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 없는 소식가라는 것은 이 나라 여성으로서는 운 좋은 조건이다. 지식과 노력 없이도 체중이 적게 나가고, 사람들의 놀림이나 비난도 없고, 옷 입기도 수월하다. 게다가 건강검진에서 저체중이라며 근육을 3kg 올리라는 진단을 받고 좋은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단순히 마르기만 한 약한 몸' 에서 '심폐지구력과 근력을 키운 몸'이 되고, 덤으로 '보기에도 좋은 라인'까지 얻었으니 아주 잠깐이었지만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면 뭐하나. 그 직후에 임신-출산을 겪고 지금은 근육 없이 마른 팔다리에 배랑 허리만 토실토실한 채 산후비만이 되지 않도록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입장인 것을.

살이 안 찌는 식습관은 있는데 근육량이 심각하게 적었던 저체중 진단을 받았던 터라 그게 건강한 식습관일 리 없고, 근력과 심폐지구력 키우는 운동은 알지만, 운동으로 살 빼는 법은 모르고, 아기를 돌보아야 하고 육아로 잠이 부족하고 바쁘니 싱글시절처럼 자주 오래 운동갈 여건이 안 되고, 모유수유를 해야 하니 먹는 것을 줄일 수 없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어떻게?

다이어트에 관해서는 '썰'이 너무 많다. 근거나 원리로 제시되는 설명들은 애매하고 수상한데다가, 요요가 오지 않는지, 장기간 유지 가능한지도 회의적이고, 건강에 대한 보장이 없거나 실행하기가 너무 힘들다. 비법마다 과학적이라고 주장하고 그럴싸한 근거를 대어도, 통합이 안 되고 상충하기까지 하면 어느 과학이 맞는지(?) 선택할 눈도 없다. 다이어트 분야가 워낙 장사가 되다 보니 돈을 노린 헛소리도 많이 돌아다니고, 무얼 택하든 건강을 두고 도박을 하는 게 아닌가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다이어트에 대한 그간의 상식을 뒤집다

저자 코치 D는 트위터 상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거기에는 <미디어스> 기자 한윤형의 공이 클 것이다. 한 기자가 리트윗하는 코치 D의 글을 간간이 보다가 직접 팔로우하고, 140자의 연속만으로 성에 차지 않아 답답해 하던 차에 그는 <다이어트 진화론>이라는 책을 냈다. 실용도서라지만 구체적인 다이어트 방법은 무려 마지막 장인 Part 07(229쪽)에 가서야 나온다. 그럼 그때까지 저자가 설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각 다이어트 방법의 이론적 기원과 효과와 한계가 무엇인지, 다이어트에 관련된 수단들이 얼마나 효용이 있는지, 다이어트의 목표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몸에 좋다던 생식과 채식이 실제로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좋은 운동에 대한 통념이 정말 실제로 좋은 결과를 내는지, 판단력을 키워주는 데 책의 거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주위의 감언이설과 오지랖과 파편적으로 넘쳐나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기초공사부터 하는 것이다.

체중 관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칼로리 계산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칼로리 계산이란 게 정말 더하고 빼는 게 의미가 있을지 의구심을 가져봤을 것이다. 같은 냉면도 가게마다 재료가 다르고 양도 다르고, 같은 5km/h로 40분 걷기를 했다 해도 몸무게며 자세에 따라 힘이 덜 들고 더 드는 게 다른데, 먹은 만큼 다 운동해 태웠다는 식으로 계산해도 되는 개념인가? 저자의 답은 당연히 ‘아니오’ 이다. 칼로리 계산의 탄생과 현재의 측정 수단을 보니 웃음만 나오더라. 개념이 탄생하던 시기는 물론이고 현대 과학은 아직 그토록 대단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체중에 집착하는 현상도 뒤집는다. 체중이 곧 몸매는 아니지만, 식단조절과 운동을 병행해 체중을 줄이면 몸매는 저절로 예뻐지는 것이고, 운동을 안 해도 체중을 줄이면 일단 더 작은 사이즈의 옷이 들어가니까 어디서건 다이어트의 기준은 체중이었다. 하지만 체중이 줄지 않아도 허리 사이즈와 허벅지 사이즈, 팔뚝 사이즈, 뱃살이 줄어들어 예쁜 몸매가 되면 체중이야 어쨌든 상관없는 것이 아닌가. 저자는 체중계 말고, 줄자로 허리와 엉덩이 둘레를 재면서 거울로 몸 전체를 보고 다이어트 진행여부를 점검하라고 한다. 이 당연한 사실을 왜 읽기 전엔 몰랐을까. 집에 체중계는 사놨는데 줄자는 없다. 나는 저체중으로 돌아가는 게 목표일 수 없고, 지방을 빼고 근육을 키우는 게 목표라 몸무게 자체에 변화를 줄 것도 아니었는데 왜 체중계에 이틀마다 꼬박꼬박 올라가고 있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살 뺀다’와 ‘체중’의 강력한 연결고리 때문인가? 체중이 아니면 구체적으로 뭘 재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후기 구석기의 식단이 건강에 좋다

그래도 ‘건강에 좋은 식단을 지키고 열심히 꾸준히 운동을 하면 건강하게 살을 뺄 수 있다’는 생각만큼은 맞을 줄 알았다. 건강에 좋은 식단이라는 것은 각 문화권에서 오래 살아남은 전통 식단이고(한국에서는 소금 줄이고 국물 안 먹는 정도만 수정하고), 열심히 꾸준히 운동한다는 것은 현대 문명이 일상화된 이후 각자 실내에 앉아 공부하고 일하게 되면서 사라진 운동량을 ‘운동 시간’을 내어서라도 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저자에 따르면, 저 당연해 보이는 명제조차 구멍투성이였다. 현생 인류와 해부학적으로 차이가 없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출현이 20만 년 전, 인간의 진화가 1~2만년 사이에 급격히 이루어지는 건 아니며, 농경이 시작된 지 이제 갓 1만 년이다. 고대인들의 유골 분석 결과 고대인들의 영양상태가 신석기인보다 낫고, 키는 현대인들의 평균 신장보다 크다고 한다. 결국 ‘건강에 좋은 식단’ 이란 신장이 줄어들고 각종 대사증후군이 출현하기 시작한 신석기 이후의 식단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가 진화적으로 적응하였을 시기인 ‘후기 구석기의 식단’ 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몸에 필요한 운동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에 들어앉지 않았던 몇 십년 전이 아니라, 수렵하고 채집하던 시기의 움직임과 횟수를 반영한 운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기 구석기 식단이 어떤 형태이며 그 시절의 움직임을 반영한 운동이 어떤 형태인지는 책을 직접 참조하자. 다행히 저자는 다이어트를 노력 없이 날로 먹고자 하는 소망에 응하지는 않지만, ‘야근도 잦고 집밥 먹을 기회도 없고 운동시간을 매일 낼 여건도 안 되는데 어쩌지’ 라며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응답한다. 의지를 강조해 무조건 지식대로 이행하라고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해서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장 구석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구석기 식재료와 생활환경을 구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만큼, 결국 다이어트의 성패는 현실과 얼마나 ‘덜’ 갈등하며 지속할 수 있느냐에 놓여 있다. 우리가 구입할 수 있는 식재료는 대부분 산업화 공정을 거친 것이며, 피트니스 센터에 즐비한 운동기구는 불완전한 움직임만 시킨다. 저자는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정확한 지식을 어떻게 지금의 현실에 접목할 수 있을지, 그 부분을 연구하는 데 꽤 노력을 기울였다. 맛과 조리 난이도를 고려한 여러 레시피와, 그것으로 구성한 식단 예시까지 실려 있으니 하나씩 만들어 먹어 보는 재미로 시작하면 좋을 듯하다.

지방은 줄이고 근육은 늘리고, 근력도 필요하고 미용상으로도 날씬해지고 싶지만 먹는 건 줄이면 안 되는 젖먹이의 엄마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가닥을 잡았다. (모유생산을 위한 별도의 상세조정은 내가 연구할 몫이다.) 무엇보다 건강한 식사와 움직임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공부가 되는 책이다. 마음 같아서는 책에 실린 내용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얼마나 재미있고 유용한지를 길게 떠들고 싶지만, 직접 읽는 것이 정보 전달과정에서의 손실이 적을 것이라 강력한 추천으로 대신한다.

히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글루스 블로거이다. 블로그 주소는 http://heeyo.egloos.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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