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들이 달았다는 댓글들은, 그 수법이나 정당화 논리가 파행이란 것을 떠나서, 내용면에서도 ‘괴랄’하다. 문체만으로 본다면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유저의 덧글과도 구별할 수 없다. 세간에서 ‘일베’조차 국정원이 만들어 내거나 관여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설령 그 정도까지 추측하진 않더라도 국정원의 인터넷 댓글들이 그럴듯한 '가면'을 쓰기 위해 인터넷의 하위문화에 적응하며 자신들의 정치성을 드러낸 것이라 평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 댓글이 인터넷에 유입되는 과정에 자생적인 넷극우파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일베'와 같은 것들이 좀더 대중화되는 데에 이바지했다고는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기사, '국정(홍보)원'이 된 국정원의 낯 뜨거운 명예)

지난 기사에서 ‘국정원의 명예’를 말한 남재준 원장과 국정원을 비판하며 위와 같이 다소 조심스럽게 설명했지만 네티즌 수사대가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들의 아이디를 검색하며 확인한 댓글들의 수준은 비평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이는 검경의 수사나 이를 입수한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보도에서 말하는 것처럼 “야당 후보를 비판한 덧글은 많지 않다”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들의 활동은 정상적인 정치인 비판이나 정치성향을 드러내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야당 후보들의 이름을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건수’가 많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문재인을 ‘문죄인’으로, 이정희를 ‘오크녀’로, 김대중을 ‘개대중’으로, 노무현을 ‘뇌물현’으로 부르는 그 상황에서 ‘키워드 분석’은 심리전단팀의 끔찍한 활동을 은폐하는 데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 민주당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진상조사 특위 소속 신경민 위원장과 진선미, 김현 의원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복수 아이디로 작성된 여론조작 게시물 삭제 등 '국정원의 증거인멸 행위'를 공개하고 있다. (뉴스1)

심지어 그들의 활동은 단지 야당 정치인에 대한 심각한 비하이기 때문에 끔찍한 것만이 아니다. 그 비하의 뒤편으로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했지만 다소 완화되어 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었던 ‘증오의 인종주의’를 인위적으로 재생산하고 있었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 대북강경책이 아닌 입장을 펴는 모든 사람들을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사람으로, 또 지역적으로는 호남태생이거나 그와 유관한 사람으로 몰아 부친 활동은 굳이 선거개입이나 정치개입 같은 단어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보편적인 인권의 차원에서 문제다.

이는 정보기관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을 개탄하기 이전에 그 ‘격’이 엽기적인 수준이었다 말할 수 있다. 설령 업무지시를 받고 했더라도 이를 수행한 이들 개개인의 윤리적 판단을 제기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문제다. 보수진영 네티즌들이 참여정부 시절 국정홍보처 등의 인터넷 활동과 비교하면서 ‘물타기’를 하는 것이 무의미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2천년대 후반에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 등에서 ‘홍어’나 ‘민주화’와 같은 ‘드립’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들은 지금의 ‘일간베스트’ 유저나 국정원 심리전단팀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명백한 인종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비록 이전 시대의 지역차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을지라도 지금처럼 증오심 가득하지는 않았고, 적당히 유희적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올바른 판단이었다 볼 수는 없지만, 정치영역이 아닌 곳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측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국정원의 활동은 인터넷 하위문화의 어휘에 한국 사회가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도 가장 퇴행적인 정치의식이었던 저 증오심 가득한 인종주의를 효과적으로 링크시켜 버렸다.

새누리당의 태도로 보건대 그들이 집권하는 한 국가기관이 중립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며 민주당은 앞으로도 불공정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 미래에 어떻게든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국정원 개혁이나 국가기관의 중립화 문제는 어떤 수준의 개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 심리전단팀의 활동이 특정 세대나 특정 하위문화에 끼친 악영향은 두고 두고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되고 숙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치공방을 떠나, 법리적 판단을 떠나, 이런 사태를 사회 구성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별도의 논의의 장이 필요한 형국이다.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과 시민사회의 역량에 희망을 가질 때만이 밝은 미래를 예상할 수 있겠지만, 사회가 민주화될수록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드는 특정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 그 역량에 결정적으로 해를 끼치는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억만은 분명하게 간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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