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태계 최상위층에 있다고 자부하던 인간의 자부심이 추락한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태평양 심해에서 출몰하는 거대 괴수가 마냥 안전하리라고만 생각했던 인간의 안식처인 육지를 순식간에 초토화했기 때문이다. 거대 괴물 카이주(일본어로 괴물)의 침략에 맞서 인류는 범국가적으로 거대 로봇을 양산하기에 이른다. 전투기만으로는 역부족인지라 철로 된 거인 로봇을 만들어야 괴물과 맞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만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두 만화 작품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나는 <에반게리온>이다. 인간의 뇌 움직임을 통해 로봇이 움직이도록 만든다는 설정은 일찍이 <에반게리온>에서 볼 수 있던 컨셉이다. 또 다른 한 작품은 <진격의 거인>이다. 거대 괴물 카이주의 침략을 막아내고자 거대한 장벽을 쌓는 모습은 마치 <진격의 거인>에서 거인의 습격을 막고자 60M의 장벽을 쌓는 인간의 모습과 기시감을 갖게 만든다.

하나 더, 돈 많은 유산계층이 장벽과 멀리 떨어진 안전한 내륙에 자리하고 있다는 <퍼시픽 림>의 설정 역시 <진격의 거인>에서 유산계층이 거인의 습격과는 동떨어진 안전지대에 거주하는 설정과 맞아떨어진다. <엘리시움>에서 1% 상위계층이 안락한 지역에서 질병과 물질적인 빈곤을 걱정하지 않고 유토피아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설정이나, <설국열차>에서 상위계층이 열차의 앞자리에 탑승한다는, 요즘 일련의 영화에서 비치는 계급 사이의 간극을<퍼시픽 림> 역시 꼬집고 있다.

거대 괴물과 로봇의 액션보다 눈길을 끌었던 점은 마코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였다. 주인공 롤리와 격투에서 맞짱을 뜰 정도로 무술에는 일가견이 있는 파일럿이 마코지만, 거대 로봇 예거(독일어로 사냥꾼)에 탑승하여 롤리와 정신적인 교감을 이루는 드리프트를 형성할 때 하마터면 자기편인 기지를 공격할 뻔할 정도로 정신적인 상태가 불안한 이 역시 마코다.

육체적으로는 성숙한 아가씨였지만 정신적으로는 부모를 잃을 당시의 소녀 시절에 머물러 있던 마코는 ‘어른아이’였다. 카이주가 일본을 공격할 당시 마코는 다 큰 어른이 아닌, 카이주의 공포에 몸을 떨어야만 했던 나약한 어린 소녀였다. 더군다나 그녀를 돌보아주어야 할 부모는 온데간데없었다.

혈혈단신 살아남아 카이주의 습격을 피해 숨어 지냈어야만 했던 마코의 어른아이를 드리프트를 통해 보게 된 롤리는 마코의 어른아이를 진정시키고자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포에 온 몸을 잠식당한 어른아이 마코가 예거가 있는 기지를 일본을 습격한 카이주로 착각하고 공격을 퍼부을 뻔한 트라우마는, 함께 예거를 조종하는 파일럿인 롤리뿐만 아니라 예거 기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다.

이런 심리학적인 프리즘으로 조망하면 <퍼시픽 림>은 ‘어른아이’에 관한 영화로 읽을 수 있다. 몸은 다 자란 성숙한 어른이지만 정신적인 트라우마에 갇혀 있을 때에는 어른으로서의 주체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 당시의 아이로 퇴행하고야 마는 어른아이의 모습을 마코라는 일본인 캐릭터를 통해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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