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가 벌써 18회가 끝났다. 되돌아보면, 김준이 나타난 이후 두 사람이나 죽었고, 한 사람이 크게 다쳤으며, 해우의 아버지와 해우가 할아버지의 실체를 아는 등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18회라는 자막을 본 순간, 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분위기만 잡다가 끝나는 것 같은 느낌일까?

17,8회의 대부분은 복수의 주체 김준, 즉 한이수의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한이수와 조해우 등 관련된 사람들이 알아가는 것으로 메워졌다.

한이수의 아버지가 책방 주인과 함께 광주진압군이었으며, 그 이후 고문 기술자인 그림자로 암약했었다는 캐릭터 설정은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과거를 덮어두라는 조상국 회장(이정길 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복수에 한 발 한 발 다가서던 김준, 즉 한이수는 결국 아버지의 과거와 조우하게 되고, 강이수의 살인범이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르며 절규한다. 그토록 집요하게 추구했던 복수의 의미가 퇴색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문제는, 시청자들은 이 사실을 이미 첫 회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안 사실을 말로만 잔뜩 위협하다, 17,8 회에 가서야 주인공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사안으로 써버리니 보는 사람들 심정은 어떨까? 서, 설마 저 이야기만 하고 말지는 않겠지 했으나, 언제나 그렇듯 상어는 1회 1떡밥의 대명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담백하게 한이수 아버지 과거를 가지고 마지막 회 전주차를 보냈다.

심지어, 그간 시청자들이 궁금해 마지않던 김준의 친구, 수현(이수혁 분)이 강이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뜬금없이 툭 튀어 나왔다. 그간 전혀 어떤 조짐도 복선도 없다가. 그리고 한이수 아버지의 과거로 인해, 강이수의 아들은 김준과 소주 한 잔을 나눠 마시더니, 대뜸 복수의 노선을 바꾸는 듯하다. 이미 시청자들은 알고 있는 전후좌우 사정을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만 모른 채, 단세포 동물처럼 ‘이번에는 니가 원수야? 내 칼을 받아라’하는 식이다. 이건 개그콘서트 용 개그감 아닐까.

그 과정에서 한이수의 복수는 지지부진하다. <상어>가 답답한 가장 큰 이유는,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던진 이른바 떡밥, 즉 드라마를 이끌어가기 위해 던진 질문의 답이 너무나 느리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앞서의 경우처럼, 시청자들은 이미 드라마가 시작될 때 안 한이수 아버지의 과거사를 드라마가 다 끝나가는 이제서야 터트린다던가, 조상국 회장의 생모가 거창에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안 건 지난주였는데 이번 주에야 겨우 찾아가고, 그리고 그 생모가 가진 짐은 다음 주나 되어야 해우의 손에 들어올 듯하다. 자이언트 호텔 사장으로 김준이 나타나 그럴싸하게 자이언트 호텔이 합병하려던 호텔을 먹어치우는가 싶더니, 정작 가야 호텔은 아직도 조의선 사장을 붙들고 물밑 작업 중이다. 그 역시 마지막 회나 가서야 윤곽이 드러날 듯하다.

조해우가 알고 조의선 사장이 알게 되지 않았냐고, 18회 쯤 되다보니 억하심정으로 '그래서 뭐?'란 반문이 올라온다. 심지어 조상국 회장의 과거가 '그래서 뭐?'라고까지.

드라마에서 그려낸 조상국 회장의 과거사가 역대 모 대통령과 비슷하다 하여 조상국이 누군가를 상징적으로 그려낸 캐릭터라는 풍문이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 등의 활동을 통해 이미 우리 사회에서 누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업적이 미화되고 박물관이 세워진다 하는 상황에서, <상어>가 조상국 회장의 과거 자체만을 가지고 전전긍긍 너무 많은 시간을 끌어온 것은 과유불급이다 싶기도 하다. 범죄를 저질러도 우리 집만 부자로 만들어준다면 그 사람을 뽑아주는 그런 사회에서 과거행적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18회라는 긴 시간을 드라마 <상어>는 무엇을 했을까? '딴딴딴딴~'하는 전주에 맞춰 흘러나오는 보아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덧입혀진 OST에 맞춰 조해우와 김준이 사랑을 했다.

이전에 복수가 달콤한 이유는 그것을 상상하는 순간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먹을 때 느끼는 것 이상으로 뇌세포를 자극하기 때문에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수에 달려들게 된다는 진화론적 연구를 소개했었다. 그런데 자신을 파괴할지도 모를 이성적 판단조차 마비시키는 복수의 쾌감을 앞지르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복수 위에 사랑. 그래서 늘 영화에서도 드라마 속에서도 복수의 화신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상어>의 김준과 조해우 역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만나자마자 다시 치명적으로 사랑을 한다. 대학 때 만난 첫사랑도 다시 만나면 생뚱한 이 시절에 무려 청소년기 풋사랑 때문에, 김준은 자신의 목숨을 건 복수를 무너뜨리고 해우는 남편을 배신한다.

하지만 어설프게 쌓여진 축대 위의 집이 장마에 견디지 못하듯이, 안타깝게도 <상어> 초반부 이수와 해우의 사랑은 지금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랑을 설득해낼 만큼 치명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제 아무리 오랜 정으로 한 결혼이라고 해도 이제 막 결혼한 신혼의 신부인데. 접어주고 보려고 해도, 김준과 조해우의 사랑은 무식하게 맹목적이다. 오히려, 동생 이현과의 짧은 조우, 이현의 납치로 인해 고통 받는 이수의 감정이 짧은 에피소드였지만 훨씬 더 공감이 갈 정도다.

<상어>란 드라마가 가진 플롯의 단순함, 그리고 전개의 빈 공간을 메워줄 것이 바로 두 사람의 사랑이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사랑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 딜레마도 이런 딜레마가 없다.

게다가 <상어>는 두 남녀의 사랑을 복수와 함께 쌍두마차로 끌어가면서, 복수극의 역할조차도 나누어 맡게 된다. 여주인공이 검사가 되고, 남주인공은 사건의 열쇠를 던져주고, 정의의 여검사, 그리고 남주인공에게 부채감을 가진 여검사는 그걸 밝힌다는 설정. 그런데 그러다 보니, 정작 복수의 주체인 김준, 즉 한이수는 조상국 회장의 과거를 폭로하고 싶어도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 객실에서 고독한 분위기를 잡고 있고, 조해우 검사가 현장을 뛰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극의 흐름이 자꾸 갈라진다.

사실은 한 사람이 찾아 나서야 할 일을 또 다른 누군가가 함께하다 보니 몰입을 방해할 뿐더러, 해우는 알아도 김준은 모르는, 혹은 김준은 아는데 조해우는 모르는 사안들로 인해 극의 흐름은 또 한번 에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만이 아니다. 두 사람의 주변 사람들도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사실에 접근해 들어가면서 그 사실을 아는 시점으로 인해 극은 꼬이게 되고 답답해진다.

18회 조해우는 김준의 아버지 그림자가 고문을 할 때 그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걸 모르는 김준. 그리고 강이수의 아들 수현은 그로 인해 다시 한번 혼란에 빠져들 게 될 것이라던가, 조해우는 알고 있는 지검장 살해 음모의 배후를 해우의 남편 준영이 뒤늦게 아버지와의 필담을 통해 알게 된다던가 하는 식이다. 과연 지금 해우가 남편에게 만나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김준과의 관계였을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시아버지였을까? 인지상정에서 시청자는 갑갑해지는 것이다.

<상어>는 '사실'이 중요한 드라마이다. 누군가, 그 중에서도 앞서 간 사람들의 과거를 안다는 것이 중요한 드라마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13년의 대한민국은 그것만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해타산적인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혹자는 5년 전에 기획된 <상어>의 그 너무도 달라져버린 5년이 안타깝다고도 한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이 안타깝다고 덕담을 해주기엔 18회까지 흘러온 <상어>가 너무 분위기만 잡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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