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는 모든 기억을 잃고, 잔인한 살인범 민준국을 보복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섰습니다. 자신이 민준국을 죽였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수하로서는 이런 상황 모두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런 그를 강하게 붙잡아준 이는 바로 혜성이었습니다. 11년 전 어린 수하에게 희망을 주었던 혜성이 다시 한 번 위기에 처한 수하에게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수하 살린 혜성의 코끼리 변론; 사랑은 기억이 아닌 본능이 지배한다
모든 증거가 수하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에서 법정에서 변론을 해야 하는 변호사들의 입장은 힘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잔인한 범죄 사실을 반박해 무죄를 이끌어내는 일은 범인으로 지목된 이에게 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 힘든 일입니다.
수하를 누구보다 잘 아는 혜성과 그녀를 돕기 위해 합류한 관우. 이들은 수하가 결코 사람을 살해할 인물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혜성이 칼에 맞고 병실에 누워있을 때에도 수하는 부탁을 꼭 지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물론 사고로 기억을 잃어 강제적으로 사라진 존재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민준국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수하 사건은 검사나 변호사 모두에게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년 전 혜성 어머니 사건과 마찬가지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혜성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혐의로 법정에 선 민준국과 그를 변호하게 된 관우의 상황과 수하의 사례는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법률적으로 접근하면 두 사건은 판박이처럼 똑같았습니다.
두 사건 모두 모든 증거는 한 사람을 향해 있었습니다. 1년 전 사건에는 민준국에게, 이번에는 박수하에게 모든 증거가 집중된 상황에서 검사는 당연히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증거를 토대로 수하가 살인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검사의 주장에 맞서는 변호사 역시 과거와 마찬가지로 검사의 증거를 무력화시키며 범인이 아니라고 방어했습니다.
동일한 형태를 가진 이 두 사건의 결정적인 차이는 살해된 대상의 존재 유무였습니다. 1년 전 사건에는 분명하게 그 대상이 존재했습니다. 혜성의 어머니가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이번 사건은 민준국의 왼손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사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건은 결코 살인사건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존립할 수 없었습니다.
민준국의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집중공략한 혜성과 관우는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습니다. 혜성의 공격이 강해지자 검사 도연은 최후 변론에서 1년 전 사건을 끄집어내며 80% 퍼즐을 맞춘 코끼리가 20%가 모자라다고 호랑이로 변할 수는 없다는 논리로 수하를 범인이라 주장합니다.
민감한 사안을 끄집어 낼 정도로 공격적이었던 도연의 주장에 순간 당황했지만, 혜성은 관우를 물리치고 자신이 최후 변론에 나섭니다. 그녀는 검사가 언급한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고 밝히면서 80% 코끼리 변론에 반론을 펼칩니다. 분명 코끼리가 사자가 될 수는 없지만, 20% 안에 담긴 코끼리의 발에 공이 있을지 사람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사건의 실체가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로 달라질 수는 없지만, 20%의 퍼즐 속에 수하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진실이 담겨있다는 혜성의 최후 변론은 명확하면서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사건의 본질을 다루는 코끼리 퍼즐은 결과적으로 찾지 못한 20%의 퍼즐 속에 진실이 담겨 있다는 믿음 속에서 수하는 무죄로 풀려나게 됩니다.
합리적 의심이 받아들여지며 무죄를 선고받은 수하와 그런 판결을 이끌어낸 혜성에게 어머니가 하늘에게 울고 있을 것이라는 도연의 발언은 많은 것들을 고민하게 합니다. 자신이 1년 전 그토록 원망했던 행동을 수하를 위해 똑같이 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1년 전 법보다 감정이 앞선 혜성에게 수하 사건은 같았습니다. 감정이라는 조건은 동일했지만, 1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그 감정이 이끌리는 곳에 수하가 있었고, 그를 변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변론은 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에 홀로 눈물을 흘리는 혜성의 마음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혜성을 어쩌지 못하고 밖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는 관우의 모습에서 국선전담변호사의 애환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법으로만 사건을 변호해야 하는 그들에게는 정의와 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수많은 고통을 매순간 경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잃은 수하를 위해 그의 집까지 데려다준 혜성은 번호도 모르는 그를 위해 열쇠 수리공을 기다리다 잠이 듭니다. 잠든 혜성을 위해 어깨를 빌려주고, 자신의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변론을 위한 글들을 적은 혜성의 손을 바라보는 수하의 모습은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더러워진 혜성의 손을 잡으며 손키스를 하는 수하의 모습에는 사랑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수하를 무죄로 이끈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후가 문제였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도 강하게 들어와 있는 수하를 인위적으로 멀리 하려는 혜성과 달리, 기억을 잃은 후에도 자신이 혜성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감정이 기억하고 있는 수하는 그녀를 찾기 시작합니다. 도망치려는 여자와 찾아다니는 남자 사이에 남겨진 것은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관우는 수하 사건을 끝내고 자신을 다시 받아주기를 원했습니다. 혜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누구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혜성이 수하를 좋아하고 있다는 고백을 했고, 이런 자신의 모습에 놀라고 수하와 멀어지기 위해 노력하는 혜성을 도와주며 관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사랑이라는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수하를 멀리하려는 혜성을 도와 집까지 배웅해준 관우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오지 않는 버스와 급하게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혜성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가 바라본 혜성의 모습에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배웅해준 자신이 비를 맞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이미 그 자리에 있을지 알 수도 없는 수하를 위해 급하게 떠나는 혜성의 모습을 보면서 관우가 느끼는 감정은 분명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비까지 쏟아지는 상황에도 혜성이 떠난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수하를 발견한 그녀는 우산을 받쳐주곤 한탄합니다. 우산을 던져버리고 비를 맞는 수하를 바라보는 혜성과 그런 그녀를 위해 우산을 받쳐주는 수하의 모습에는 "우리 사랑은 이제 시작이야"라는 외침이 가득했습니다.
혜성과 수하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반갑습니다. 그동안 변변한 로맨스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불안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관우와의 사랑이 시작과 함께 끝난 상황에서 과연 수하와 어떻게 시작할지 궁금했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사랑은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합리적 의심을 요구하는 관우에 의해 신고자를 찾아간 도연은 꺼림직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저 손님이 알려줘 신고했다는 그녀의 발언에는 의문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보여주며 범인이 있느냐고 묻지만 그녀는 민준국을 보고도 지목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민준국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왼손에 검은 장갑을 끼고 수염을 기르고 변장을 한 민준국은 음습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의도가 어긋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수하와 혜성을 공격하는 것일 것입니다.
시한부 인생으로 형집행정지 명령을 받은 황달중과 26년 전 사건에 깊숙하게 개입해 있는 서대석과 황달중의 친딸일 가능성이 높은 서도연의 사연은 극 후반을 이끄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서 검사가 민준국을 잡기 위해 혜성과 함께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법정 드라마 특유의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달달한 로맨스까지 선사하기 시작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매력적인 드라마임이 분명합니다. 소소한 아쉬움을 잊게 해주는 건강한 긴장감과 배우들의 열연이 하나가 되어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후반부 대반격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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