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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논란’에 부치는 매체비평지 기자의 제언축구계 문제는 어떤 보도와 반향을 통해 개혁될 수 있나
한윤형 기자 | 승인 2013.07.10 15:34
   
▲ 지난 6월 19일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축구대표팀 차기 감독 선임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친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허정무 부회장은 금일(10일) 기성용 논란 관련 임원회의에서 “물의를 일으킨 기성용은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혔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공헌과 업적을 고려, 협회 차원에서 엄중 경고 조치하되, 징계위원회 회부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뉴스1)

대한축구협회가 축구 선수 기성용에 대한 징계가 없을 거라고 결정하여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기자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대안적인 견해는 없지만, 그래도 협회의 대응이 매우 안이했다는 느낌은 든다. 몇몇 사람이 이미 지적했듯이 매니지먼트사를 통한 사과가 아닌 기성용의 진솔한 사과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중적 분노의 불길을 누그러뜨리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을 텐데, 협회의 결정은 서둘러 면죄부를 발급하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가 하려던 얘기는 이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지난 기사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5일) 기자는 <해외파 선수들 기강이 '기성용 신상털기'로 잡힐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링크) 이 글은 주로 기성용의 페이스북 서브계정 일부 내용을 공개한 네이트 판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의 칼럼을 비판하면서 한국 축구가 새로이 맞이한 문제가 기성용 개인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민감한 사안이었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비판도 많았다. 주로 축구계의 상황과 맥락을 살피지 않은 비평이라는 비판이었다. 수긍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논의가 어긋난 부분도 있었기에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처음과는 달리 칼럼니스트 김현회만의 문제는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그의 글의 논지보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더 치중하여 정리하게 될 것이다.  
 
글의 성격의 문제
 
   
▲ 5일에 올라간 이 기사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비판을 받았다.

일단 이전 기사의 성격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 기사는 축구계의 문제에 대해 진보언론이 부당하게 왈가왈부한 축구칼럼이 아니라, 매체비평지의 입장에서 김현회의 칼럼에서 드러난 정보인권의 문제와 보도윤리의 문제를 짚어내는 것이었다. 축구매체에 실리고 축구팬들에게 주로 소비되는 글이라 하더라도 이런 부분들을 벗어날 수는 없다. 따라서 이전 기사는 ‘월권’이기는커녕 매체비평지의 본연에 충실한 기사였다. 

물론 그에 덧붙여 ‘사회문제는 한 개인에 대한 과도한 비난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일반론에 의거한 축구문제에 대한 약간의 비평이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김현회에 비해 축구에 대한 지식이나 식견이 현저하게 부족할 기자”나 “어렴풋이는 보이는데” 라는 표현에서 보이듯 기자의 견해가 정론임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보인권과 보도윤리를 무시한 무리한 보도에 의한 인신공격이 축구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최소한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려는 시도였다. 
 
당연히 그 부분에서는 부족한 면이 있을 것이라 보았지만, 이는 축구를 더 잘 아는 이들이 맥락적으로 보충하며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보인권이나 보도윤리라는 논점에 익숙하지 못했던 탓인지, 뒷부분에 대한 논박에 집중하면서 그것이 기사의 앞 내용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전 기사의 성격을 명확하게 하도록 하겠다.  
 
정보인권의 문제
 
   
▲ 8일(한국시간) 터키 카이세리 카디르 하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3 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8강전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한국의 정현철 선수가 연장 후반 인저리 타임에 동점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기성용은 국가대표팀 내에서 U-20 팀이 보여준 끈끈한 조직력을 방해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뉴스1)
 
이전 기사의 반응을 보면서 느낀 점은, 사람들은 ‘기성용의 권리’라는 단어만 보면 ‘기성용 vs 최강희 감독’ 내지는 ‘기성용 vs 국가대표팀’의 구도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기성용이 최강희 감독에게 억압당했다고 볼 수 있느냐?”, “기성용은 국가대표팀 선수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라고 반응했다.
 
이전 기사에선 굳이 ‘정보인권’이란 단어를 쓰지는 않았다. 구체적인 사례를 논해야 하는데 괜히 개념어를 호출하면 논의가 더 복잡해진다는 얘기를 들을까 봐서였다. 하지만 위와 같은 오해들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굳이 이 단어를 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기자는 기성용 선수가 최강희 감독에게 인권침해를 당했다든지, 비민주적인 처사를 겪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어떤 독자들은 기자가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추론했지만 말이다). 시대의 흐름이나 언론보도의 맥락으로 봐도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고, 만일 그런 정황들이 있다면 기자보다 훨씬 더 그들에게 가까이 있을 스포츠신문 기자들이 문제제기를 했거나, 이번 사건에 대해서 전혀 다른 태도를 취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인권의 차원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면 ‘기성용 vs 최강희’나 ‘기성용 vs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기성용 vs 모든 사람’이 문제가 된다. 
 
누군가가 “기성용이 최강희 감독에게 억압당했다고 볼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기자는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선수의 출전 여부는 감독의 고유권한이기에 그것으로 억압당했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 기성용 선수는 감독에게 억압당하기는커녕 조롱하고 멸시하는 태도를 드러냈다. 누군가 “기성용은 국가대표팀 선수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라고 묻는다면 기자는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답할 것이다. 축구는 단체 스포츠이며 엄연히 팀원에게 요구되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이와 엄연히 구별되는 문제는 기성용이 대표팀 소집기간 중에 무슨 문제를 저질렀다는 것을,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알게 되는 것이 정당하냐는 것이다. 기성용이 무슨 짓을 했는지 혹은 무슨 짓을 했다고 추측되는지에 대해선 추후의 논점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자. 여기서 문제는 기성용이 제한된 인원에 대해서만 공개했던 정보가 만인에게 흘러나갔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 정보는 공적인 필요성에 의해 가공된 것도 아니었고 특정 발언과 그에 대한 캡쳐 화면이라는 식의, ‘날 것’의 것이었다.  
 
물론 기성용의 페북 서브계정이 이름도 지우고 지인 몇만 팔로잉한 트위터 서브계정 수준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확인된 바로 ‘친구 공개’ 게시물을 올린 그 계정의 친구는 80여명이었고, 지인과 동료 축구선수와 축구계 인사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관해 기자가 사실을 왜곡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전 기사에서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운영하던 계정은 아니었고 지인들과 동료 축구선수들이 보는 계정이었다고 한다”라고 분명히 적시했다. 
 
그러나 기성용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느냐의 여부를 떠나 이 발언들 역시 어느 정도 공개여부를 제한한 것이었고 이것들이 ‘날 것’으로 퍼져 모든 사람에게 비판받는 상황이 정당하느냐는 물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축구계의 문제만 얘기하면서 이런 물음이 부당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마치 지하철에서 도둑 촬영된 ‘여고생’과 ‘할머니’(상투적인 예시라 죄송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장 잘 먹힐 현실적인 그림이다)의 말다툼 동영상을 보고 “이걸 우리가 모두 보고 판관 역할을 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라고 묻는데 “분명히 여고생이 잘못하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하는 것과 같다. 
 
물론 기성용은 이와 같은 사례에 나온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유명하며 모종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기성용을 차마 피해자로 상상해보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중 누구도 그만한 자원을 가진 권력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예측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기성용이라도 ‘모든 사람’에게 비난당하는 처지가 되면 본인이 행한 것 이상의 비난을 속절없이 당하면서도 항의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오히려 일반인들은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매우 섬세한 것이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김현회와 같은 공개방식이 ‘방법론적으로는 잘못되었다’는 점 정도에는 동의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끝내야겠다. 어쩌면 다음으로 논의되는 것들이 더욱 중요하니 말이다.  
 
보도윤리의 문제
 
   
▲ 지난 6월 13일 오전 서울 용산 현대아이파크몰 옥상 풋살경기장에서 브라질 삼바 댄스팀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 기원 '삼바 댄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아이파크몰 풋살경기장 추가 개장을 맞아 열린 이번 행사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허정무, 최순호 부회장 등이 참석해 월드컵 8회 연속 본선 진출과 본선 8강을 기원했다. 한국인들이 이제 월드컵 본선은 으례 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상황이 현재의 문제를 낳은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뉴스1)
 
보도윤리의 문제는 좀 더 단순하게 말할 수 있다. 보도대상의 사생활을 어느 정도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론계에서도 ‘단칼에 무자르는 식의’ 명백한 기준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사생활 보도는 보도 목적의 공익성이 있을 때에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가령 작년(2012년) 7월 24일 한겨레는 통영 초등생 살인사건 보도와 관련 <살해된 통영 초등생, 홀로 늘 배곯는 아이였다>라는 제목의 1면 기사를 통해 해당 사건을 빈곤층 소외 아동의 문제로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보도는 다른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피해자의 상황을 사회문제와 극적으로 연결시킨 것이었다.
 
한편 작년(2012년) 9월 1일 경향신문은 나주 성폭력 피해아동이 납치를 당하기 전날의 ‘그림일기’를 공개하면서 논란을 불러왔다. 이는 범죄 이후 심리치료를 위해 그린 그림을 공개한 것도 아니고 범죄 이전 피해자의 평정한 상황을 드러내면서 범죄자에 대한 분노를 유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 기사는 사생활 침해란 점에선 함께 묶일 수 있을지언정 전혀 다른 성격의 기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겨레의 해당 보도는 범죄의 병리성을 개인의 것을 넘어 사회의 것으로 바라보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경향신문의 ‘그림일기’ 보도는 ‘범죄에 대한 보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분위기에 편승해서 단독 기사를 생산해내려는 취재 욕심만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기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평가에 대한 관련 기사 링크)
 
그런 점에서 볼 때 보도윤리의 문제는 그 보도의 공익성이 무엇인지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사가 적절하게 쓰여졌는지를 놓고 평가해야 하는 사안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봤을 때, 기성용의 페이스북 서브계정의 일부 내용은 분명히 축구매체로서 보도해야 할 공익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판단이다. 이전 기사에서도 기자는 이미 “국가대표팀 축구 선수가 자신을 기용해 주지 않았다고 대표팀 감독을 ‘뒷담화’한 수준을 넘어, 해외파와 국내파의 파벌싸움에 감독이 휘둘릴 정도라는 세간의 시선에 대한 증거를 제공해 줄 수도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라고 그 사실을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는 김현회의 칼럼의 접근 방식이 대단히 아쉬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부분은 이전 기사에서 적었던 그대로, “기성용의 미숙하고 민망한 게시물을 ‘감독의 고유권한에 대한 선수의 월권’이나 ‘해외파와 국내파의 파벌싸움’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았다. 까마득한 축구계 선배에 대한 존중의 문제로 접근했다. 공적인 문제에 대해 사적인 코드로 접근하다 보니 그의 글에는 문제상황을 분석하거나 해결책을 모색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예전 선수나 K리그 선수들의 미담과 최근 해외파 선수들의 파행을 비교하는 감정만 남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축구팬들은 김현회의 칼럼의 방식이 아쉬웠더라도 문제의 핵심은 선후배 문제가 아니라 ‘팀 캐미’를 갉아먹는 선수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칼럼이나 그것을 본 축구팬들의 분노를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접근방식이 공익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한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고 본다. 기성용의 페이스북 서브 계정에서 파악했어야 했던 것은 대중이 분노할 선정적인 발언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동료 축구선수들 중 누구가 그의 그러한 발언들에 ‘좋아요’를 눌렀는지일 수가 있다. 설령 이런 사안들이 확보가 되지 않았더라도, 그러니까 동료 축구선수들 중엔 그의 발언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가 감독에게 불만을 표하는 부분보다는 선수기용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이견을 제기하고 해외파의 기용을 당연시하는 부분을 부각시켜야 했을 것이다. 
 
또 그런 경우 보도의 방식이 반드시 페이스북 화면 캡쳐를 공개하는 길이었어야 했을 필요도 없다. 그저 텍스트로 상황을 설명하고 기성용의 발언이 가지고 있는 함의를 이전의 대표팀 내부 갈등에 대한 루머와 결부시켜 그 공익성을 설명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축구팬들은, 예전에 대표팀 내부 갈등에 대한 보도를 하다가 팬덤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위축이 된 기자들의 사례를 지적하면서 김현회의 방식이 최선은 아니었더라도 차선이나 차악은 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통의 기사내용이 축구선수의 부인을 받을 경우 자신의 취재원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다른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반면, 김현회의 칼럼은 이미 자신이 처음에 공개한 캡쳐 사진을 증거로 가지고 있었다. 
 
통상적인 취재였다면, 김현회는 기성용의 페이스북 계정의 친구 중의 하나를 취재원으로 포섭한 것일 게다. 그랬다면 대중의 비난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혹은 그가 캡처 사진만을 증거로 받았다 하더라도, 최악의 경우 기성용의 부인과 팬덤의 공격에 대해 방어하기 위해 그것을 공개할 수 있었다. 지금 대중이 단지 그 캡처 사진만으로도 상황에 대한 김현회의 설명을 신뢰하게 되었다면,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결국 ‘김현회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대중은 믿지 않았을 것이다’는 주장은 엄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일 그가 최초 칼럼에선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대중의 반발에 직면하여 공개한 상황이 되었다면, 보도윤리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사진을 공개했더라고 그 공익성을 제대로 설명했다면 또 다른 평가가 가능했을 거라고 본다.   
 
김현회의 칼럼에 대한 비판은 이런 지점에 서있는 것일 뿐, 기성용의 행위를 옹호하는 차원의 일이 아니다. 진보언론들이 이 사건을 ‘기성용의 싸가지에 대한 꼰대들의 탄압’으로 계열화하게 된 이유는 축구계 문제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 때문만은 아니라 김현회의 문제제기 칼럼의 내용이 그런 식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파벌 싸움’을 해결할 방법?
 
이러한 논점들과 사안들을 나열하면 흔히 축구팬들은 “그러면 당신은 김현회와 다른 방식으로 축구계 파벌 싸움을 해결할 대안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기자는 이 질문이 다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정리했듯 김현회가 보도윤리를 이번처럼 거스르지 않으면서 비슷한 종류의 충격파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는 것이 기자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또 대중이 축구계 사안을 샅샅이 알고 공분을 터트리는게 반드시 문제해결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축구팬들이 진보담론이 축구 문제에 접근하는 시선에 대해 “축구판에 와서 무슨 민주주의를 찾느냐”라고 조소했다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도 비슷한 성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정치의 문제라면 국정원 내부자료처럼 다수 대중에게 공개가 되어서는 안 될 부분들만 입법기관인 의회를 경유해서 통제하도록 하고, 나머지 사안들은 되도록 유권자들에게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축구 문제에 있어서 그러한 종류의 민주주의를 추구할 필요가 있는가? 
 
기성용의 행위에 대해 분개하는 축구팬들은 ‘팀 캐미’를 깎아먹는 선수들이 어떻게 팀을 망쳐왔는지 여러 사례들을 줄줄이 읊는다. 그리고 축구계에서는 그러한 선수들에 대해 단호한 처신을 해왔음을 설명한다. 실제로 최악의 경우 한국 국가대표팀 축구팀에서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그렇기에 기성용에 대해 단호한 대처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페이스북 서브계정의 몇몇 게시물을 확인한 지금까지도 그 사안에 대해서 확실하게 아는 바가 없다. 또한 우리가 그 사안을 속속들이 아는 것이 사태해결에 더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하기 어렵다. 파벌싸움이 나쁘다면 그 이유는 그것이 팀의 기량을 약화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파벌싸움이 팀의 기량을 약화시킬 정도로 진행되지 않았다면 적당한 수준에서 징계를 하고 구성원들을 안고 가는 것이 팀의 기량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무조건 누군가를 자르자고 얘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성용이 설령 세간의 추측처럼 대표팀 파벌싸움의 주축이었고, 2012년 런던 올림픽 세대를 추동하여 대표팀의 질서를 교란했다 하더라도 이는 마찬가지다. 원론적으로 볼 때 이런 문제들은 내부적으로 정리되는 것이 가장 좋고, 외부에서 해결되어야 할 만큼 심각하더라도 정돈된 언론보도를 통해 비판받으면서 해결되는 것이 좋다. 그들의 사소한 말다툼이나 에피소드 등을 우리가 속속들이 파해치고 난 후 국민적으로 평결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런 종류의 ‘인민재판’이 축구발전에 도움이 된다고도 믿기 어렵다. 
 
   
▲ 돌아온 리베로' 홍명보 전 올림픽팀 감독이 지난 6월 25일 오후 파주 NFC(국가대표 축구팀 트레이닝센터)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규)가 계약이 종료된 최강희 국가대표 A팀 감독의 후임으로 발탁된 홍 감독은 계약기간 2년으로 2014 브라질월드컵 및 호주 아시안컵을 지휘하게 됐다. 신임 홍명보 감독으로서는 '기성용 논란' 때문에 처음부터 리더십을 시험받게 된 셈이다. (뉴스1)
 
음모론의 이면과 언론의 역할 
 
이 사안을 추적하면서 스포츠언론 기자들의 애환을 일부나마 느끼게 되었다. 정치영역의 경우 사람들은 기자도 신뢰하지 않지만 정치인도 역시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인이 해당 보도를 부인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기자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포츠영역에선 응당 그랬어야 했던 선수의 부인만 듣고 기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이런 국면에서 몇몇 진보성향 인터넷언론이 현장 상황을 확인하지 않은 대중추수적인 보도를 통해 대중과 함께 스포츠언론 기자들을 비판하며 여론을 왜곡하는 일도 일어났는데, 이는 축구팬들이 진보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중의 음모론 속에서 기자들은 그 음모의 조력자로 묘사되기도 하고 피해자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거창한 음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축구협회나 감독들이 그를 쉽게 내치지 못하는 것도 그가 어떤 종류의 권력자라기보다는 그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맡고 있는 역할(role)이 아직까지는 희소하고 대체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일 거라는 것이 기자의 판단이다. 
 
사적인 조언의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기성용처럼 행동한다면 그의 부친이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그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나타났을 때 굉장히 힘든 상황을 맞이할 거라 충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그가 ‘팀 캐미’를 갉아먹지 않는 선수가 되는 수준으로는 관리하여 그를 월드컵에 데리고 나가는 것이 최선인 상황일 수 있다. 
 
처음부터 대표팀 내 갈등을 암시한 기자들의 기사를 신뢰하였고 그 연장선상에서 기성용에 대한 일벌백계를 주장하는 축구팬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은 이전에는 기자들과 최강희 감독을 비난하다가,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난 후 그 타겟을 바꾼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정된 정보로 특정 개인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기보다, 뉴스소비의 태도를 성찰하는 자세가 더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이번 기성용 문제에 대한 가치판단과는 상관없이, 어떤 방식으로 터져나올지 모르는 인민재판보다는 스포츠언론들이 축구계 내부의 문제를 밝혀내고 이를 일정 부분 신뢰하는 대중의 압박으로 문제를 개선하는 길이 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축구판 문제에 대해 매체비평지 기자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이 정도일 것이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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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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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llk 2013-07-10 21:07:41

    축구에 별 관심없는 입장에서 오히려 이번 기사들에 대한 반응과 대응이 더 재미있는 건 한윤형기자에겐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군요. 이렇게 날 선 상황에서 양비론과 제 3의 입장을 구별되게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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