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로 타는 에스컬레이터. 지하철 뿐만 아니라 백화점 등 각종 공공장소의 에스컬레이터에선 왼쪽 줄을 비워두는 것이 사회적 약속이 돼 버렸다. 자료를 찾아보니 역사도 길다. 2002년 월드컵을 전후로 해서 한줄 서기 캠페인이 등장했으니 어림잡아 6~7년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우리나라는 각종 캠페인이 넘쳐났다.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일부 언론들이 손잡고 '월드컵 성공 개최를 위한 지하철 질서 캠페인' '기초질서를 지키자'는 구호 아래 화장실 한줄 서기, 좌측통행, 이동전화 사용 자제하기, 무거운 짐 들어주기 등 '계도' 활동을 벌였다.

공공 화장실에서 한 줄로 서는 것은 먼저 온 순서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반면 에스컬레이터 한줄로 타기는 그저 바쁜 사람들을 위해 한쪽을 비워주자는 배려 차원이다. 따져보면 에스컬레이터에서 뛰거나 걷지 맙시다!라는 안내 문구와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바쁜 사람은 계단을 이용하면 될 일인데 굳이 에스컬레이터까지 내어주는 양보를 종용당했다. 내가 좀 불편하다고 남에게 야박하게 굴면 그것은 미덕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한줄 타기가 문제란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이 지난 9월부터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한줄타기 이용문화 개선에 나섰다. 사고의 대부분이 한줄타기로 인해 발생한다는 논문과 통계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에스컬레이터의 구조 자체가 서 있는 보행자에 맞게 설계된 것이라 걷거나 뛰면 위험하고, 또 한줄타기로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만 쏠려 기계 고장과 수명 단축 등의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얼마나 될까. 일부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는 '한줄타기 위험'이라는 안내문이 설치돼 있지만 사람들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왼쪽은 비우고 오른쪽으로 서서 올라간다. 괜히 안내문만 믿고 두 줄로 섰다간 뒤에서 걸어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밀침을 당하고 싫은 소리나 듣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왜 이런 문제점을 살피지 못하고 캠페인부터 시작했냐고 누구에게 따져야 할까. 선진문화 정착, 공공질서 확립이라는 구호에 파묻혀 정작 시민들의 안전은 뒷전이 됐지만 기계의 고장과 인명 사고가 빈발하고 나서야 6년 넘게 정착된 문화와 습관을 바꾸라고 한다.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애꿎은 시민들만 똥개훈련을 받게 생겼다.

아직은 지하철 역마다 홍보도 부족하고 언론의 관심도 많지 않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수년간 지켜졌던 약속과 습관이 쉽게 변할리 없다. 하지만 시민들의 안전이 정말 위험하다면 서둘러 내용을 알리고 잘못된 문화를 바꾸자고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홍보를 하려거든 "시민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문부터 제발 대문짝만하게 싣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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