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엔 영화 내용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도 참 긴 이 영화, 요즘 영화들은 한 가지 혹은 길어봐야 두 가지 정도로 분석이 가능한 단세포적 영화들이 가득하지만, 이 영화는 다양한 각도로 조망이 가능하면서도 작품성이 탁월한 수작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한 사람은 범죄자 주인공인 루크(라이언 고슬링 분)이고 다른 한 사람은 경찰 주인공인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 분)이다. 이 두 주인공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는 ‘아버지’와 ‘아들’이다.
루크는 아버지가 없이 자란 떠돌이 오토바이 스턴트맨이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좀 더 안정된 가정과 직장을 가졌으리라고 믿는 루크는 자신이 아버지가 되면 자신이 받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을 자식에게 물려주리라 다짐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이런 루크가 덜컥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가 되고 싶어서 아버지가 된 게 아니라 원나잇의 결과로 생긴 아이다.
하지만 루크는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키우기에는 역부족인 인생이다. 카센터 직원 생활로 안정된 가장의 노릇을 하기엔 수중의 돈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원나잇 상대의 여자와 자신의 아들은 다른 남자 손에서 양육되고 돌봄을 받는 처지다.
루크로 하여금 인생 역전을 꿈꾸도록 만드는 건 루크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루크의 바람이 도리어 아버지의 부재를 낳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마니, 아버지가 없는 루크 본인의 인생 유전을 본의 아니게 아들에게 물려주는 아버지가 되고 만다.
경찰관 주인공인 에이버리는 루크와 달리 법조계에 정통한 아버지가 있다. 에이버리는 야심은 가득하지만 그에 걸맞은 정치적인 수완은 떨어지는 햇병아리다. 경찰서 안의 비리를 경찰서장에게 제보하는 대가로 부서장 자리를 요구하만 경찰서장과의 협상은 실패로 돌아간다. 더군다나 에이버리는 사내 비리 제공자로 경찰서 안에서 소문이 파다하니 경찰로 밥을 먹다가는 동료에게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할 팔자다.
이런 에이버리에게 유일한 아군은 아버지다. 법조계에 몸담으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아들 에이버리에게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친절한 멘토로서의 아버지다. 아버지의 조언을 바탕으로 에이버리는 경찰서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다. 에이버리는 좋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반면에 좋은 아버지는 되지 못한다. 일 중독이다시피 할 정도로 일 중심으로 활동하다보니 에이버리의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질 못한다.
루크는 아버지의 부재로 말미암아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경제적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한다. 반면에 에이버리는 탁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좋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정작 에이버리 자신은 아버지를 닮은 좋은 아버지가 되지는 못한다. 유명무실한 아버지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정말로 유명무실해지는 아버지나, 좋은 아버지를 두었음에도 정작 자기 자신은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마는 두 남자 루크와 에이버리는 둘 다 실패한 아버지다.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초극해야 할 대상이지만 동시에 남자로서, 수컷으로서 모델이 되는 이 역시 아버지다. 루크와 에이버리의 두 아들은 닮고자 하는 아버지의 모델이 부재한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불쌍한 아들이다. 루크와 에이버리의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결핍을 겪으며 성장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루크와 에이버리 모두 실패한 아버지에 다름 아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혹은 좋은 아버지를 두었음에도 정작 아들에게는 좋은 아버지 상을 물려주지 못하는 아버지로 전락하기에 그렇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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