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국가정보원의 전신은 군사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중앙정보부다. 1961년에 창설한 중앙정보부가 1980년 12월에 확대·개편하여 국가안전기획부로 발족하였다가 1999년 1월에 국가정보원으로 바꿨다. 박정희 시절의 ‘중정’이 신군부의 ‘안기부’가 되었고, 김영삼 정부 시절까지 그대로 존속하다가 김대중 정부 이후 ‘국정원’이 된 셈이다.
2007년 노무현·김정일의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록 및 전문 공개로 정국의 핵이 된 남재준 국정원장은 역사적인 인물이 될 거라고 예측된다. 역대 국정원장 중 그만큼 민주주의 정부의 의회정치를 뒤흔든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정보기관 업무가 아닌 ‘이명박 맞춤형 사설 평판관리 서비스’를 했지만 그나마 ‘음지’에서 했다면, 남재준 원장은 본인의 신념에 의한 ‘한반도 종북척결 프로젝트’를 ‘양지’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국정원의 부훈(部訓)은 중앙정보부·안기부 시절 내내 저 유명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다가 국정원 개칭 이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뀌었고 이명박 정부 시절 다시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으로 바뀐 상태다.
하지만 남재준 국정원장의 현재 상황은 ‘무명(無名)’이라기보단 ‘입신양명(立身揚名)’에 가깝다. 발췌록에 이은 전문 공개는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조차 ‘을(乙)’로 만들어버렸다. 상식과 독해력이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남재준의 ‘플레이’는 발췌록으로 바보들을 낚은 후 전문공개로 그들이 바보임을 또 한 번 증명하는 놀라운 기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문을 꼼꼼히 보는게 아니라 조중동 기사만 보고 판단할 테니 결과적으로 볼 때는 모두가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는 대통령조차 국정원장을 끌어들여 정국 전환을 꾀한 모사꾼이거나, 수하가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한심한 모지리 중 한 쪽의 정체성을 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상황을 쿠데타에 비유하는 것은 남재준이 비웃는 민주주의를 우리조차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단 점에서 부적절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국정원장의 정치행위에 무너질 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그가 부정하고 능멸하더라도 여전히 체제는 살아 있다. 그럼에도 그가 모두를 바보로 만든 공적을 인정했을 때, 이 상황은 그가 존중할만한 전근대 왕조국가의 문법으로 ‘남재준의 난’이라 칭할 만하다. 본인은 나중에 부인했다지만 참여정부 시절 군민주화에 반대하면서 ‘정중부의 난’을 언급한 적이 있다는 증언도 있으니 제법 어울리는 명명이 될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나 자신이 내 인생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해 주인공이기를 희망한다. 그러한 욕망 자체가 그르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보기관의 수장이 연극의 주인공인 마냥 무대를 전세내고 있는 상황은 그로테스크하다.
대체로 그 사회의 성격에 따라 주인공이 되는 직군이 정해져 있다. 군부독재 시절에야 육사출신 군인들이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야~”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물론 노래를 지나치게 크게 부르다 ‘오야붕 박’의 심경을 거스르면 윤필용 장군처럼 무대 바깥으로 끌려 나가기도 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대통령과 의회를 견제하고 정국을 뒤흔드는 상황이 생겼다. 헌법재판소장의 위상은 과거와는 달리 검찰총장에 비견될 만큼 높아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경찰 출신들이 사회문제로 주목을 받거나, 정계진출도 시도하는 상황이 생겨났다. 이는 치안국가로의 전환이란 징후를 보여준단 점에선 문제적이었으나 더 이상 국가폭력의 문제에 경찰이 아닌 군인이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긍정성도 있었다.
‘오야붕 박’의 생물학적 자녀가 수장인 박근혜 정부는 군인들의 중용이 두드러진다.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은 군인들을 데려다가 업무영역과 상관없는 영역에 배치하여 그들도 자신도 망치고 있다는 평이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도 그런 부류다. 군민주화에 저항했다지만 군인으로서의 그에 대해 악평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꼿꼿하고 강직한 군인으로, 비록 정보기관 수장으로 적합하지는 않지만 국정원을 검찰과 함께 정권의 애완견 경쟁을 벌이도록 만든 원세훈 전 원장과는 다른 조직을 만들어낼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남재준 원장이 무대 중앙에 서서 주인공의 노래를 부르면서 공연이 꼴사나워졌다. 장성 출신 국정원장이 정국을 뒤흔드는 상황인 것인데, 이에 대해 청와대와 정권과 보수언론이 아무 문제의식도 없다는 정황은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여실히 드러낸다.
정치공작의 결과든 우발적이든 그들은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믿겠지만, 과연 지금 상황이 박근혜 정부에게 좋은 것일까? 이명박 정부와 구별되는 대북정책이라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고, 한중정상회담도 ‘아웃 오브 안중’이 되었으며, 주요 국정사안에 대해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처럼 임기 첫해를 거센 국민적 저항으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그도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에겐 적어도 집권 5년 동안 정치하며 얼굴 알게 된 은인들과 측근들 밥이나 먹여주는 것 이상의 애국심은 있었을 거라고 추정되지만, 내용이야 어찌됐든 그 애국심조차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다. 물론 한국 사회의 대통령은 의회의 동의 없이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짱짱맨’이며, 검찰조직을 활용해 기업에 대한 엄정수사 정도는 지속할 수 있을 것이며, 임기 첫해의 어려움을 딛고 나중에 반전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기본지지율’이 튼실한 현 대통령의 성향은 그런 종류의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내기에 적합하기도 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그러한 풍부한 정치적 자산을 ‘역전승’으로 이끌어낼 만한 정치적 감각이 전무하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 이 사건이 보여주는 가장 큰 문제요, 함의다. ‘100% 대한민국’을 표방한 그녀이지만 상대방이 왜 기분이 나쁜지도 모르는 그 감각으로는 ‘51% 대통령’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리고 51%는 선거에서 이기기에는 충분한 수치이지만 원활한 통치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치다. 소수파 정권인 김대중 정부조차도 임기 초기 개혁 상황에서는 그보다 훨씬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박근혜 정부가 같은 시기에서 김영삼·김대중 정부보단 지지율이 낮고 노무현·이명박 정부보단 지지율이 높은 상황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이 중간적 위치에서 좀더 아래로 내려가 참여정부나 이명박 정부의 상황에 근접해 진다면? 축근들 밥이나 먹이고 추억의 공간에서 아버지의 기억이나 반추한 것 외에 박근혜 정부의 의의를 찾기 힘들어질 것이다. 생각이 있다면 보수세력이 먼저 ‘남재준의 난’에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