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일 '경제위기'를 언급하며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청와대까지 나서 지금의 경제 상황을 '3차 오일쇼크' '제2의 IMF' '국난적 상황'에 비유한다. 그리곤 "경제적 난국을 벗어나자"고 강조한다.

지난 2일 이명박 대통령은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현 상황이 3차 오일쇼크라 할 만한 위기상황"이라고 진단했고,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두고 "다함께 망하자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같은 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상황 악화 원인 중 하나로 '촛불집회'를 꼽기도 했다. 강 장관은 "최근 시위가 과격 폭력화하면서 외국 투자자와 관광객도 발길 돌리고 있다"면서 "일부에서는 국가신인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위기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방송사들의 평가는 어떨까.

KBS는 시민사회 단체의 입장을 전하며 '촛불집회'가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정부의 주장을 반박했고 MBC와 SBS는 클로징 멘트를 통해 경제 책임을 전가하며 경제 위기를 언급한 '의도'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 7월 3일 KBS <뉴스9>.
KBS "정부의 정책 실패가 경제 위기 자초해"

먼저 KBS는 3일 <뉴스9> '정책 실패도 원인'에서 "촛불집회가 아니라 정책 실패가 위기를 자초했다"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의 정부 경제 책임론을 언급하며 "촛불집회가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는 정부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KBS는 "경실련은 현재의 경제 위기는 무엇보다 악화되고 있는 대외 경제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꼬집었다"고 전했다. KBS는 이어 경실련 김성남 공동대표의 발언을 통해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세계 경제의 침체 등 대외적 환경 악화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 정책 실패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KBS는 "정부의 성장일변도 정책, 그리고 환율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 우리 경제를 악화시켰다"는 참여연대 논평을 언급하면서 "시민단체들은 이에 정부가 경제팀을 대폭 교체해서 정책 방향과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KBS가 시민단체의 주장을 통해 정부가 경제위기론의 원인을 '촛불집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했다면 MBC와 SBS는 클로징 멘트를 통해 경제위기론 전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정부 행보에 우려를 표했다.

▲ 7월 2일 SBS <8뉴스>에서 클로징 멘트를 하고 있는 신동욱, 김소원 앵커.
MBC SBS 클로징 멘트 통해 정부 위기감 비판

먼저 SBS는 지난 2일 클로징 멘트를 통해 "우리 경제가 어려운 건 틀림없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위기감을 조장하는 것 역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며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 있다고 해야 할텐데, 책임을 다른 쪽으로 전가하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우려했다.

MBC도 3일 클로징 멘트에서 "요즘 당정청의 고위급들이 경제의 어려움을 3차 오일쇼크 상황, 국난적 상황, 제2의 IMF라고 잇따라 밝혔다"며 "고위급이 직접 그것도 거듭해서 위기를 강조하는 건 정책의 기본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MBC는 "특히 경제위기에서는 지도급이 말을 아껴야 한다"면서 "혹시라도 정치적 의도 때문에 어려움을 강조하다가 정말로 경제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주장대로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3일 방송 3사의 메인뉴스가 다룬 경제 관련 리포트(△국제유가 143달러 돌파 △코스피 장중 한 때 1600선 붕괴△시중 금리 연중 최고 △건설업체 하루 한곳 꼴 부도)만 살펴보더라도 이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 7월 3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클로징 멘트를 하고 있는 신경민, 박혜진 앵커.
'경제 위기'에 대한 찬찬한 분석과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분석이 우선

하지만 정부 일각에서 어려운 경제 상황의 원인 중 하나로 '촛불집회'를 꼽은 것은 그간 조중동을 통해 숱하게 보았던 익숙한 '배후설'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당정청이 일제히 현 경제 상황을 '3차 오일쇼크' '제2의 IMF' '국난적 상황' 등의 거창한 용어에 비유해 위기를 운운하는 것 역시 이런 의혹을 부추긴다.

이런 점에서 MBC와 SBS가 클로징 멘트를 통해 정부의 '의도'만을 언급한 것에 그쳤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정부가 지나칠 정도로 나서서 경제 위기를 언급하며 "촛불을 끄고 경제를 살리는 횃불을 들자"는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소상히 분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가급등, 코스피 하락 등 현 경제 상황을 시시각각 보여주는 현안들을 빠르게 보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경제 위기'에 대한 찬찬한 원인 분석과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꼼꼼한 분석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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