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성진그룹의 유상증자 계획에 반기를 든 장남 최원재(엄효섭)와 장녀(신동미) 등을 향한 이요원의 침몰계획은 의외로 싱거웠다. 유상증자를 통해 그룹 지주회사로 만들려던 성진건설을 껍데기 회사로 만들고 대신 최동성 회장(박근형)이 처음 시작했던 성진 시멘트로 계열사 보유 주식을 대거 이동하는 계획이었다.

그 결과 성진건설을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인데 경제를 잘 모르는 일반시청자에게는 이것이 과연 최민재-최원재 연합을 단숨에 무너뜨릴 결정타인지 실감 나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지주회사 철회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는 내용을 나중에 손현주와 고수의 대화를 통해 알 수는 있었지만, 이요원이 결연한 태도로 박근형에게 “침몰시키세요”할 때에는 뭔가 싶은 생각이 앞설 수밖에는 없었다. 또한 침몰시키라는 대사도 그 긴박한 상황을 상징하기에는 다소 약하고 어색했다.

아니 애초에 최민재-최원재 연합의 대비가 너무 허술했다고 할 수 있다. 누구라도 이요원 입장이 된다면 지주회사 철회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최우선의 방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그룹을 집어삼키는 거사를 벌이는 사람들로 보이기는 힘들었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왠지 이요원을 응원케 하는 상황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청자가 안도를 했을 것이다. 또한 뭔가 찜찜하고 루즈해지는 분위기를 다잡아준 박근형의 명연기로 그 순간을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상황은 뭐가 뭔지 모르게 흘러갔지만 그래도 그룹 사장단 회의를 통해서 손현주를 압도하고 사장단을 장악하는 박근형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압권이었다. 그 장면이 아니었다면 형제의 난을 진압하는 이요원의 모습마저 코미디처럼 우스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성진그룹이 아니라 이요원 아니 황금의 제국이 침몰할 뻔 했다. 박근형의 명연기가 아니었다면 그 중요한 장면에서 채널이 수도 없이 돌아갔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박근형의 연기는 대사도 그렇지만 그 전후의 동작들도 존경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손현주가 박근형의 병과 주식보유양을 근거로 사장단을 휘두르고 있을 때 회의실로 들어오는 박근형의 모습은 우리가 쉬이 잊지 못하는 많은 영화 속의 명장면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추적자와는 또 다른 거목의 연기로 정말 강인한 인상을 남기고 자리를 이요원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박근형은 거실에 있던 이요원의 손을 잡고 직접 서재로 갔다. 상황이 다급해진 엄효섭, 신동미 등이 쫓아왔으나 거기서 박근형은 그들에게 아래로 내려가 있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이요원을 자기 자리에 앉히며 더 분명한 후계의 세레모니를 진행했다. 그 태도에는 형제들의 처분마저 이요원에게 맡기는 암시가 담겼다. 그렇게 박근형이 서재를 나간 후, 이요원은 언니와 오빠를 차례로 불러 그나마 용서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당사자로서는 굴욕적인 조건을 잊지 않았다.

그 상징적인 모습으로 돌아서는 그들을 다시 불렀고 무언의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오빠, 언니는 모두 힘겹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것은 즉 패배의 시인이었고, 복종의 표시였다. 그것은 마치 대부에서 마이클(알 파치노)에게 ‘돈 콜리오네’하면서 충성 서약을 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황금의 제국은 여러 곳에서 대부의 오마주를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요원의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유상증자에 사용된 고수의 횡령을 이용해 손현주를 교도소로 보내려고 했지만 의외의 반발에 가로막혔다. 고수는 이요원의 상냥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손현주를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요원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런 고수의 대사에 불량 시멘트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그 유명한 삼분파동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당신 아버지 최동성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된다는 거냐는 질문을 던진다.

사실 그 질문은 이요원이 아니라 시청자에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고수를 악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선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시선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고수가 삼분파동을 떠오르게 하는 대사를 한 것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비록 응원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고수가 진정 악한 것일까? 황금의 제국의 주제는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고수의 동기에서 욕망이란 단어는 보류해둬야 할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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