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검찰은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매각 계획'을 특종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에게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

최성진 기자는 최필립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당시 MBC 기획홍보본부장 등이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을 팔아 부산, 경남지역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재원 등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해 10월 13일, 15일 두 차례에 걸쳐 단독 보도를 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2부(고흥 부장검사)는 1월 18일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직접 청취, 녹음 후 기사화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된다"며 최성진 기자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달의 기자상' '한국신문상'을 받는 등 보도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던 해당 기사를 놓고 불구속 기소 결정이 내려지자, 언론계에서는 "정치검찰" "언론탄압"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 최성진 한겨레 기자는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문화방송 기획홍보본부장 등의 비밀회동',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매각 추진 대화록' 등을 보도한 공로로 지난 1월 11일 미디어공공성포럼이 수여하는 '2012 미디어공공성포럼 언론상'을 받았다. ⓒ미디어스

검찰, "기자는 도청해도 되나?" 강압적으로 다그쳐

검찰은 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최성진 기자에 대해 "타인인 최필립 이사장, 이진숙 본부장 등의 비공개 대화를 직접 녹음하고 (이를 대화록으로) 풀어서 보도한 것은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없다"며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

특히, 이날 공판에서 이봉창 검사는 "기자는 타인간의 대화를 몰래 엿듣고 도청해도 되나?" "신문기자로서 비실명으로도 요약보도가 가능한 것을, 굳이 실명을 다 노출시키며 전문을 공개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수 차례 질문하며 때때로 목소리를 높이고, 최성진 기자를 강압적으로 다그쳤다.

이에 대해 최성진 기자는 "최필립 이사장, 이진숙 본부장은 공인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는 게 (기자로서) 정당한지는 언론계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해 가이드라인을 정하면 될 일"이라며 "이 보도를 두고 재판이 진행되는 것 자체가 검사님에게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우스운 일"이라고 맞받았다.

또, 이봉창 검사는 "(최필립 이사장의 휴대전화 기종이었던) 아이폰과 (최성진 기자의) 갤럭시 S2를 이용해 당시 상황을 직접 실험해 보았다. 아이폰-갤럭시S2의 전화통화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제3자의 대화를 녹음해 보았으나, 잘 되지 않더라"며 한겨레가 공개한 대화록 자체가 최필립 이사장/이진숙 본부장 등의 진의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이봉창 검사는 실제 음성파일과 한겨레의 대화록 내용이 다르다며, 그 예로 대화록에는 이진숙 본부장이 기자회견 개최장소로 "대형광장이나 대학"를 지목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음성 파일에는 '청계광장이나 대학로'라고 나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를 두고, 이봉창 검사는 "이진숙씨는 언론인으로서 자기 뜻을 담아 '청계광장'이라고 발언했는데 이를 '대형광장'이라고 보도한 것은 왜곡이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최성진 기자는 "'청계'라는 단어가 잘 들리지 않았고, 불분명하게 들리는 부분을 추정보도할 수가 없어서 '대형광장'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며 "대화록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 최성진 기자의 정수장학회 보도. 한겨레신문 2012년 10월 13일자 1면

검찰, 사실 아닌, 지엽적인 문제거론하며 "왜곡보도"

대화록의 핵심 내용과는 무관한 지엽적인 부분을 문제삼는 태도는 심문 내내 이어졌다.

이봉창 검사는 대화록 가운데 최필립 이사장이 "이걸 하게 되면 비꼬는 말이 상당히 나올거라고" "뭐 대선 앞두고 잔꾀 부리는 거라고 해가지고 이야기는 나올거야"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이진숙 본부장이 "네, 맞습니다. 박근혜에게 뭐 도움을..."이라고 맞장구를 친 것으로 나와있으나 실제 음성파일의 발언은 "박근혜에게 뭐..."였다며 이를 '왜곡보도'라고 표현했다.

당시 음성파일에 따르면, 이진숙 본부장 등이 '만약에' '저희들이 추진한다면'이라는 가정적인 표현을 수 차례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록에는 이 같은 표현이 없다는 것도 문제삼았다.

최성진 기자는 '도움을'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맥락을 고려해 복원한 것일 뿐이다. 일반적인 복원 방식"이라며 "대화 자체가 (열흘 뒤의 기자회견을 전제로 한) 가정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것 아닌가. 전반적으로 미래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대화내용에서 '만약에'라는 표현이 없다는 것을 굳이 문제삼는 걸 이해할 수가 없다"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때때로 사실관계가 틀린 주장도 나왔다. 이봉창 검사는 음성파일에 이진숙 본부장 등이 주식매각의 '이자'를 반값등록금 재원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겨레가 '이자'가 아닌 '원금'이라고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사의 주장과 달리 지난해 10월 15일 <"MBC 매각발표 사회자 MBC 아나운서 빼고..."> 기사에 실린 대화록에는 "지분의 매각 수익은 이자수익화해서 반값등록금과 관련한 재원으로 활용한다"(이상옥 MBC 전략기획부장) "가능하면 이자수익에 대해 반값 등록금으로 활용하겠다는 (장학회의) 천명이 있었으니까"(이진숙 본부장) 등의 발언이 나온다.

변호인 "세월 지나면 참으로 부끄러울 사건일 것"

최성진 기자 측 김형태 변호사는 "대화록에서 중요한 것은 '청계광장'인지 '대형광장'인지가 아니라 (최필립 이사장 등이)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을 정수장학회 지분 처리를 극비리에 논의해 불과 열흘 이후인 10월 19일에 대중들에게 발표하려 했다는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들이 직접 알렸을 내용을 기자가 먼저 보도했다고 해서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게 아니라 국민이 당연히 알아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이 사건은 세월이 지나면 참으로 부끄러울, 검찰의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 수십년간 반복된 검찰의 (정치적) 행위가 또다시 벌어진 것을 보고 참으로 답답함을 느낀다"며 "검찰이 우리나라의 헌법질서를 크게 후퇴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최성진 기자는 최후진술에서 "검찰에 거꾸로 묻고 싶다"면서 "최필립 이사장과의 휴대전화 통화가 끊기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MBC 관계자와 '정수장학회를 팔아치우겠다'는 내용의 대화를 하고 있는데 검찰 주장대로 전화를 끊고 아무 것도 듣지 않은 척 보도하지 않았다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어두운 진실'에 눈 감았다면, 그런 저를 어느 누가 기자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밝혔다.

최성진 기자는 "기자인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정에 나올 때마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정의가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한국사회에서 언론 자유의 가치가 숨쉴 공간은 어디인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판사를 향해 "언론자유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선고 공판은 내달 20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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