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바람이 누가 힘이 더 센가를 두고 내기를 했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쪽이 이기기는 것으로 했다.
바람이 먼저 나섰다. 센 바람을 불어 나그네 옷을 벗기려고 했다. 하지만 바람의 강도가 셀수록 나그네는 외투를 더욱 단단히 여밀 뿐이었다.
이번엔 해가 나섰다.
해는 따뜻한 볕을 나그네에게 내려 쪼일 뿐이었다. 나그네는 조용히 겹쳐 입은 외투를 벗었다."

너무도 잘 알려진 이솝우화 ‘해와 바람’ 이야기다. 최근 촛불집회 때문에 새삼 떠올랐다.

정부당국이 감행한 최악의 강경진압 이후, 지난달 3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가 열렸다. 이쯤되면 벌써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챈 이들도 있으리라. 시국미사의 현장은 광주에 사는 필자를 비롯해 수많은 지역민들이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눈물 흘리며 지켜봤을 게다.

▲ 6월 30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시국미사에서 촛불을 든 신부님들. ⓒ 미디어스 정은경
시청광장은 하루 전까지만 해도 전경버스에 철통방어망이 형성된 ‘금단의 땅’이었다. 그 전날까지도 촛불들은 새벽에 이르도록 서울 도심곳곳에서 경찰과 전쟁을 치렀다. 경찰은 ‘대한민국헌법 제1조’라는 노래를 틀기만 해도 ‘불법’이라며 차를 잡아 세웠고, ‘촛불소녀’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 차림의 행인도 ‘불법’이라며 연행했다.

도로에 있으면 보도로 밀어붙이고, 보도에 올라서면 ‘밤에 몰려다닌다’며 잡아들였다. 억압이 황당할수록, 저항도 모질었다. 시민들이 새벽까지 거리를 떠나지 못하게 한 건 오히려 경찰쪽이었다.

그런데 이날 시국미사와 행진에 참여한 촛불들은 밤 10시가 되자 자진해산했다. 경찰 투입은 없었다. 물대포 소화기와 소화기를 쏘는 강제해산도 없었다. 시국미사 주최측인 사제단의 ‘말’ 한마디에 수만의 촛불들은 가정으로 돌아갔다.

"밤 10시가 됐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서운해도 내일 또 촛불을 들어야 하니, 오늘은 여기서 귀가하자. 국민에게 힘이 될 때까지 사제단은 단식기도회를 계속하겠다."

그뿐이었다. 국민의 아픔이 어디 있고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사제단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바람’의 어리석음이 아닌, ‘해’의 지혜로움을 사제단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촛불을 끄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바람’이다. 미친소가 몰고온 미친 바람이다. 전술도 작전도 없고, 오직 강도만 높일 뿐이다. 촛불들은 바람에 날려 아스팔트에 뒹굴고 머리가 깨지더라도 꺼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아니 굳이 알려들지 않으려는 것 같다.

여당 정치인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폭도’라고 규정하고, 검찰총장이 ‘촛불시위 종지부를 찍을 때다’고 했다. 좀더 살벌한 단어를 내놓는지를 두고 경쟁하는 모양새다. 독재의 광풍을 누가 더 세게 불게 할 지 만이 관심인 듯하다. 80~90년대 대학 학생운동가의 유명한 사수대 ‘오월대와 녹두대’의 ‘위력’을 새삼 재평가하게 만드는 것도 온전히 이들 ‘덕’이다.

빛이 밝다면, 굳이 촛불을 밝힐 필요가 없다. 작은 빛이라도 어두울수록 더욱 밝다는 건 너무나 평범한 진리다. 보다 거센 바람으로 불을 꺼뜨리려 할 게 아니라, 굳이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는 방법. 그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이 나라 정부여당엔 왜 없는 걸까.

광주지역 일간신문 광주드림 행정팀 기자입니다. 기자생활 초기엔 지역 언론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주로 했는데, 당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많이 절감했구요. 몇 년 전부턴 김광석의 노래가사 중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진다"는 말을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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