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음의 기준

▲ <월간 잉여>가 설문결과를 한 장으로 요약했다는 잉여의 뇌구조. 표준편차와 오차범위는 알 수 없다. (출처 - <월간 잉여> 블로그)

<월간 잉여>가 일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잉여들이 스스로를 잉여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쓸데없는 짓'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로 그렇다. 이 연재에서 다루는 대상들 또한 비록 대중없지만, 공통점을 꼽는다면 사회적으로 가장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이다.

이 때 '쓸데없다'는 말의 기준은 뭘까? 대체 무엇이 쓸데 있고, 무엇이 쓸데없단 말인가? 잉여들의 답변에서 시작했으므로, 이에 대한 기준도 '잉여'로 돌아가 찾아보자(순환논법도 가끔은 도움이 된다). 미디어스 한윤형 기자의 신간을 빌려 말하자면, 잉여라는 주체는 '(현대 자본주의의) 생산과정에서 배제된 자'로 정의된다. 따라서 쓸데 있고 없음의 기준 또한 '생산과정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돌리면, 자신의 '노동생산성'을 올려서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활동이 쓸데 있는 것이 된다. 여기에는 지금 당장 실제로 생산에 기여하는 능력뿐만이 아니라, 미래에 그럴 것이라고 믿어지는 것들도 포함된다. 예컨대 수능점수가 '쓸데 있는' 이유는, 대학교 간판이 노동생산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교리가 한국 사회에 퍼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엄격한 정의에 비춰보면 모든 '비생산적 문화'는 쓸데없는 것이 될 테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서도 큰 차등이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한 차등이 그 문화를 어떤 사람이 향유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문제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어떤 문화를 향유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도 있다. 예를 들어, 가지고 있는 자본만으로 충분히 생존이 가능하고도 남는 유산자(有産者)들의 문화는 자연스레 '쓸데 있는' 고급문화가 되기 마련이다. 재벌 사모님들이 국내 유수의 미술관이나 문화재단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이와 정반대 쪽에는, 하루라도 빨리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려 (더 좋은) 일자리를 잡지 않으면 생존의 문제가 생기는 사람들의 문화, 미래가 불확실하므로 조금이라도 더 자신을 끌어올려야 하는 어린 학생들의 문화가 있다. 이들은 '쓸데없는 짓'에 투자할 여유가 적으므로, 그들이 향유하는 하위문화는 남들에게는 물론 본인들 스스로가 보기에도 쓸데없을 수밖에 없다.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기도 바쁠 텐데 저런 여유를 부리다니, 한심하다 쯧쯧' '앞으로 뭐가 되려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요컨대 특정 문화가 쓸데 있는지 쓸데없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문화 자체가 가지는 속성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처지'다.

▲ 대검은 '엔하위키'가 노동생산성에 무관함을 넘어, 유해하기까지 하다는 수사결과를 밝힌바 있다. (대검찰청 대변인 트위터)

엔하위키, 하위문화를 담는 하위문화

'엔젤하이로 위키(공식명칭은 '리그베다 위키'이나 아래에서는 통칭 '엔하위키'를 사용한다)'는 일종의 유사-백과사전(백과사전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위키위키다. 위키인 만큼 모든 이용자가 자유롭게 문서 편집이 가능한 웹사이트로, 약 20만개에 가까운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위키 중 '한국어 위키백과(Wikipedia)'와 '한국어 위키낱말사전(Wiktionary)'을 제외하면 가장 큰 규모로 그 다음 순위인 뉴스형 위키인 '위키트리'와의 격차도 꽤 크다. 특히 하위문화와 관련해서는, 한국어권 다른 어느 곳과의 비교도 불허할 정도의 정보량을 갖추고 있다.

'자기소개(엔하위키의 '엔하위키' 항목)'에서 엔하위키는, 스스로를 오타쿠 관련 정보와 트리비아(하찮고 쓸데없는 것)로 가득찬 공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 말처럼 이곳은 참으로 '쓸데없는 곳'이다. 신뢰할만한 정보는 거의 하위문화와 관련된 것들뿐이고, 유용할 듯한 정보는 출처표기가 강제되지 않는 점에서 결국 다른 곳을 찾아 교차검증을 해봐야 한다.

엔하위키는 또한 중독성으로 악명이 높다. 기술방식에 제약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글마다 유머와 위트, 해학이 많으며 글쓴이의 감정이 섞여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관련 있는 항목으로 하이퍼링크가 걸려 있기 때문에, 하나를 검색해 찾다 보면 그와 관련된 항목으로 파도에 파도를 타고 몇 시간 이상 별의별 것을 다 읽어보고 있기 일쑤다. 엔하위키에 시간을 과다하게 보내는 사람들을 '위키니트(의욕이 없는 백수, 잉여를 뜻하는 그 NEET가 맞다)'라고 부르곤 한다.

이렇듯 엔하위키는 참으로 '쓸데없는' 것의 정점에 서있는 공간이지만, 정확히 살펴보자면 그 이유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주로 다루는 대상의 절대 다수가 이미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하위문화 콘텐츠들에 기반한 정보들이라는 점에서 '쓸데없다'. 물론 그 밖에 유용한 정보들도 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출처도 없고 부정확하거나 글쓴이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간 경우가 너무 많다.

또 다른 의미는 엔하위키 자체도 오락거리로 기능하는 하나의 하위문화 콘텐츠라는 점이다. 본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정보를 얻으며 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는 게 가능하다면, 이 또한 삶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문화생활, 취미생활이 된다. 따라서 엔하위키는 하위문화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모은 데이터베이스인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하위문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다른 어떤 하위문화 못지않게 '쓸데없다'.

위키니트는 완벽한 잉여?

▲ 마스코트 캐릭터(이름은 미정). 왼쪽은 엔하위키를, 오른쪽은 엔하위키와 똑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엔하위키 미러'를 상징한다. (출처 - 엔하위키 '엔젤하이로 위키' 항목)

다른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위문화는 사회적으로 천시되는 만큼 문화'산업'과 깊게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때문에 하위문화를 보는 시각 또한 둘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소비자에 대한 관점과 생산자에 대한 관점이다.

앞서 언급했던 하위문화의 '쓸데없음'을 규정했던 것은 물론 소비자에 대한 관점이다. 하위문화를 누가 향유하고 소비하는가의 문제다. 반면 이와 다르게 생산자에 대한 관점에서 본다면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컴퓨터 게임'이다. 게임은 소비자의 관점에서,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마치 마약과도 같은 최악의 문화생활, 취미로 여겨지지만, 생산자의 관점에서는 압도적으로 문화 콘텐츠 수출액 1위이며, 성장세과 가치창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산업으로 추앙된다.

컴퓨터 게임의 예처럼, 이런 구분은 하위문화에 이중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즉 하위문화는 소비자의 시각에서는 매우 '쓸데없는' 것이지만, 정반대로 그것을 만들어 퍼뜨리는 사람들, 생산자의 시각에서는 매우 '쓸데 있는' 것이 된다. 문화산업으로서는 ‘생산적’이라는 면에서, 하위문화는 그 핍박과 천시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쓸데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엔하위키는 일종의 하위문화 콘텐츠이면서도 그것이 포함하는 내용물들과 달리, 자체로는 아무런 산업과도 생산과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순수한 '잉여력'들이 모여 만들어진 콘텐츠로, 아무런 목적도 없고 아무런 결과도 낳지 않는다. 물론 상업적 목적이 없는 하위문화 콘텐츠와 활동은 멀리 아마추어 동인들로부터 가까이는 각종 UCC등 오랫동안 있어왔다. 하지만 엔하위키는 그 규모와 이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범위의 측면에서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일반적인, 즉 상업적인 하위문화 향유는 소비자의 자율성을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그것을 창조해 제공한 문화산업의 영향 아래에 있다. 즉 제작자는 이윤을 남겨야 하고, 그것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돈 없이 목표를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쓸데없는' 하위문화의 향유자라 하더라도 돈은 벌기 위해 생산과정에 참여하도록, 즉 뭐가 되었든 노동하도록 유도된다. 누군가에게 돈을 얻어서 소비한다 해도, 결국 누군가의 노동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결과는 같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엔하위키와 같이 산업의 속성이 전혀 없는, 완전히 열려있는 '하위문화'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위키니트'는 현실에 나타난 '지하생활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하위문화의 '불완전한 쓸데없음'을 뛰어넘는 '완전한 쓸데없음'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완벽한 잉여'쯤이 될 것이다.

▲ '엔하위키'의 대문. 주소는 http://www.rigvedawiki.net/r1/wiki.php/FrontPage. '엔하위키 미러'는 http://mirror.enha.kr/wiki/FrontPage (출처 - 엔하위키 화면캡처)

완전한 쓸데없음을 상상하며

언제부터인가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라는 말이 떠돈다. 그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욕구를 상실한, 더 정확히는 소비욕구를 상실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생산과정에 참여하기를 포기한 '니트족'이야 오래 전부터 있던 말이지만, 소비에서까지 멀어진다는 것은 보다 의미심장하다. 어찌보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도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엔하위키를 두고 그 정도 수준까지 갑자기 상상력을 펼치는 것은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하위문화가 더 잉여롭고 더 쓸데없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을, 엔하위키를 보면서 한번쯤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는 있지 않을까?

▲ 조은상 하위문화평론가
'잉여'나 '덕후'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주류 언론에게 존재 자체가 무시당하던 이들이 이제는 하나의 유의미한 집단으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은 잉여/덕후의 정치적 가능성, 사회경제적 위치 등에만 쏠려있을 뿐, 정작 그들의 정체성과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 하위문화(sub-culture)에는 무관심하다.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을 비롯해 하위문화는 지금 경계선에 서 있다. 수적으로는 이미 다수의 위치를 넘보고 있지만, 사회적 위상은 여전히 바닥에 있다. 물론 인간이 그러한 것처럼, 문화에도 왕후장상에 씨는 따로 없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 연재에서는 주류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으나 유의미한 향유집단을 가지고 있는 하위문화 콘텐츠 등을 소개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편파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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