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한국일보가 '편집국 폐쇄'라는 무리수를 해제했으나, '짝퉁 한국일보' 제작은 여전하다. 법원 결정으로 인해 마지못해 기자들을 편집국 안으로 들이기는 했으나, 실제 지면제작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은 철저히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측 인물인 하종오 편집국장 직무대행과 부장 5명의 '데스크 권한'만 인정되면서, 한국일보는 여전히 '연합일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 신종원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 ⓒ뉴스1
'짝퉁 한국일보'로 인한 참담한 마음은 내부 기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일보 지면 평가를 위해 꼼꼼히 신문을 읽어야 할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해 4월부터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으로 활동해온 신종원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은 10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숨을 내쉬며 "한국일보가 아닌 '연합뉴스 중계지'라, 보는 데 화도 나고 상당히 힘들었다"며 "배달되는 신문을 그대로 버릴 수도 없고 해서 당분간 끊기로 했다"고 밝혔다. 독자위원이 스스로 신문구독을 중단한 것은 한국일보 사태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면 제작에 관여하지 못하고 외곽을 뱅뱅 돌고 있는 기자들을 바라보는 신종원 위원의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무리 주위에서 지지해 주더라도, 결국 당사자들인 기자들이 제일 외롭고 힘들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싸움"이라며 "싸워서 이기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일보의 가치가 상실되면 안되기 때문에 기자들이 이중의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지면을 꼼꼼히 보았던 신종원 위원은 그간의 한국일보에 대해 "전통있는 신문으로서 우리 사회의 통합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정론지라는 의미가 있었다"고 평한다. 한국일보가 치밀한 분석을 통해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통합적인 관점을 지켜나가길 바란 것은 신종원 위원을 비롯한 4명 위원(김갑배 변호사, 심재웅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오승연 고려대 국제어학원 연구교수)의 공통적인 주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매달 열리던 독자권익위원회 회의는 4월 26일을 마지막으로 '잠정 휴업' 중이다. 위원들이 각자 돌아가면서 해오던 한국일보 기고도 당분간 중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한 '항의'의 뜻에서다.

신종원 위원은 "신문이라면 정확한 사실보도와 함께 그에 대한 사회적 맥락과 의미를 해석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게 없는 신문은 신문이 아니지 않은가"라며 "이번 사태로 인해 한국일보가 신문이 아닌 신문이 돼버려서, 대대로 한국일보를 열독해온 독자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혹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가 편집국 폐쇄를 풀기는 했으나, '한국일보 정상화'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언론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신종원 위원은 "어떤 싸움과 갈등이 있더라도, 상대의 실체에 대해서는 인정해 줘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해 절충을 하든 담판을 짓든 할 수 있을 텐데, 한국일보는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며 장재구 회장의 '아집'을 지적했다.

"현 사주는 자신의 의지대로만 회사를 경영하려는 목적이 앞서서, 내부 인력들을 들어내야 정상화가 이뤄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아니지 않은가. 흔히 말하는 갈등의 관리, 해결을 위한 다양한 이론이 있으나 (한국일보의 경우) 어느 것도 적용할 수가 없다.

서로가 입장은 다르더라도 상식의 궤 안에 있어야 해결이 가능한데 그것이 안된다면, 그야말로 치킨게임이 된다. 서로 치고받아서 하나가 지든지, 아니면 법원 판단으로 강제적으로 결론을 도출하든지 둘 중 하나다. 이럴 경우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한국일보가 뿌리가 있는 언론사로서의 모습이나 기능을 회복하기는 어려워지지 않겠는가."

신종원 위원은 "(장재구 회장이) 신문을 경영할 만한 사주로서의 자격은 상실했다"고 지적하며 "사주가 신문을 생각해서라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독자위원이 보기에도, 한국일보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장재구 회장의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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