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정치사회갤러리’에서 만난 이들이 살인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었다. 가해자는 광주 출신이고 피해자는 부산 출신이었다. 가해자는 경찰서에서 진보성향의 자신이 보수성향의 피해자와 대립하다가 살인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진술하는 중이다.

이쯤이면 언론보도의 ‘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증오감정에 기반한 소모적인 이념대립, 극단화된 정치토론의 문제가 지적되고, 누리꾼들 언어로 푼다면 “사회통합을 위해 양편 자제효” 식의 단순한 수준의 비평이 지배적인 견해가 된다.

▲ '디시인사이드 정치 사회 갤러리'의 캡쳐사진. 이 시간에도 '디시 정사갤'은 사건의 진상에 대한 양쪽 정치세력 지지자들의 상이한 해석으로 몸살이다.

하지만 해당 사안에 대한 사실관계 자체가 그릇되었다는 지적들이 인터넷에서는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정치사회갤러리’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인터넷에서 ‘어그로’(주로 ‘어그로를 끈다’라는 형태로 쓰이는, ‘상대방의 분노를 이끌어내다’ 정도로 해석하면 되는 인터넷 용어.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시스템에서 유래. 여러 사람에게 도발적인 말을 할 때는 ‘광역 어그로’란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를 끌기 위해 생각을 이리저리 바꾸는 이들이었으나 기본적으로는 ‘일베’ 성향에 가까웠고, 그들 사이의 싸움의 동기도 정치토론이 아니라 ‘섹드립’(성적 희롱으로까지 여겨질 수 있는 야한 농담을 인터넷에서 이르는 말. ‘섹스’와 ‘애드립’의 합성어로 추정됨)이나 ‘게시판 친목질’(특정 게시판에서 오래 활동한 유저들이 게시판 주제와 상관없는 사적인 잡담을 하며 파벌을 형성하는 조류를 일컫는 말)이었다는 증언이다.

조합하자면 ‘게시판 친목질’을 하던 피해자에게, ‘어그로’를 잘 끌던 가해자가 ‘섹드립’을 날렸고 이에 피해자가 고소고발을 운운하며 사이가 틀어지다가 파국을 맞았다는 것이 대략적인 설명이다. 이런 사건이 인터넷 이용자들에겐 크나큰 충격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어느 사이트 게시판에서나 이런 종류의 소요 혹은 대립이 한두건 정도는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증언들도 사실에 온전히 부합하지는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이 사안에 접근하는 언론들의 시선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단편적이라는 지적은 가능하다. 대중에게 교훈을 주고 훈계하기 위해 사태를 너무 단순하게 만들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더욱 중요한 논점을 놓치기도 한다. 문화평론가 이택광은 트위터에서 “이번 정사갤 사건에서 많은 이들은 진보-보수 대립에 관심을 보이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상을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어 있는 개인정보가 무방비인 상태인 것”이라 평하기도 했다. (@worldless).

물론 이 사건의 경우 '게시판 싸움'과 '고소고발' 등의 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신상을 공개했다는 증언도 있다. 동네와 지인을 공개하고 경찰에 낸 진정서 내용까지 일부 공개하는 상황에서 그 상황에 몰입한 가해자가 주소를 알게 된 것도 한국 사회에선 가능한 일이다. 사진 파일을 올리면서 일부를 잘라내고 뭉갠다고 해도 조합을 하면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가능했다는 상황이라 해서 그게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터넷의 탄생 이후 도시인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전시하기 시작한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어떤 페미니즘 연구자들은 일부 여성들이 돈도 받지 않고 웹캠 앞에서 벗고 춤을 춘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 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관심’을 바라며 사생활을 인터넷에 공개한다고 해서, 특정 상황에서 그들의 개인정보를 너무 쉽게 알 수 있다는 사실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고 대체로 그것을 통해 상업사이트를 통해 인증을 하며 그런 사이트들의 보안이 튼실하지도 않은 한국 사회에선 인터넷의 투명함이 어느 순간에는 ‘스타’가 아닌 일반시민의 신상정보도 발가벗길 수 있는 것으로 악용되곤 한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선 도시가 익명성을 상실하고 구석기 시대 부족사회에나 존재했을 ‘친목질’에서 실패하면 칼부림을 당할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첨단기술이 끼친 역설적인 영향이다.

한국 사회의 언론이 이런 부분을 거의 지적하지 않고 있는 것은, 최근 ‘기성용 사건’ 보도에 대해 기자들이나 시민들이 대체로 문제의식조차 가지지 않았던 상황과 함께, 한국 사회가 얼마나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인권적 문제에 무감한지를 드러내는 정황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은 굉장히 특수한 사례로 기록되겠지만,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너무나도 광범위한 인권침해들을 방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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