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 미 썸딩'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석규와 심은하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했고, '접속'이라는 작품으로 대한민국 멜로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장윤현' 감독의 작품이었다. 화려한 캐스팅과 스타 감독이 함께 한 작품이었기에 개봉 직전까지만 해도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그 살인범을 쫓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수 많은 범죄 영화 팬들, 그리고 스릴러와 추리를 좋아하는 이들까지도 매우 큰 기대를 보냈던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흥행을 거뒀다. 이유는 단순했다. 영화는 영화 제목처럼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입에서 '텔 미 썸딩!'을 외치게 만들었다. '제발 이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나에게 말해줘!'라는 관객의 아우성이 나올 수 밖에 없었을 만큼 '텔 미 썸딩'은 범인에 대한 수 많은 흔적들을 남겼지만, 명확하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 안에 숨어있는 단서들을 추격하려 애썼던 일부 관객들에게는 큰 재미를 주었지만, 대다수에게 이 영화는 일방적이고 불편한 영화였을 뿐이었다. 이 영화는 관객과 소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감독의 의도였다. '소통'은 그가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일종의 '주제의식'이었고, 그는 작품을 통해 '소통'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바꿔 말하면 '텔 미 썸딩'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나에게 무언가를 이야기 해달라!'는 명제는 이 작품 안에서도 유효하며, 심지어 이 작품은 '내 얘기를 들어줘'까지 나아간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은 사실 그 제목부터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지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너목들'은 처음부터 소통의 부재를 내세운다. 폭죽을 '서도연'에게 쏘지 않았다는 '장혜성'의 말을 '서도연'의 가족들은 믿지 않는다. '목소리가 들린다'며 '민준국'을 범인으로 지목한 어린 '박수하'의 이야기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시작부터 이 드라마는 '소통'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런 소통의 부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친구를 떠밀었다고 오해 받는 '고성빈'은 자기의 목소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자살을 시도한다. 국선 변호사가 된 '장혜성'이 변호를 맡게 된 피해자는 '귀'가 안들려 큰 소리로 외쳐야 하거나 혹은 '눈'이 안 보인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쌍둥이 살해 사건의 경우에도, 결국 둘이 소통할 수 없었기에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 만약 둘이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 둘은 재판에서 충분히 무죄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변호사가 그들이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그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 때문에, 그 둘을 보고 울어야만 했던 여자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 또한 따지고 보면 소통의 부재가 만든 비극이었다.
'민준국'을 변호해 무죄로 만들었던 '차관우'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가 조금 더 일찍 과거 '민준국'의 공판 기록을 봤다면, 어째서 '장혜성' 변호사가 '민준국'을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됐을 것이다. 만약 그가 과거 '민준국'의 공판 때 있었던 일을 '장혜성' 변호사나 '박수하'에게 물었다면, 그런 변호를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재판이 끝나고 그에게 배달된 공판 기록과 그 기록을 확인하자마자 달려 나간 '차관우' 변호사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결국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얘기한다. 모든 일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꼬일 때, 그 원인은 모두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이 소통은 부재는 매우 자잘한 부분까지 집요하게 거론 되고 있다. 수하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았던 '경찰관'들도 마찬가지고, '장혜성'과 '서도연'의 모습을 보며 눈길을 찌푸렸던, 결국 둘 사이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 둘의 사이를 좋은 친구로 받아들인 '신상덕' 변호사도 그렇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소통의 부재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외치고 있을 정도로, 소통에 집착하고 있다. 따라서 사건의 해결 또한 언제나 소통을 통해 이뤄진다.
어린 시절 '장혜성'의 말을 믿어준 어머니 덕분에 '장혜성'은 단단하게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자기가 괴롭혔던 친구와 진심을 이야기하고 결국 '소통'함으로써 무죄가 될 수 있었던 '고성빈'도 소통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경우다. 마침내 어느 정도 화해하게 된 '서도연'과 '장혜성'도 그 화해의 계기는 술자리에서의 소통이었다. 둘이 더욱 빨리 소통했다면 11년 동안 서로 그날을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관우' 변호사와 '장혜성' 변호사는 '박수하'를 변호하기 위해서 결국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게 된다. 무죄를 받아 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듯 결국 작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소통'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를 자꾸 상기시키려고 애쓴다. 살인자 '민준국'을 유일하게 흔들었던 것이 '장혜성' 변호사의 엄마인 '어춘심'이라는 것은 이 같은 의도를 더욱 잘 나타내 준다. '어춘심'은 유일하게 '민준국'을 불쌍하게 여겼다. 아마 '정웅인'은 '어춘심'에게 자신의 아내가 살해당한 것까지 다 얘기했을 것이고, 그 이야기를 들은 '어춘심'이 '복수심'에 사로 잡혀서 살아야만 했던 '민준국'을 불쌍하게 여긴 것이다. 그 소통이 '민준국'을 흔들리게 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렇듯 '너목들'은 집요하게 '소통'할 것을 요청한다. 아마 '너목들'은 끝까지 이 바탕에 깔려 있는 '소통'이라는 주제를 결코 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종영 후에 '너목들'은 단순히 재밌는 드라마를 넘어서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성 그리고 그 밑의 나름의 사상까지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 해 보인다.
우리는 현재 '소통'하고 있을까? 우리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 그리고 남을 아프게 하고 있는 것 모두 '소통'의 문제는 아닐까? 우리는 남을 믿고, 신뢰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하고 있을까? 바로 이런 질문이 '너목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작은, 아니 어쩌면 너무나 중요한 화두일 것이다. 특히 지금 같이 소통이 힘든 시대라면 말이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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