교수/활동가/종교인이 '기자 역할'을 대신했던 시대에 대한 조명, 방송사 불방일지 정리, 언론계 안팎 인사 인터뷰, 현직 언론인 기고를 거쳐 우리에게 4대강 사업이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대담으로 마무리된다.

사익을 위해 진실을 외면했던 행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언론인들의 자성은 이 기획을 읽는 언론인 당신 스스로의 몫이다.

"우리나라 강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짧게는 6천년, 길게는 1만년 전의 일이다. 4대강 사업이라고 하기도 힘든 '낙동강 공사'는 1만년 만에 우리나라 강에 가장 큰 지형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기사를 안쓸 수가 있나?"(남준기 내일신문 환경전문 기자)

"사실, 현장 활동을 하면서 번번히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녹조현상이 그렇게 극심해도, 국제적 명성의 전문가들이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내도 대다수 언론은 기사 한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진실을 외면한 채 사익을 추구한 보수신문, 경제지, 방송사에 대해 화도 나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하다. 과연 '언론'이라고 할 수 있나?"(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18년 가까이 환경전문기자로 활동해온 남준기 내일신문 기자, 4대강 찬동인사 명단발표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은 위와 같이 말했다.

오랜기간의 현장탐사를 통해 강 전문가가 된 환경전문기자, 온몸을 걸어 4대강 저지를 위해 힘써온 현장활동가의 인식은 공통된 것이었다. 적극적으로 왜곡보도를 내보낸 신문, 자발적 침묵을 선택한 방송 둘다 MB정부, 부역정치인과 마찬가지로 '공범'이라는 것.

▲ 남준기 내일신문 환경전문기자(왼쪽, 출처: 본인 제공)와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오른쪽, 출처: 오마이뉴스)

<미디어스>는 19일, 22일에 걸쳐 이철재 위원과 남준기 기자를 각각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현장'에 천착해온 만큼 4대강 사업에 대한 문제의식은 누구보다 날카로웠다. 책상머리가 아닌 '현장'을 몸소 겪은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본질에 대한 통찰'이라 표현할 만했다.

이들에 따르면, 4대강 사업은 "민주주의 자체를 왜곡"(이철재 위원)했으며 "우리나라 환경행정을 30년 후퇴"(남준기)시킨 죄과가 있다. 쉽게 복구하기 힘든 자연파괴, 혈세낭비 외에 한국사회에 끼친 폐해가 어마어마하다.

청와대가 감사원 발표에 "국민을 속인 것이고 국가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큰 일"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섰으나, 여전히 현장상황은 달라진 게 없어 강을 지켜보는 이들은 애가 탄다. 시급히 보의 수문을 열어 강물의 흐름부터 회복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부처는 총리실 검증을 지켜본 이후에 결정하겠다며 수세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남준기 기자는 "당장 올해에도 녹조가 생길 판에 아직도 수문을 안열겠다니, 천불이 난다. (좀 더 명확하게 입장을 세우지 않은) 박근혜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며 "환경부는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사안을 봐야 하는데, 간부급들만 봐도 거의 정치인이나 마찬가지"라고 씁쓸해 했다.

이철재 위원은 "지금은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의) 문제를 말하지만, (정권의 입장변화에 따라) 앞으로 또 (감사 결과가) 바뀔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언론 역시 무엇이 실체적 진실이고,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지와 상관없이 또 (논조를) 바꿀 것 아닌가. 매우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언론의 직무유기, 정권-자본 때문만은 아니다

4대강 사업은 언론이 제 역할을 못했을 때 어떤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정권과 자본에 대한 굴복'에서만 찾는 것도 단순한 시각이다. 오랫동안 환경부를 출입한 남준기 기자는 '출입기자실'이라고 하는, '가두리 양식장'에 갇힌 기자 제도의 문제도 한몫 단단히 했다고 분석했다.

"한창 '낙동강 공사' 중일때는 거의 매주 주말마다 공사현장에 내려갔었어요. 금요일 저녁에 출발했는데, 다 보고 올라오면 일요일 밤이었죠. 매주 주말마다 내려가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지리도 모르는 사람이 내려가면 일주일 내내 다녀도 봐야 할 것을 다 보지 못해요. 기자들이 그렇게 취재하려면 사진기자도 합류해야 하고 여러 가지가 필요한데 누가 그걸 할 수 있겠어요? MB정권 초반에 모 방송사 팀에서는 4대강 취재가려고 해도 회사에서 카메라를 안내줬다고 하는데.

또, 기자들은 기자실에 있다보면 매일 내려오는 기사를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렇게 현장에 내려가 있다가 환경부 관련 기사 낙종하면 욕먹을 거고. 기자는 현장을 봐야 하는데 더 못보는 구조, 이게 바로 기자실 제도의 딜레마입니다."

4대강 사업을 깊이있게 다룰 수 있는 환경전문기자들이 일선 취재현장에서 멀어지게 된 것 역시 영향을 미쳤다. 공교롭게도, 2010년 4대강 비판 기사를 써왔던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가 갑자기 논설위원실로 발령나던 시기에 남준기 기자 역시 내근직으로 바뀌어 데스크 업무를 보게 됐다.

"환경기자클럽이나 환경부 출입기자들이 모여서 현장에도 같이 가보고,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이런 게 전혀 없었던 것도 문제였죠.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부족해졌거든요. 고참 기자들이 뭐라도 해야 했는데, 아예 모이질 못했으니…."(남준기 기자)

침묵하는 언론이 답답했던 기자, 직접 '기록'에 나선 활동가

변화는 반성에서 출발하고, 기억은 기록에서 비롯된다. '4대강 찬동인사 명단'에 이어 현재 '4대강 전도사 열전'을 기록중인 이철재 위원은 "4대강 사업을 위해 얼토당토 않게 영혼을 팔아버린 이들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만간 4대강 찬동언론에 대해서도 따로 분석할 계획이다.

4대강 사업으로 '훈장'을 받은 이들의 실명까지 포함한 4대강 찬동인사 최종인명록도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피말리는 작업이지만, 이 모든 게 다시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절실함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이철재 위원은 불방, 전문기자 배제 등을 통해 자발적 침묵에 나섰던 방송사들을 향해 비슷한 주문을 내놓았다. 뒤늦게나마 어두운 역사를 들춘 탐사다큐멘터리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처럼 '4대강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같은 방송프로그램이 나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기계적 중립도 문제지만, 그 조차 지키지 않았던 신문들. 그리고 스스로 침묵했던 방송들. 어떻게 이제와서 아무런 반성도 없이 (감사원 감사 발표를 전하면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정말 뻔뻔한 거 아닌가요? 언론은 반드시, 그 엄혹했던 시기에 대해 과오를 반성해야 합니다."

남준기 기자의 요구는 보다 소박(?)했다. "기자들은 어떻게 하면 강이 회복될 수 있을지 제대로 좀 알아야 하는데, 가장 시급한 것은 일단 보 수문을 여는 것"이라며 "보 수문 개방을 위한 기사를 통해 강이 다시 흐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수문 설계를 강바닥과 같은 높이로 했기 때문에 수문만 열면 저절로 물이 흐를 수 있다"는 것. 누구보다 4대강을 잘 아는 기자-활동가의 절실한 호소, 귀담아 들을 가치는 충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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