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기자는 시대와 현장을 기록한다. 기자의 기록은 손에서 끝나지만 발에서 시작한다. <미디어스>는 현직 기자들이 현장에 남긴 깊은 발자국을 살펴보고 험난하고 고단했던 기록의 현장을 되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기자 in 기자'는 매달 한 번씩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기자들을 소개하는 코너다. 그들의 보도와 기사를 통해 우리 시대의 저널리즘을 고찰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지난 5월 방송한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편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신의 사위와 바람난 것으로 착각해 한 여대생을 미행하고 살인까지 교사한 중견기업 '사모님'의 충격적인 과거는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2002년 '이대 여대생 하양 공기총 살인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된 이 사건은 세간을 발칵 뒤집었고 살인을 교사한 혐의로 사모님 윤길자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윤씨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석연찮은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병원으로 오가며 수감자답지 않은 호화 생활을 한다. 정상적인 수감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주치의의 진단 때문에서다. 이를 고발한 SBS의 꼼꼼한 취재력과 극적인 요소는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손에 땀을 쥐게 했다.

▲ 지난 4월에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2580> '의문의 형집행정지' 편. 임소정 MBC 기자. (MBC 화면)

그러나, 윤씨의 형집행정지와 의료 기록의 허구성을 최초 고발한 프로그램은 MBC <시사매거진2580>(아래 2580)이다. 2580의 임소정 MBC 기자는 4월 '의문의 형집행정지'라는 꼭지를 통해 윤씨의 호화 병실 생활을 고발했고, 파킨슨 병 등 중병을 앓고 있어 수감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그의 의료 기록이 가진 허구성을 탄탄한 취재로 폭로했다.

특히 몰래카메라를 통해 윤씨가 타인의 부축 없이 정상적인 거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과 임 기자와 마주한 윤씨가 파킨슨 병 증상인양 뒤늦게 손을 떠는 모습은 방송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SBS 역시 5월 방송분에서 윤씨를 직접 취재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한 채 2580으로부터 이 영상을 제공받았다. SBS가 찬사를 받았지만, 윤씨와 관련한 핵심적인 부분들은 MBC 2580 취재진의 손길이 가장 먼저 닿았던 것. 의료 기록과 진단서 등 각종 자료 역시 임 기자와 2580 취재진들이 어렵사리 입수한 것들이었다.

특종에 상이 따랐다. 임 기자는 지난 6월 '의문의 형집행정지'로 박주일 MBC 기자와 함께 방송학회와 방송기자연합회가 주관하는 '이달의 방송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미디어스>는 '기자 in 기자'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MBC에서 임소정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취재 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아쉬웠던 점은 없었을까?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래는 임소정 기자와의 인터뷰 전문.

미디어스(아래 미) : '형집행정지 사건'을 어떻게 취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임소정 : 2월에 제보 전화가 왔다. 2002년 살인사건으로 숨진 하지혜 양의 아버지 전화였다. 살인교사를 한 윤길자가 형집행정지를 받고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다는 얘기였다. 다음 방송을 준비하는 것보다 하양의 아버지를 먼저 만나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이틀 취재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4월까지 두 달가량 취재를 했다.

미 : 하양의 아버지가 <시사매거진2580>을 특별히 찾은 이유는 무엇인가?

임소정 : 2002년 하양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MBC 2580이 하양 사건을 3번 정도 다뤘다고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하양과 같은 학교를 나왔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그 사건을 잘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이번에도 2580이 잘 다뤄줄 것 같아서 다시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미 : 취재 초기, 가지고 있던 정보는 얼마만큼이었나?

임소정 : 당시 하양의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자료는 거의 없었다. 윤길자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는 얘기만 들으신 상태였다. 가장 중요했던 병원 진단서와 의료 기록이 없었다. 한 달을 넘게 헤맨 뒤에야 자료를 얻게 됐다. 세브란스를 떠난 윤씨의 행방을 찾는 데만 2주가 걸렸다. 어디로 옮겼는지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접촉했다.

미 : 취재 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임소정 : 의료 기록을 입수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취재원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인내가 필요했다. 또, 윤씨가 잘 움직이며 건강에 무리가 없다는 걸 입증해야 했다. 그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미 : <시사매거진2580>을 보면, 혼자서 걷거나 식사를 하는 등 윤씨의 건강 상태가 수감 생활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위급한 것은 아니라는 게 잘 드러났다. 이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하다.

임소정 : 어려움이 있었다. 간호사들이 우리를 수상하게 생각했다. 그럴 만했다. 못 보던 사람들이 한 달 정도 왔다갔다하고. 그래서 제대로 뻗치기(취재를 위해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못했다. 그렇다고 윤씨가 있던 방이 촬영하기 쉽게 개방돼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VJ를 직접 병원에 입원시켜 상황을 주시하게 했고, 몰래카메라도 적당한 위치에 설치했다.

▲ MBC <시사매거진2580>이 지난 4월 방송한 '의문의 형집행정지' 중 한 장면. 임 기자와 취재진은 오랜 취재 끝에 윤길자씨와 대면할 수 있었다. (MBC 화면)

미 : 그러다 <시사매거진2580> 취재진들은 윤씨의 병실을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 멀쩡하던 윤씨가 임 기자가 다가오자 파킨슨 병이 심한 것처럼 갑자기 손을 떨기 시작했다. 시청자로서 가장 인상 깊었다.

임소정 : 당시 카메라 기자와 함께 들어갔다. 병원 진단서에는 중병환자처럼 기록이 돼 있었기에 그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든 입증해야 했다. 들어가기 직전까지 보안을 유지해야만 했다. 주치의와 윤씨가 서로 연락해 입을 맞출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재진들을 둘로 나누었다. 작가들과 VJ를 한 팀으로 묶고, 나와 카메라 기자가 한 팀이 됐다. 두 팀은 각각 주치의와 윤씨를 담당했다.

우리 팀은 밥을 먹을 때 윤씨를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야만 혼자서도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이상이 없다는 걸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전 취재와 자료 수집을 꼼꼼하게 했고, 그의 병들이 거짓이라는 데 자신이 있었다.

미 : 이날 방송을 보면 의사협회에서도 취재에 많은 협조를 한 것 같다.

임소정 : 과거 의료사고와 관련한 취재를 했을 때, 의사협회에서 그 사실을 인정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의사협회가 의사들의 반발을 많이 샀었다. 그 기억에 왠지 이번에도 의사협회가 도와줄 것 같았다. 또 전문의 섭외도 잘 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섭외가 됐고 의견을 들었지만 시간상 윤씨의 의료기록과 진단서에서 나타난 모순점들을 다 다루지는 못했다. 반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의료기록을 꼼꼼하게 정리해 시청자들께 잘 보여줬다. 취재한만큼 다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쉽다.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꼼꼼하게 내용을 채웠을 것이다.

미 : 윤씨 측에서 <시사매거진2580> 보도에 대해 제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임소정 : 윤씨 측은 기자가 편집한 부분만으로 사람의 건강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느냐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출근하면서 지켜 본 것 중 일부만 영상으로 나간 것이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윤씨의 전 남편인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이 언론중재위에 직접 나왔다는 사실이다. 취재하기 전에는 서류상 이혼한 것으로 돼 있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취재를 해보니 의료비도 영남제분 회장 카드로 결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윤씨 측은 언론중재위 제소뿐 아니라, 형사 고소까지 했다. 그래서 영등포서에 출두해야 한다.

미 : 이후 윤씨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갔을 때 느낌은 어땠나?

임소정 : 매우 기뻤다. 취재를 하면서 하양의 아버지와 매우 가까워졌다. 취재 이후 하양의 아버지는 나를 '우리 소정아'라고 부르실 만큼 아끼신다.(웃음) 아버지는 그동안 정말 많은 고생을 하셨다. 고통스러운 사건을 취재 때문에 반복해서 알려야 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강원도에서 혼자 들어가 생활하실 정도로, 나머지 인생 전부를 이 사건 진실 규명에 바치셨다.

미 : 특종은 MBC가 했지만,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큰 화제를 모았다. 아쉽지 않았나?

임소정 :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만약 충분히 시간이 있었다면 충격적이었던 2002년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고, 인터뷰이들의 멘트를 더 많이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특종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쉬움은 컸지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그만큼 잘 만들었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윤씨가 2580 방송 이후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게 됐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편집자 주 : 윤씨가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게 된 시점은 5월 21일이다. 이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 여대생 청부살해사건, 그후' 편이 방송된 25일보다 나흘 앞선다.)

미 : 다시 말하면 MBC의 보도는 파장이 크지 않았다.

임소정 : 방송이 나간 뒤 하양의 아버지가 전화를 하셔서 '너무 조용하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취재를 한 기자로서 참으로 속상했다. 시청률은 11% 정도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화제가 되지 않았다. 하양의 아버지는 직접 경찰 출입 기자들에게 보낼 자료까지 만드셨다. 검찰 앞에서 1인 시위도 하시고. 국회 법사위도 찾아갈 정도로 절박했다.

미 :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시사매거진2580>의 영상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시사매거진2580>은 윤씨의 모습을 직접 담았다. 핵심 취재 측면에서는 MBC가 한 발 더 앞섰던 것 같다.

임소정 : 영상도 영상이지만 이 사건은 의료기록, 진단서 등의 자료가 사건 해결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 자료들은 SBS에도 제공했다. 아버지의 자료였다면 내가 감히 제공할 수 없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입수한 자료였기 때문에 제공했다. 한 번 더 방송이 된다면 해결 가능성이 더 커질 테니까. 윤씨 측에서 언론중재위에 고소할 때 보냈던 자료들도 SBS에 제공했다. 아쉬운 면이 많지만 사건이 해결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앞섰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 임소정 MBC 기자 ⓒ미디어스

미 : 방송이 나갔지만 아직도 궁금한 점들이 많다. 검찰, 의료계, 재벌 사이에 어떠한 커넥션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후속 계획은 없나?

임소정 : 그건 검찰이 밝혀야 하지 않나?(웃음) 후속을 하고 싶은 마음은 크다. 또 검사 취재 내용 중 방송에 나가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

미 : 앞서 말한 아쉬움이 각종 수상으로 치유가 됐나?

임소정 : 상은 'MBC가 이런 취재를 했었다'는 걸 남기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나, 이번 취재는 개인적으로 큰 자산이 됐다. 어떤 취재보다 절박했고 치열했다. 하양의 아버지는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나에게 '소정아, 너무 애쓰지마' '잘 되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걱정마'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울컥하면서도 참 고마웠다.

미 :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특종이 있나?

임소정 : 맨날 특종만 할 수는 없다.(웃음) 일단 들어오는 제보를 열심히 취재해야 할 것 같다. 아이템이 없을 때도 많다. 그러면 진짜 머리를 싸매면서 괴로워한다. 우리는 제보를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미 :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많이 떨어진 것 같다. MBC 기자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임소정 : 시청자들을 원망한 적은 결코 없다. 그만큼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지 못하게 기사를 쓰고 있다는 뜻일 거다. 그러나 2580 기자들은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는 있지만, MBC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으시다면 묵묵하게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 잘했을 땐 잘했다고 칭찬도 좀 해주시고 못했을 땐 또 냉철히 비판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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