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들은 망중립성 관련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바다 건너의 사례들을 근거로 반대하며 “망중립성 이용자포럼은 시민단체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왜곡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검증이 쉽지 않은 해외의 사례를 근거로 국내의 상황을 방어하고, 망중립성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은 ‘편향성’으로 공격하는 논리다.

정부 역시 망중립성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이통사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과 KT가 34, 44요금제에서 보이스톡·마이피플 등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를 차단한 것이 부당하다”는 제소에 대해 이동통신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진지한 논의보다는 이동통신사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망중립성 원칙이 흔들려왔다.

이에 망중립성 이용자포럼은 25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망 중립성 보호를 위한 법과 정책 관련 유럽위원회(a Council of Europe) 보고서’를 작업한 네덜란드 시민단체 ‘Bits of Freedom’의 매트스 반 베르겐((Matthijs van Bergen)씨를 초청해 강연을 열었다. 네덜란드는 거대 통신업체인 KPN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무료 메시지 서비스를 많이 이용해 수익이 줄었다면서 ‘스카이프(skype)’와 ‘왓츠앱(WhatsApp)’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별도의 요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던 사건이 발단이 돼 사회적 논란 끝에 지난 2011년 6월 유럽 최초로 망중립성 법안을 통과시킨 나라이다.

▲ 망중립성 이용자포럼과 국가인권위원회는 25일 공동으로 매트스 반 베르겐 씨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미디어스

“KPN, ‘왓츠앱’ 등 별도 요금 부과 발표 후 국민적 규탄”

매트스 반 베르겐 씨는 “KPN의 악덕한 계획은 앱을 통해 수익을 내고자 했다는 것”이라며 “사용자들에게 차단하지 않음으로써 돈을 받아내겠다는 개념으로 ‘내가 당신의 뺨을 때리지 않을 테니 나에게 돈을 달라’는 마피아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KPN은 그 같은 계획을 자랑스럽게 발표했고 전 국민적 규탄이 이뤄지면서 의회에서 망중립성 법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매트스 반 베르겐 씨는 “인터넷 업체들이 어떤 서비스를 차단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용자들에게 돈을 청구한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물은 뒤, “이것은 선택권을 주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인터넷을 향유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트스 반 베르겐 씨는 “이는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인터넷의 민주적 설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일 뿐 아니라, 전송와 콘텐츠 층이 분리돼 있는 인터넷 기본 원칙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매트스 반 베르겐 씨는 망중립성과 관련해 “인권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의 망중립성 법안에서도 ‘인권’ 측면을 반영했다는 주장이다.

매트스 반 베르겐 씨는 “네덜란드 망중립성 관련법에는 이동통신사들이 서비스를 제공할 때 느리게 하거나 저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외조항에는 ‘혼잡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때에도 통신사들은 트래픽에 대해 동등한 서비스에 대해서는 동등하게 처리해야하며, 서비스 망 장비 보완을 위한 이유와 스팸방지 등 사용자의 동의가 있을 때로 제한되고 있다.

매트스 반 베르겐 씨는 “이 같은 망중립성 관련법은 유럽인권협약 제10조 ‘표현의 자유’가 동일하게 적용돼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네덜란드 망중립성 관련 법의 경우 이통사들의 특정 서비스에 대한 속도를 제어하거나 차단하게 될 때 트래픽 과다에 따른 것인지 우선적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트래픽 과다라는 것으로 판명이 되면 서비스의 계약조건을 따진다. 이 과정에서 그런 조치가 명시돼 있지 않았다면 이통사들이 서비스의 속도를 제어하거나 차단하는 행위는 불법이 된다. 속도를 제어하거나 차단하는 행위가 합리적 목적에 의한 것이었는지(혹은 사익을 위한 것이었는지), 꼭 그 같은 조치가 필요했는지도 판단 조건에 포함된다.

네덜란드, 망중립성 법 통과 후 통신요금 올라…“다시 내려가”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통사들이 트래픽을 관리하는 방안으로 패킷감청기술 DPI(Deep Packet Inspection)을 활용해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매트스 반 베르겐 씨는 “DPI로만 트래픽을 관리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네덜란드는 이동통신사들로 하여금 이용자들의 인권 침해 정도를 적게하는 트래픽 관리 방안을 채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며 “만일 새로운 솔루션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채택하지 않는다면 비례성 원칙에 따라 위법으로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네덜란드 이통사들은 이미 2009년 DPI 트래픽 관리 방법 등을 공개한 바 있기도 하다.

‘통신사 측에서 망중립성과 관련해 반박하면서 네덜란드의 경우 법 통과 이후 통신요금이 올랐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매트스 반 베르겐 씨는 “통신사들이 집단적으로 요금 인상을 단행했던 것을 사실”이라며 “하지만 다시 내려갔다”고 밝혔다.

매트스 반 베르겐 씨는 “그 계기로 네덜란드의 이통업자들이 카르텔, 과점적 성격이 있다는 걸 봤다”며 “그래서 과징금도 부과되기도 했다. 이통사들이 과점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망중립성 개념에 반해)콘텐츠를 선별적으로 하게 된다면, 경쟁 요인이 더 없어지기 때문에 통신요금은 더 올라가고 그로 인해 사용자 후생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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