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제헌절을 맞아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 1인시위, 촛불문화제 등이 봇물을 이뤘지만, 방송3사는 이를 외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청소년 시국회의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 동아일보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717 청소년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국정조사와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민중의 소리 양지웅 기자

전국 464개교 중고등학생 817명은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청소년 시국회의'라는 이름으로 17일 '배워온 것과 너무나도 다른 현실에 분노를 참을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의는 교과서 안에만 있는 것인가?"라며 △국정원과 경찰의 선거개입에 대해 철저하고 공정하게 조사하고 관련자들을 법에 따라 엄중처벌할 것 △남재준 국정원장을 해임하고 국정원을 확실히 개혁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것 △박근혜 대통령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직접 책임있는 의사를 표명할 것 △언론장악을 중단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같은 날 저녁 서울 종로 동아일보 앞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서울대 교수 128명 역시 시국선언문을 통해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과 관련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한 것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처음이다. 교수들은 "국정원의 불법적 대선개입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씻을 수 없는 과오이자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국정원은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남북정상회담 기록물을 공개하는 등 다른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며 "국회는 하루빨리 국정조사를 단행해 사태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7월 13일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 모습 ⓒ오마이뉴스 이희훈

보건의료단체연합에 소속된 의사와 약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 500명 이상도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 등 실질적인 민주주의 회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문제가 되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제멋대로 해석해 발표함으로써 개혁여론에 불타기 전략으로 맞섰다. 이는 발표 내용, 형식, 시기 등 모든 면에서 부적절한 국정개입"이라며 "우리는 사회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과 함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남지역 비정규직 노동자 1만여명도 17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 모여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짓뭉갠 중대 사태"라며 진상규명, 국정원 해체, 남재준 국정원장 파면 등을 요구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건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이 지난달 5일 시민사회단체들을 시작으로 한달 넘게 각계각층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 17일 SBS는 <8뉴스>에서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만을 단신처리했다.
이와 함께 국정원을 규탄하는 1인시위도 전국 각지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KBS와 MBC는 17일 저녁 메인뉴스에서 이를 일절 다루지 않았다. SBS만 <8뉴스>에서 단신으로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짧게 언급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이를 두고 트위터 등에서는 "KBS MBC SBS YTN 종사자들 너희들은 불법선거쿠데타의 공범들이다. 청소년들 보기 부끄럽지 않나?", "서울대 교수님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매일 촛불이 불타오르는데 언론은 침묵, 축소한다. 이게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인가?"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방송독립포럼 역시 16일 성명에서 "방송 3사는 물론 종편 채널들이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에 대한 대학교수, 대학생, 시민사회단체의 시국 선언이나 시위, 집회 등을 보도하지 않는 것은 5공화국 '보도지침 언론'을 연상케 한다"며 "시민사회가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로 규정해 척결의 대상으로 지목하기 전에 언론 본연의 제 기능을 즉각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찬 언론연대 기획국장은 "국정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바라는 여론이 시국선언, 집회 등 실천적인 움직임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방송이 이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언론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그동안 국정원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축소 은폐하려는 정치세력의 의도에 맞는 보도를 계속해 왔던 방송사들이 시민들의 목소리마저 보도하지 않는 것은 매우 의도적인 행위"라며 "언론이 여론의 전달자가 아닌 선수로 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들은 오히려 언론 때문에 국정원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언론의 책임을 묻고 있다"며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시민들이 MB의 언론장악을 규탄하면서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면, 이제는 공영방송들의 말도 안되는 행태에 항의하기 위해 시민들이 촛불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KBS 보도본부 국장, 부장단 일동은 KBS 뉴스에 대판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 3일 입장을 내어 "최근 KBS뉴스의 남북정상회담 'NLL 대화록' 보도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보도를 빌미로 한 일부 노조와 협회, 시민단체, 편향된 시각을 가진 매체들의 KBS 흔들기가 도를 넘고 있다"며 "정파적 틀에 갇혀 '의도된 왜곡이나 침묵, 변명 보도'라고 하는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대선 직전 극심한 정파적 대립구도 속에서 야권의 고소, 고발에 의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으로 시작해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대선개입 의혹 사건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기소 직전까지 검찰 내부에서도 성격 규명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던 만큼 NLL보도와 별개로 KBS는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사안"이라며 "KBS는 사건 발생부터 지금까지 주요 수사 상황과 국면 전환점마다 핵심 사항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적절히 짚어 왔다고 자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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