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의 서'가 기나긴 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거의 언제나 그랬듯이 엔딩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다. 서부관이 쏜 총에 하필 여울이 맞아 결국 죽게 되자 강치는 '구가의 서' 찾기를 포기하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3년 현재로 시점이 옮겨와 아주 많은 사람들의 환생을 그렸다. 그리고 마침내 재회한 강치와 여울이 만난 그날 밤도 여전히 도화나무 끝에 초승달이 걸려있다. 4백년의 기다림 끝에 환생을 맞았지만 도화의 연은 참 기구하기만 하다.

강치와 여울의 재회로 마무리된 엔딩은 시청자로 하여금 당연히 시즌2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기존 '구가의 서' 스토리에 대한 마무리가 깔끔하게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허무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어색한 엔딩이 시즌2를 위한 포석이었다면 그나마 용서가 되겠지만 그런 계획 없이 시도한 것이라면 황당함을 넘어 괘씸한 일이 될 것이다.

어쨌든 '구가의 서'가 지난 석 달 동안 우리를 즐겁게 해준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얻은 것도 꽤나 크다. 퓨전사극의 홍수로 역사 왜곡 등의 심각한 문제점들이 지적되는 상황에서 '구가의 서'는 역사를 훼손하지 않는 퓨전사극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의미를 갖는다. 판타지와 사실의 결합은 큰 설득력을 가졌고, 그 시너지로 인해 '구가의 서'는 탄탄한 추진력을 보였다.

그렇지만 '구가의 서' 최대의 수확은 배우 이승기에 대한 확신과 최진혁에 대한 기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가의 서'를 통해 이승기의 연기는 분명 드라마를 충분히 끌어갈 만한 힘을 보여주었다. 비슷한 또래의 송중기, 김수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앞으로 한국 드라마를 끌어갈 역량을 확인시켜주었다. 사실 '구가의 서'가 중반에 들어서며 구월령과 서화를 재등장시키면서 잠시 주춤거린 때가 있었다.

워낙 컸던 월령앓이 때문에 대놓고 불만을 갖기는 힘들었지만 다소 산만해진 분위기 속에서도 이승기의 연기는 오히려 한 단계 올라서는 모습으로 갈채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구가의 서' 전에도 이승기의 연기는 못한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구가의 서'를 통해서 이승기 본인이 연기에 대한 길을 스스로 찾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이승기의 연기는 인기로 인한 일종의 착시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인기를 등에 업지 않고도 연기만으로 평가받아도 부족함이 없다.

물론 완벽하다는 말은 아직은 과하다.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아직 이승기는 젊으며 그에게는 미래를 위한 숙제가 필요하다. 다만 많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연기에 갈증을 갖는 욕심을 갖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반면 '구가의 서' 최대의 수혜자인 최진혁에 대한 기대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최진혁은 그동안 주연도 여러 편 맡았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무척 낮았다. 그에 대한 첫 기억인 ‘아름다운 시절’ 때의 짙은 회색의 이미지를 잘 살릴 기회가 없었던 탓이 아닐까 싶다. 이후 ‘파스타’에서는 의외로 작은 역할로 등장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지만 이번 '구가의 서'를 통해서 최진혁이라는 배우의 주연 포스를 확실하게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승기와 수지의 스타파워가 워낙 크기도 했지만 드라마 도입부를 책임져야 했던 최진혁의 슬픈 사랑이 시청자에게 어필하지 못했다면 '구가의 서'는 의외로 힘겨운 과정을 겪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월령앓이를 불러온 최진혁의 강렬한 존재감은 '구가의 서'를 살린 동시에 스스로를 스타덤에 올려놓는 확실한 계기가 됐다.

'구가의 서' 엔딩은 황당함보다는 시즌2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이 더 크게 만들었다. 물론 시즌2에 대한 궁금증도 크지만 그보다는 이승기와 최진혁을 어떤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될지가 더 크다. 특히 최진혁이 과연 '구가의 서'를 통해 커진 존재감이 실제 드라마 캐스팅으로 확인될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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